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에 쏠려 있었다. 광장에서 함께 공연하고 있는 두 사람에게였다. 한쪽은 기계 새를 조종하며 상대를 몰아세우고, 그 상대가 되는 청년은 화려하게 치장한 서커스단을 내세워 적을 쓰러트릴 틈을 노리고 있었다. 사람들을 한껏 애태우고 기대를 안는다. 엔터테이너를 꿈꿔온 청년에겐 반가운 일이었다. 전투의 형태를 띤 공연은 청년의 제안으로 시작된 것. 탐색을 위해 낯선 도시에 닿은 두 사람은 우선 사람들이 자주 접하는 공연을 통해 도시에 녹아들기로 했다. 다행히 각자의 몬스터로 겨루는 전투의 방식은, 그들이 떠나온 곳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의 공연에 특별한 게 있다면 각자 맡은 역이 있다는 것이었다. 서커스단을 지휘하는 청년은 이세계에서 침공해온 악당 역, 기계 새를 부리는 남자는 그를 막으려 나선 히어로. 즉, 이것은 악당과 히어로의 대결이 되는 것이다. 누구도 드러나게 앞서지 못할 정도로 팽팽한 전투에 관객은 모두 긴장한 채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청년이 승기를 잡았다. 청년은 높은 공격력과 화려한 연계로 상대를 몰아세운다. 히어로를 응원하는 아이들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악당의 귀에 꽂힐 즈음, 히어로가 함정으로 전세를 역전시켰다. 청년은 자신을 차갑게 내려다보는 상대에게서 사냥꾼을 연상한다.
청년은 그 다음에 벌어질 일을 직감했다. 사냥꾼은 포착한 사냥감을 절대 놓치지 않는다. 물어뜯었다 싶으면 그대로 끝난다. 청년의 예상대로 사냥꾼은 그대로 청년의 군사를 부수고 기계 새를 청년에게 날려보냈다. 그것으로 승부가 났다. 악당은 히어로에게 패해, 무너졌다. 동화 같은 결말에 함성이 쏟아졌다. 주로 아이들의 목소리였다.
아이들의 박수와 함성에 청년은 웃었다. 박수가 향한 곳은 청년이 아닌, 히어로 역을 맡아 그를 쓰러트린 사냥꾼이었으리라. 그래도 청년이 만족할 수 있었던 것은 관객이 만족한 무대여서였다. 멋진 모습으로는 아니었지만, 웃음을 주었다. 아이들을 즐겁게 했다. 그렇다면야 야유를 받는 악역이어도 좋았다. 박수가 잦아들 즈음 사냥꾼은 주저앉은 청년에게 불쑥 손을 내밀었고, 청년은 그 손을 잡고 일어났다.
“아, 고마워. 히어로 씨.”
“언제까지나 한심하게 있을 것 같아 일으켜준 거다.”
“무뚝뚝하셔라.”
친절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는 사냥꾼의 말을 가볍게 넘기며, 청년은 무대를 마무리할 준비를 했다. 악당의 모습을 벗고, 엔터테이너의 모습으로 공손히 인사하는 것으로.
“자, 그럼 히어로 씨도 무대를 끝까지 지켜봐준 관객들에게 인사를.”
말을 꺼내다 말고 청년은 멈칫했다. 조금 전까지 제 앞에 있던 사람이 어느새 떨어져 혼자 걷고 있었던 탓이다. 무대가 끝났으니 어울려줄 일은 없다는 건가. 본디 계산이 정확한 인간이란 건 알지만, 관객을 앞에 둔 지금은 매정하게 느껴질 정도의 행동이었다. 아이들의 눈에 실망이 깃드는 것을 읽어낸 청년은 빠르게 말했다.
“이런, 히어로 씨는 아무래도 주목받길 싫어하는 모양이네.”
기대에 부풀었던 아이들을 상대해준 것은 결국 청년 쪽이었다. 그러는 중에도 사냥꾼은 청년에겐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성큼성큼 걸었다. 얄미울 정도로 무심한 뒷모습에 청년은 입술을 삐죽거렸다. 재미없는 사람. 가벼운 불평을 속으로 삼킨 청년은 아이들에게 인사하고 헤어지자마자 뛰어, 청년과의 거리를 좁혔다.
“뭐야. 기껏 히어로 역을 양보했더니 그러기야?”
“하고 싶었으면 그쪽이 하지 그랬어.”
여전히 무뚝뚝한 목소리였다. 대충은 짐작한 반응이었지만 청년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다.
“하여간 보람 없는 인간이라니까. 나도 악역 같은 거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쿠로사키 씨는 히어로는 못 해봤을 것 같으니까 넘겨준 거라고?”
그 아래 숨겨진 뜻을 상대가 눈치챘을까. 돌아선 사냥꾼의 눈에는 별다른 동요가 비치지 않았지만 본래 감정이 드러나는 편이 아니니 확신할 수 없다. 히어로 역을 양보했다는 말에 깔린 전제는 하나. 사냥꾼은 결코 선역이 될 수 없다 ─ 지금이야 사냥꾼이 본모습도 본래의 목적도 숨긴 채 무해한 아군인 체 붙어있지만, 청년은 안다. 사냥꾼의 본질을. 그가 어디에서 왔고 무엇을 목표한 사람인지를.
청년이 동료로 함께하는 자를 사냥꾼으로 인식하는 것은 상대가 정말로 수많은 먹잇감의 숨통을 끊은 무시무시한 포식자이기 때문이다. 다른 동료들은 사냥꾼에게 한 가닥 의심도 던지지 않았지만, 청년만은 속아넘어가지 않았다. 청년의 예민한 감각은 사냥꾼을 보자마자 경고음을 울렸고, 날카로운 시선은 사냥꾼의 몸에 밴 포식자의 습성을 읽어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청년의 경험이 사냥꾼을 보고 외쳤다. 저것은 정복자로 키워진, 자신의 적이라고.
청년은 폐허에서 왔다. 갑자기 밀려든 침략자는 그의 세상을 짓밟고 죄 없는 사람들을 한순간에 쓸어버렸다. 지옥이 된 고향에서, 목숨을 건진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기고 그대로 숨죽이고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청년은 고향이 완전히 정복당하지 않도록, 저와 같은 생존자가 위험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저항군으로 싸우는 것을 택했다. 다만 저항군의 세가 너무 약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을 우려해 외부의 힘을 빌리기 위해 잠깐 고향을 떠나온 청년이었다.
그렇게 청년은 전쟁이 닥치지 않은 이국에서 협력자를 구하는 데 성공했지만, 하나, 달갑잖은 것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바로 청년이 찾은 나라에까지 침투한 적. 침략자가 보낸 첩자. 그것이 바로 지금 청년을 바라보는 사냥꾼이었다. 첩자란 결코 의심을 사서는 안 될 존재. 사냥꾼이 완벽하게 위장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파견된 곳에 자연스레 섞여든 것은 물론이고 기어이 청년의 곁에까지 비집고 들어왔다. 청년과 함께 곧 침략자에게 맞서게 될 원군으로 선발됨으로써. 세상을 구해야 할 전사의 자리에, 세상을 위협하는 정복자가 들어온 셈이다.
당연히 그 본질을 모를 리 없는 청년은 언젠가 모두의 앞에서 사냥꾼이 어떤 인간인지 공개할 생각이었다. 그때까지는, 가면을 벗기기 전까지는 청년은 순진한 체 사냥꾼의 수작에 어울려주는 것이다.
“쓸데없는 소리.”
청년의 계획을 알 리 없는 사냥꾼은 얼굴을 찌푸리며 불만을 털어놓았다.
“레지스탕스는 하트랜드만 떠나면 노닥거릴 여유가 생기는 모양이군.”
그제야 청년은 사냥꾼이 무엇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인지 깨달았다. 사냥감 주제에 떨면서 쫓기지 않는다는 것. 목숨을 걸고 투쟁해야 하는 처지에 감히 한가로운 시간을 즐긴다는 것. 너무도 정복자다운 발상이라 속으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너무하네. 전장이 아닌 곳에서야 무대를 꾸밀 수도 있는 거 아냐?”
전쟁이 끝나지 않은 이상, 세상 어느 곳도 청년에게 완전한 안식처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딜 가든 청년은 투쟁을 버릴 순 없었다. 그러나 그 투쟁이 과연 고향의 전쟁과 같은 방식이어야만 하는가. 청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 세계는 어떻게든 구해내. 진짜 싸워야 할 때가 아닌데 힘을 소모할 이유는 없지.”
경계는 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전쟁에 먹히지도 않는다. 청년이 엔터테이너로서의 모습을 유지하려는 것은 오래 버티기 위함이기도 했다. 직접적인 위험이 없는 곳에서는 ‘일상’에 가까운 삶을 유지하며, 황폐해지지 않도록 한다. 삶을 덮친 전쟁에 완전히 갉아먹히지 않도록. 싸워야 할 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누군가는 그것을 도피라 말했지만, 청년은 숨통을 틔워두는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이런 모습으로도 얼마든지 적을 꺾을 수 있어. 그래, 언젠가는 쿠로사키 같은 강한 상대도 이길 수 있을지도?”
그것은 도발이었고 선언이었다. 언젠가는 그 오만한 사냥꾼을 패자의 위치로 끌어내려 승자로서 짓밟아주겠다는. 포식자의 입장에선 상상할 수도 없을, 기적과도 같은 이야기.
“아. 그때는 이런 모습이 패자에게 더 굴욕적일지도 모르겠네.”
전투가 아닌 ‘쇼’에 패한다면, 눈앞의 이 남자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패배란 알지 못하는, 정복자로 살아온 자는. 그것도 자신의 먹잇감에게 무너진다면 ─ 청년은 사냥꾼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즐거이 미래를 상상했다.
“오늘 같은 실력으로 가능할까?”
“그렇게 무시하다간 큰일 날지도 몰라. 오늘은 악역이니까 어차피 질 수밖에 없었던 거라고?”
“악역은, 꼭 지게 되는 건가?”
“물론. 그게 세상의 이치잖아?”
악이 패하고 선이 이기는 전개가 사랑받는 것은 그것이 모두의 소망이기 때문이다. 동화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라고 해도 좋았다. 청년은 그에 희망을 걸고, 그 간결한 법칙을 실현시키려 싸우고 있으므로. 언젠가, 사냥꾼과 같은 악을 쓰러트리고 온갖 고초를 겪은 그의 동료들이 평화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도록 할 것이다.
“히어로를 꿈꾸는 건 그쪽인 것 같은데.”
“아카데미아라는 악을 쓰러트리려 한다는 쪽에선 이미 히어로일지도?”
“그럼 잘 싸워보라고, 히어로 씨.”
정복자의 본질을 숨기고 있는 인간에게 그것은 칭찬이었을까, 조롱이었을까. 청년은 엷게 웃음이 밴 말을 굳이 파헤치지 않고 언젠가 자신이 쓰러트릴 악에게 웃어주었다.
*
청년이 고향을 떠나오기 전 겪은 정복자는 찍어낸 듯 같은 유형이었다. 목표물을 단숨에 처단하는 게 아니라 마지막까지 농락하며 서서히 숨통을 죄는, 악랄한 인간. 그들에게 침략한 나라의 주민이란 제 힘을 과시하기 위한 희생양인 듯했다. 누군가는 그것을 작은 생명을 짓밟는 아이의 천진한 잔학성에 비유하기도 했으나 청년이 생각하기에 그것은 천진함이란 말로 흐릴 수 없는 지독한 악의였다. 정복자는 도망치는 사람들을 쫓아 처리하는 것을 헌팅게임이라 부르며 살해를 유희로 격하시켰다. 당연히 희생자도 그에 맞게 격하될 수밖에. 청년은 자신을 사냥감으로 해치우려는 정복자를 만날 때마다 구역감이 치밀었다.
그런데 고향을 떠나와 만난 정복자는, 첩자로 온 사냥꾼은 달랐다. 사냥꾼은 절대 목표물을 농락하는 일이 없었다. 천천히 말려가기는커녕 압도해 단숨에 목을 물어버리는 것이 사냥꾼이었다. 그 냉혹함과 무자비함에, 그 전까지 청년이 마주한 교묘한 악의는 찾아볼 수 없다. 청년은 정복자답게 구는 정복자의 모습에 오히려 놀라워했다.
처음에 청년은 사냥꾼의 그런 모습이, 자신에게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한 위장일지 모른다 생각하기도 했다. 전장에 나서 청년의 세상을 짓밟은 동지들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알 테니, 그런 모습을 피해 의심을 사지 않으려 한다는 예상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지켜본 결과 사냥꾼은 청년 앞이라고 공들여 위장하진 않았다. 별다른 소란 없이 섞여들기만 하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다음으로 청년이 떠올린 가능성은 어쩌면 그는 다른 정복자와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그 끔찍한 정복자 집단에서도 침략을 달가워하지 않은 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학살을 꺼리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만일 사냥꾼이 그러하다면? 그래서 타깃을 빨리 처리하는 것으로 죄책감에서 벗어나려 하는 것이라면? 정복자에게서 한 조각이나마 양심을 찾는다니, 한가한 생각이었지만 청년은 차라리 그렇길 바랐다. 한 나라의 군대가 사람을 가책 없이 죽이고 그 과정마저 즐기는 인간으로 가득하다고 생각하면 너무도 끔찍했으니까.
유감스럽게도 사냥꾼은 제 나라의 모범적인 전사였다. 그렇다면 그는 왜 동지들과 다르게 행동하는가. 탐색을 위해 사냥꾼과 붙어 다니며 청년은 답을 알게 되었다.
그는 꺾인 적 없는 강자이기 때문에.
완전한 강자는 힘을 과시할 이유가 없다. 과시하려 하지 않아도 자연히 적을 압도할 수 있으므로. 자신의 힘에 대한 자신과 그에 합당한 실력이 있는 자라면 맡은 일만 말끔하게 해치우면 그만이었다. 사냥꾼에게 청년과 같은 사냥감은 얼마나 하찮은 존재였을까. 시간을 들여 처리할 이유도, 그럴 가치도 없는 표적이란. 청년을 바라보는 사냥꾼의 눈에는 감정이 담기지 않았다. 청년이 자신의 참혹한 삶을 풀어놓아야 했을 때도, 사냥꾼은 정복자로서 한 조각 승리감도 느끼지 않는 모양이었다. 청년은 새삼 자신의 삶에 끼어든 첩자가 완전한 사냥꾼임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아, 쿠로사키는 왜 이렇게 재미가 없나 몰라.”
함께 공연을 하고 돌아온 날, 청년은 자신에게 등을 보이고 앉은 사냥꾼에게 일부러 들리게 말했다.
“데니스콜을 쿠로사키콜로 바꾸고 싶단 생각 같은 거 없어?”
“그런 것에 집착하는 건 너희 같은 엔터테이너지.”
들은 척도 하지 않더니, 듣고는 있었던 모양이었다. 물론 사냥꾼의 시선은 기계 새가 봉인된 카드에 머물러 있지 청년에게로는 향하지 않았다.
“너는 듀얼에서 이겨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지?”
“전투에서 승리를 목표로 삼는 건 당연하지. 하지만 이겨야만 하는 건 나보다 네 쪽 아닌가?”
“여긴 하트랜드가 아니에요? 이기면 좋지만 져도 즐거우면 괜찮다고?”
“언제나 한가한 사고방식이군.”
“나는 네가 더 이해가 안 돼. 즐기면 되는 거잖아? 적당히 상대해도 될 정도의 실력을 가졌으면서 왜 그렇게 힘이 들어가 있는데? 어차피 할 거면 박수 받는 쪽이 좋지 않아?”
청년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냥꾼에게 가까워졌다. 뒤에서 어깨를 감싸자, 사냥꾼이 움찔했다.
“응, 슌쨩?”
“떨어져.”
“끝나지 않은 전쟁에 묶인 나도 엔터메를 지향하는데, 네가 즐기지 못할 게 뭐 있어?”
어려서부터 청년은 엔터테이너가 되길 바랐다. 전쟁이 닥치지 않은 세상에서 사람들은 대부분 행복했고, 즐거운 것을 즐겁게 받아들일 여유가 있었다. 엔터테이너가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였다. 그들의 무대를 보고 자라난 청년은 언젠가 자신도 그들처럼 타인을 웃게 만들고 싶었다. 그러한 소망은 전쟁이 일어나면서 오히려 커졌다. 한 조각 희망도 품기 어려운, 참혹한 전장에서 청년은 어린 날부터의 꿈으로 무장하기로 했다. 행복을 느낄 환경도, 즐거워할 힘도 남아있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그들이 다시 예전처럼 웃는 날을 만들겠다는 각오로.
때문에 청년은 전장에서도 엔터테이너를 연상시키는 무기를 고집했다. 그는 건물을 부수는 괴물에 맞서 곡예사를 내보냈고, 괴물을 갈기갈기 찢는 대신 무대에서 퇴장시켰다. 전투의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 그러한 싸움은 그의 저항이 어떤 것인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고향을 떠나 닿은 곳에서 함께하게 된 동료들은 청년이 펼치는 화려한 공연에 그가 전장에서 왔다는 사실을 쉽게 믿지 못했다. 전쟁을 겪었다면 당연히 처절하게 싸울 것이며,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졌을 거라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청년도 황폐해지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 재앙 속에서 닳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래도 청년은 제 나름의 방식으로 투쟁하고 있었다. 그 조용한 시위를 정복자는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떨어지라고 했다.”
불쾌가 묻어나오는 목소리에도 청년은 싱글거릴 뿐이다. 도리어 정복자를 농락하려는 것처럼.
“아니면 아예 즐기는 법을 배우지 못한 걸까?”
“네 놀이에 어울려줄 생각 따위 없어.”
사냥꾼은 결국 청년을 떨쳐내더니 자신의 카드를 빠르게 정리해 청년의 눈앞에서 감추었다. 무기를 점검하는 것이 끝난 모양이었다.
“대체 왜 즐기는 것에 그렇게 집착하는지.”
“그만큼 거기에 관심이 많다고 생각해주지 않을래?”
“내가 살면서 느낀 것을 하나 말해주지. 무언가에 집착하는 놈들은 그것이 결핍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거, 나를 겨냥해서 한 말?”
“충족되지 못한 것을 충족시키려는 듯 지나치게 매달리게 된단 뜻이야.”
사냥꾼의 말이 청년을 향해 던진 것이라면, 의도한 것은 분명했다. 엔터테이너로서 무대를 꾸미려는 청년의 모습은, 자신의 불행을 메우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는 뜻. 즐거움을 억지로 채워 넣으려는 노력이라는 뜻.
“내 엔터메는 결국 나를 달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그럴 수도 있단 뜻이지. 그 뿌리가 어떤지는 별로 궁금하지 않지만.”
청년은 사냥꾼의 건조한 목소리가 그렇게 불쾌했던 적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삶을 비튼 가해자인 주제에 제 삶의 목표에 대해 제멋대로 판단하고 있었으므로. 정복자이기에 가능한 오만일 것이다. 삶을 덮친 극한의 재앙에 대처하는 방식을 마음대로 짐작하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은. 피해자인 청년은 어떻게든 자기네가 일으킨 전쟁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데!
“입증해볼까? 네가 틀렸다는 걸?”
웬만한 말은 적당히 넘겨버리는 청년이 드물게 나선 것은, 그만큼 사냥꾼의 말이 거슬렸기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부정하고 싶다. 저 오만을 부수고 싶다. 내 노력의 의미를 제대로 보이고 싶다. 그것이 청년을 지배하는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좋지만, 어떻게 입증하려고?”
“너와의 듀얼로 직접 생각을 바꿔줄게. 언젠간 기회가 있겠지?”
청년의 푸른 눈과 사냥꾼의 금빛 눈이 서로를 비추었다. 청년은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이는 사냥꾼에게서 꺾인 적 없는 이의 자신을 읽어낸다.
“사실 나, 이전부터 쿠로사키와 제대로 싸워보고 싶었어.”
사냥꾼이 적의 첩자라 확신하게 된 이상, 어차피 청년은 그와 싸우게 될 수밖에 없다. 싸워 그 가면을 벗기고 그라는 위험을 제거해야만 한다. 그가 가져온 독이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퍼지기 전에. 청년은 그 후로도 사냥꾼과 함께하며 그를 파헤치는 한편 그를 처리할 기회를 노렸다. 언젠가는 꼭 내 손으로, 나의 방식으로 쓰러트려야지. 우리들이 언제까지나 쫓기는 것이 아니라 적을 무너뜨릴 수 있음을 보여줘야지. 그리고 내가 여기까지 가져온 소망이 어떤 무게를 갖는지도 보여줘야지. 그런 생각을 안은 채 사냥감은 사냥꾼을 사냥할 날을 고대하고 있었다.
운 좋게도, 청년이 바라던 날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볼 관객들이 가득 들어찬 무대까지 준비된 채. 아. 최상의 날이야. 청년은 한껏 들뜬 채 맞은편에 선 사냥꾼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차갑게 가라앉던 사냥꾼의 눈에도 처음으로 사냥의 열기가 비치고 있었다.
*
사냥꾼은 금빛 눈에 천천히 관객을 담았다. 이번의 전투는, 모두가 지켜보는 경기장에서. 사냥감에게 휘말려 하게 된 거리 공연으로 얼굴이 알려진 것인지 벌써 자신을 향한 응원의 목소리도 들리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진득하고 그 얼굴에 떠오른 기대는 무겁다 ─ 살피는 것만으로도 어지럽다. 그는 이런 형태의 전투가 피로했다. 쇼의 형태를 띤 탓에 관객에게 낱낱이 해부되고 평가받아야 하는 것이다. 전투의 목표란 타인에게 점수를 얻는 것이 아니라 승부를 내는 것인데.
적의 숨을 끊는 것은 쉽다. 그러나 적과 어울려 무대를 꾸미는 것은 어렵다. 그런 자신을, 언젠가 목을 물어버려야 할 사냥감이 자꾸만 무대로 끌어올린다. 그럴 때마다 사냥꾼은 숨기고 있는 발톱으로 그것을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눌러야만 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이 임무도 끝난다. 그때면 장난처럼 느껴질 뿐인 이곳의 전투에 묶일 이유도 없다. 조금만 더. 임무가 끝날 때까지만. 그렇게 자신을 달래며 지금까지 본모습을 숨긴 사냥꾼이었다.
그를 제멋대로 휘두르던 사냥감은 지금 그를 상대하기 위해 함께 무대에 올라와 있다. 공연을 빌미로 몇 번 얽히긴 했지만 정식으로 싸우는 것은 이번이 처음. 지금까지는 상대도 가볍게 부딪혀왔으니 그 전까지 보여준 모습을 본실력이라 생각하긴 어렵다. 그렇다면, 진짜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사냥꾼은 오늘에야말로 사냥감을 확실하게 몰아붙여 그것이 가진 전부를 파헤칠 작정이었다.
“랜서즈 동료들끼리 싸운다니 유감이지만, 힘내보자고.”
여느 때처럼 나긋한 사냥감의 목소리에, 사냥꾼은 답하지 않고 무기를 꺼내들었다.
“에, 쌀쌀맞기도 해라. 나 역시 미움받고 있는 거야?”
청년의 삐죽거림은 경기장에 하나둘 소환되기 시작한 사냥꾼의 기계 새에 금세 끊어졌다. 병기로 만들어진 새가 위협적인 울음소리를 내며 사냥꾼의 머리 위를 날고 있었다. 정복자에게 병기라. 참으로 어울리는 테마였다. 게다가 저것이 어떻게 적을 몰아세우는지 생각하면.
“아, 쿠로사키는 역시 무섭네. 처음부터 용서 없이 가겠다는 거지?”
“제대로 싸우고 싶다고 말했던 건 너였다.”
“그랬지. 그러니 당하고 있지만은 않아요?”
하지만 자신의 싸움은, 정복자의 것과는 다르다. 청년은 곡예사를 불러내며 지금까지 고집스레 가져온 자신의 방식을 생각한다. 어느 때라도 적과 같아지려 하지 않는다. 어디에서도 엔터테이너가 되어 관객이 즐거워할 무대를 펼친다. 그의 곡예사는 무대에 올라오자마자 화려한 기예를 펼치며 관객의 시선을 빼앗았다.
“그래서?”
“기대해달라고.”
“전투에 집중해라.”
사냥꾼의 기계 새가 폭격을 퍼부었다. 적을 섬멸하기 위해 만들어진 병기가 생물의 형태를 모방하고 있다는 점이 청년은 언제나 오싹했다. 정복자가 불러낸 병기는 빠르게 곡예사를 찢으며 청년의 공격을 차단했다. 병기의 폭격은 그것만으로 그치지 않아 경기장에도 이곳저곳 할퀸 자국을 남겨놓았다. 그 처참한 풍경에 청년은 문득 떠나온 고향을 떠올렸다. 득실거리는 괴물이 모든 것을 부수던 곳. 순간순간 눈앞을 메우던 파멸.
청년은 함정으로 사냥꾼의 공격을 간신히 끊고는 새로운 곡예사를 불러냈다. 정복자를 굴복시키는 것은 그들이 가져온 것과 같은 전쟁이 아니라 자신의 쇼여야 했다. 자신은 저들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복자의 무자비한 공격은 청년의 투쟁심을 태워, 청년은 정복자에게 압도당한 관객을 빠르게 제 편으로 돌렸다. 엔터테이너를 꿈꾸며 익혀온 화려한 기예를 통해서였다. 사냥꾼이 다음번에 무엇을 처단할지 긴장하게 한다면, 청년은 다음번에 어떤 트릭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하게 했다. 관객의 열기가 힘이 된 것인지 청년은 자신의 차례에 정복자의 병기를 마비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로부터 몇 번 차례가 바뀌었고, 사냥꾼과 청년은 고집스레 자신의 방식으로 상대를 몰아세웠다. 사냥꾼의 병기가 청년을 매섭게 물어뜯으면 청년의 곡예사가 기계 새를 몰아내고 우아하게 인사하는 식이었다. 턴을 넘길 때마다 서로에게 타격을 입히는 것은 같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몰리는 건 청년이었다. 쇼는 싸움을 이길 수 없다. 그렇게 말하기라도 하는 듯 턴을 거듭할수록 사냥꾼이 더 맹렬하게 청년을 공격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사냥꾼의 기계 새와는 달리 청년의 곡예사는 싸움을 위해 설계되지 않은 것. 병기를 압도하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얌전히 굴복할 청년이 아니었다. 그래서야 지금까지 정복자에게 당해온 것과 다를 바 없었다. 힘이 닿는 데까지는 싸워야 했고 뛰어넘어야 했다. 열세에도 끈질기게 싸워 다시 분위기를 가져온 청년은, 막 차례가 돌아와 카드를 뽑은 사냥꾼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 그럼 오늘의 하이라이트! 쿠로사키 슌의 정체를 밝혀보겠습니다.”
청년은 손가락을 튕기며 말을 이었다.
“지금껏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던 그의 진짜 모습! 그건 쿠로사키가 가지고 있는 카드로 증명하도록 하죠.”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청년에게 향했다. 모두 그의 다음 말을, 혹은 사냥꾼이 조금 전 뽑아 꽂아둔 카드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사냥꾼은 과연 여기까지 예상했을까? 농락할 가치도 없다고 판단했을 사냥감이 자신의 정체를 의심하는 것을.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확신하고 몰아세우리란 것을. 아니, 아마 전혀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투시 마법으로 들여다보면, 지금 그가 뽑은 카드는, 융합!”
사냥꾼이 자신의 카드에 시선을 두었다. 동요는 없지만 청년은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저기에, 있다. 정복자의 증거가. 자신의 고향을 짓밟았던 무기가.
“어울려주기로 했잖아? 설마 공개할 용기도 없는 건 아니겠지?”
질 낮은 도발임은 알고 있었지만 사냥꾼은 피할 수 없었다. 고작 사냥감 따위의 도발에 물러서선 안 된다. 정복자로서 아예 숨을 끊어버릴 수밖에.
자, 어서 그 카드를 써. 어서 정체를 밝혀. 청년은 기대 섞인 시선으로 사냥꾼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얽혔고 결국 사냥꾼은 자신의 정체를 바로 보여주는, 정복자의 무기를 꺼냈다.
“쿠로사키 슌은, 아카데미아였습니다!”
청년은 즐거이 외쳤다. 이제 모두가 안다. 사냥꾼이 어떤 인간인지를. 그가 감추고 있던 본질이 얼마나 조악한 것이었는지를. 사냥꾼은 더 이상 아군으로 위장하지 못할 것이고, 경기의 승패가 어떻게 되건 목표를 이룰 수 없을 것이다. 운 좋게 빠져나가 제 나라로 돌아가지 못하는 한, 역으로 이용당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상상만으로도 짜릿하다.
모두가 지켜보는 곳에서 정체를 밝혔으니 이제 청년이 해야 할 일은 하나. 사냥꾼을 무너뜨리는 것. 더 이상 숨길 것이 없는 정복자는 자신의 병기를 총동원해 가능한 빨리 사냥감을 처리하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은, 그걸 이용할 수밖에. 정복자가 간과한 것은 청년이 그 참혹한 전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였다는 것이다. 그의 생존은 그가 열세를 이겨낼 힘을 가진 인간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압도적인 힘에 맞서 버티기 위해 청년이 택한 건 열세에서 발동할 무기로 무장하는 것. 상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자신이 내몰리면 내몰릴수록 무기의 힘은 커진다.
청년은 사냥꾼의 공격을 유도하기 위해 그를 자극하기로 했다. 그걸 위해 사용한 것은, 그가 자랑스레 품어왔던 엔터테이너의 습성. 어느새 청년의 곡예사는 사냥꾼의 병기를 유인하기 위해 무대에 오르고, 화려한 쇼는 사냥꾼을 농락하는 것이 되었다. 자, 어서. 쿠로사키. 너는 이런 걸 몹시 싫어하잖아? 곡예사가 쓰러졌을 때 청년은 슬며시 웃었다. 자신의 무대가 무너질수록 그는 들뜨는 것처럼 보였다. 어서, 쿠로사키. 마침내 사냥꾼이 그의 무대를 전부 쓸어버렸을 때 청년은 숨겨두었던 함정을 발동했다. 자신이 모든 것을 잃었을 때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효과를 가진 것을.
함정의 효과로 청년의 앞에 쓰러진 곡예사들이 되살아났다. 그들을 제물 삼아 청년은 자신의 최종병기를 꺼냈다. 눈앞에 승리가 아른거리는 것 같다. 청년은 기쁨을 숨기지 않고 사냥꾼을 바라보았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어. 쿠로사키. 이전에 말했던 대로 악이 패배하는 때가 온 거야.
이제 사냥꾼에게 청년의 공격을 막을 수단은 남아있지 않았다. 병기는 그의 손을 떠났고 파둔 함정도 전부 소모했다. 사냥감을 으깨려 했던 그의 시도는 실패했다. 청년의 몬스터는 사용자가 명령한 대로 사냥꾼에게 향해, 마지막 공격을 날렸다. 사냥꾼은 자신을 지킬 벽 하나 없이 맨몸으로 공격을 받고 무너졌다. 결국 청년은 자신의 쇼로 정복자의 전쟁을 이겼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기적처럼 느껴지는 승리에도 청년은 한참을 경기장에 멍하니 선 채였다. 청년이 움직인 것은 사람들이 쓰러진 사냥꾼을 옮기기 위해 경기장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청년은 갑자기 사람들을 헤치고 사냥꾼에게 다가갔다.
청년은 사냥꾼을 조심스레 일으켜 고개를 들게 했다. 통증으로 조금 일그러지긴 했으나 단정한 얼굴에서 굴욕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다. 그것을 확인하고 청년은 처참해졌다. 생각이 얼굴에 드러나기라도 했는지 사냥꾼이 심술궂게 물었다.
“왜. 이런 결말을 바란 것 아니었나?”
“너는, 어떻게.”
어떻게 안 거야. 어떻게 네가 알고 있었던 거야. 청년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자신조차 몰랐던 본질을, 그는 어떻게?
승부가 나는 순간, 사냥꾼이 쓰러지는 순간 청년은 깨달은 것이다. 자신이 줄곧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자신의 무대는 아직 전쟁에 먹히지 않았다고 위안하기 위한 포장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그래서 언제든 놓을 수 있는 것이었음을. 사냥꾼은 틀리지 않았다. 청년을 들여다보았든 멋대로 지껄였든, 결과적으로 그는 청년의 내부를 정확히 짚고 있었다.
“말해, 쿠로사키. 어서 말해.”
왜 하필 사냥꾼에게 밝혀진 것일까. 왜 지금까진 그렇게 생각지 못했던 것일까. 왜 자신의 것이 비어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을까. 지금까지 무엇을 그렇게 자신하고 있었던 것일까. 청년은 사냥꾼을 흔들며 계속 지껄여댔다.
“그 전에 했던 말은 그냥 깎아내리려 한 것에 불과하다고, 내 엔터메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른다고, 내 엔터메는, 내가 생각하던 건 자기최면 같은 게 아니라고, 나는…….”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것일까. 틀리지 않았다고? 내가 품고 있던 건 순수한 것이었다고? 그렇다면 왜 확인받으려 드는 것일까. 그것도 자신이 직접 끌어내린 사람에게.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사상의 순수성을 입증할 필요 같은 것은 없었다. 정말로 믿고 있었다면, 사냥꾼의 말 따위 흘려버리면 그만이었을 텐데. 증명하려고 열을 올린 것이야말로 실은 그 뿌리가 얼마나 빈약한지 들키지 않으려는 방어였던 것일까.
“제발, 쿠로사키. 네가 말해주지 않으면 안 되니까.”
“승리를 축하해, 엔터테이너 씨. 이번 무대는 정말 즐거웠어.”
조롱인지 체념인지 모를 말을 던진 사냥꾼은 힘이 빠졌는지 청년의 품에 무너졌다. 끝내 청년에게 답을 주는 일 없이.
그대로 얼어버린 청년에게 객석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어떤 무대보다도 길고 열광적인 찬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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