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슌] 표류

2018. 11. 30. 23:57 from 02

 

스카프로 목을 감싸고 매듭을 짓는다. 목에 살짝 압박이 갈 정도로 죄면 완벽하다. 청년은 코트 깃을 세워 목을 한 번 더 덮고서야 목에서 손을 뗀다. 지루할 정도로 오래 이어온, 평범한 습관이다.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청년이 방을 나서기 전 필요한 물건을 챙기던 때였다. 분명 어제까지는 본 기억이 없는 물건이 눈에 띄었다. 테이블에 놓인 것은 작은 상자. 아무래도 짐작이 가는 것이 없어 상자를 들고 이리저리 살피니 가까운 곳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사장님으로부터의 선물이다.”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청년이 머물고 있는 회사에 소속된 사람. 청년은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보았다. 짐작대로 사장의 비서가 문가에 기대 서 있었다. 별로 얽힐 일이 없는 사람이 일부러 찾아온 걸 보면 전할 말이 있는 게 분명했다.

그 남자가 좋아할 짓을 한 기억은 없는데.”

너는 언제나 삐딱하군. 그냥 호의를 베푸신 거야. 랜서즈 모두에게 개인적으로 선물을 준비하셨지.”

방문자는 청년의 불손함에 얼굴을 찌푸렸지만 크게 책망하진 않았다. 청년은 회사 차원에서 보호의 대상이었고, 사장이 협력자로 대우하는 사람이었으므로. 몇 개월 전까지 청년은 사장이 가장 편하게 사용하는 패였다. 두 사람이 함께한 목적은 종료되었으나, 그가 세운 공은 분명히 가치가 있다. 사장이 이국에서 온 청년을 계속 눈 닿는 곳에 두려고 하는 것도 어쩌면 청년 자체에 아직 욕심이 남아서인지도 모른다.

협력자라고는 해도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관계는 아니다. 청년은 사장에게 비즈니스 파트너보다 무기에 가깝다. 침략으로 폐허가 된 나라의 생존자로, 세상에 전쟁이 더 번지는 것을 막으려던 사장의 첫 번째 전사가 되어준 자가 청년.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저항군으로 지냈다던가, 단지 운으로 살아남은 것은 아니었는지 청년은 사장에게도 그가 결성한 정예병에도 큰 힘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하나 더. 사장님은 너와 따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신 모양이야. 확인하고 싶은 게 있으니 찾아달라고 하시더군.”

사장은 그런 청년에게 좀 더 자신의 색을 입히고 싶은지, 꾸준히 그를 불러들이고 있었다. 용건을 전하자 청년은 무심하게 반응했다.

사장실로 가면 되나?”

그래. 지금은 사람도 없으니까.”

청년은 고개를 끄덕이고선 코트 주머니에 상자를 넣었다. 그 속에 든 것이 무엇인지 당장은 확인할 생각이 없었다. 청년에게 협력자는, 이 회사의 젊은 사장은 속을 모를 인간이었다. 이기지 못할 싸움은 설계조차 하지 않고 목적 없는 행동은 결코 없을 것 같은 사람이 바로 그 사내였다. 그가 호의를 내세우며 보낸 선물에 어떤 계산이 깔렸을지 따위, 생각하고 싶지 않다. 지금 저에게 대화를 요구하는 이유도. 나를 좀 더 믿어주었으면 좋겠는데. 사내가 자주 꺼내는 말을 떠올렸을 때, 청년의 등에 엉뚱한 말이 꽂혔다.

쿠로사키, 왜 아직도 그 스카프를 하고 있는 거지?”

회사 사람들이 내 옷차림에 왜 그렇게 신경을 쓰는지 모르겠어. 어차피 나는 회사 소속도 아닌데.”

레지스탕스의 표식이라며. 이전에 사카키 유우야가 말하는 걸 들었다. 전쟁이 끝난 지금은 아무런 의미도 없을 텐데.”

습관이야.”

버리지 못하는?”

청년은 상대를 노려보고는 방을 나섰다.

비서가 지적한 스카프는 이곳에 오기 전부터, 폐허에서 침략자에 맞설 때부터 청년의 목을 죄던 것이다. 몸 어딘가에 붉은 천을 매는 것이 저항군의 표식. 동지들을 남겨두고 고향을 떠나면서도, 이국에서 위험한 싸움에 뛰어들면서도 청년은 그 표식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그것은 때로 청년에게 책임을 일깨웠고 가끔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했다. 본질은 평범한 스카프에 불과하더라도 청년에게만은 의미 있는 것이다.

다만 그 의미가 유효한 것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전쟁이 끝나면 저항군은 해체되는 것이 당연하다. 전쟁에 맞춰진 것도 전부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고향의 동지들은 이미 과거의 흔적을 풀어내고 복구에 힘쓰고 있다고 들었다. 아직껏 저항군의 표식을 버리지 못한 것은 청년뿐일 것이다. 청년이 지닌 스카프의 의미를 아는 자라면 한두 번씩은 그에 대해 지적했지만 청년은 매번 습관이라며 넘길 뿐이다.

조금 전의 말에 감정이 헤집어지긴 했으나, 오래 생각할 말은 아니었다. 청년은 바로 사장실로 향했다. 회사에서 자신의 방 다음으로 자주 찾는 곳. 사내는 웃음 띤 얼굴로 협력자를 맞아주었다.

선물은 잘 받았을까.”

그건 리더로서의 포상인가?”

무엇인지 확인하지도 않은 모양이야. 열어봤다면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을 텐데.”

기묘한 말에 청년은 주머니에서 상자를 꺼냈다. 의심스러운 눈길을 숨기지도 않고 상자를 열어보니, 그 속에 담긴 것은 초커. 거기서 청년은 오래지 않은 기억을 떠올린다.

며칠 전 사장실에 갔을 때, 청년은 잠깐 자리를 비운 사내를 기다리며 잡지를 읽었다. 기사를 훑으며 빠르게 페이지를 넘기던 때. 청년의 손가락이 갑자기 멈췄다. 시선을 끄는 것이 있었다. 액세서리 광고 페이지, 그 중에서도 여러 가지 초커의 사진에 청년의 시선이 한동안 머물렀다. 사내가 들어오던 때도 아마 그 페이지를 보고 있었을 것이다. 눈치 빠른 사내는 그때 청년의 관심을 포착해 적절한 선물을 준비했으리라. 사내가 선물한 것은 청년이 들여다보던 것과 비슷한 스타일의 초커였다.

관심이 있는 것 같아서. 사실은 직접 하고 와주길 바랐는데.”

나쁘지 않군.”

어때, 지금이라도 할 생각은?”

보고 싶다면 다음번에 하고 오지.”

스카프만 풀면 되는데?”

슬쩍 피하려 드는데도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싱글거리는 것이 수상쩍다. 청년의 머리에 조금 전 비서에게 듣고 온 말이 울린다. 어쩌면 사내의 진짜 목적이 저것이었을까. 전쟁에 짓밟힌 사람에게서, 전쟁의 그림자를 남김없이 긁어내기. 청년은 전쟁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무기를 내려놓았고 심리적인 무장도 해제하려 계속 노력하고 있었다. 사내가 권유한 여러 프로그램을 소화하는 것은 물론이었다. 그런데도 사내는 겨우 과거의 흔적 따위를 청년에게서 뜯어내려 고집을 부린다. 본래의 의미는 소멸하고 껍질만 남은 것을.

왜 목을 그렇게 감싸려 드는 거지? 흉터라도 있나?”

그쪽이 별로 보고 싶지 않을 것은 있지.”

스카프로 목을 감싸기 시작한 후로 청년은 고향의 동지에게도, 이국에서 함께 싸운 무리에게도 목을 보인 일이 없다. 누구에게도 드러내고 싶지 않아 줄곧 가렸던 것인데.

영민한 사내는 타인이 그어놓은 선을 빠르게 감지한다. 청년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들어가도 좋을 선이 어디까지인지, 들여다볼 수 있는 영역은 어디까지인지 따위는 쉽게 알아냈을 것이다. 그런데도 사내는 아무것도 모르는 체, 자꾸 청년의 선 안으로 들어오려고 한다. 그의 내면을 해부하고 병든 부분을 치료하려 든다. 과한 호의인지, 아니면 모든 걸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오만인지 청년은 알 수 없다. 다만 어느 쪽이건 그에게 불쾌하다는 것은 같았다.

전쟁은 끝났다, 쿠로사키.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아야 해.”

나는 충분히 내려놓았어. 모두의 바람대로 노력하고 있고. 스카프 같은 건 아무것도 아냐.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과거의 흔적을 계속 안고 가다간 전쟁에서 벗어날 수 없어. 전환이 필요하단 거다. 전쟁과 관련된 것을 의식적으로라도 없애고, 새로운 것으로 채워.”

남의 일이라고 쉽게 말하는군. 네가 뭘 안다고 그래?”

제삼자이기에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법을 생각할 수 있다면?”

무엇이 저 사내에게 저만큼 자신을 안겼던가. 청년은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잘 벼린 이성으로도 날카로운 시각으로도 들여다볼 수 없는 영역은 있다. 사내는 그의 심연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일정 기간 함께해온 것으로, 비슷한 목적을 안고 싸워온 것만으로 타인을 진단하려 든다니.

거기서 청년은 사내의 자신을 꺾고 싶어진다. 언제나 당당한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걸리는 것을 보고 싶다. 청년은 사내의 말에 방어하기보다 그를 도발하는 것을 택한다.

좋아. 그렇게 자신이 있으면 네가 직접 내 목에 채우라고. 스카프도 치우고 잘난 선물도 확인하게.”

말이 떨어지자마자 사내는 기다렸다는 듯 청년의 눈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전투가 끝나고도 전사의 족쇄를 스스로 차고 있던 자를, 그를 이끌었던 지휘관이 직접 해방시킨다 묘한 희열마저 느끼며 사내는 초커를 꺼냈다. 이제 스카프를 풀고 청년의 목에 채워주기만 하면 된다. 사내의 손가락이 스카프의 매듭을 조급하게 풀었다. 그동안 청년이 고집해온 시간이 허망하게 느껴질 정도로, 너무도 쉬웠다.

스카프가 사락거리며 떨어졌고, 청년과 만난 이래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의 목덜미가 드디어 드러났다. 기다리던 시간이 현실이 되었을 때. 사내의 손이 멎었다.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 그 아래 있었으므로. 그토록 자신만만하던 사내가 그대로 얼어붙자 청년은 빈 웃음을 걸쳤다.

별로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거랬지.”

사내의 얼굴이 굳어진다. 아무래도 청년은 그의 생각보다 더 망가져 있었던 모양이다.

 

*

 

생각해보면 청년은 목을 강박적으로 가리는 편이었다. 자주 입고 다니는 코트는 깃을 세웠고, 와이셔츠라도 입으면 단추를 끝까지 잠가야만 했다. 저항군의 표식이라는 스카프가 목을 완전히 싸매는 건 물론이었다. 아니, 단순히 목을 가리려 들었다고 하기엔 부족함이 있을지도 모른다. 때로 그는 자신의 목을 죄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살갗을 드러내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라, 목을 싸매는 것도 그 연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었다면? 목을 죌 정도로 단단히 가려야만 하는 이유가 따로 있었다면?

볕을 보지 못해 유독 흰 목덜미에는, 가느다란 무언가로 목을 졸린 듯한 자국이 남아있었다. 누가 청년의 목을 졸랐을까. 그는 지금껏 무엇을 숨기고 있었던 것일까. 온갖 말이 속에서 꿈틀거렸으나, 사내는 혀가 굳어버린 것처럼 어떤 말도 토해내지 못했다. 무엇부터 물어야 할지 몰랐고, 물을 경우 어떤 답이 돌아올지 두려웠다. 그렇게 한동안 공간을 누르던 침묵을 깬 것은 청년이었다.

나쁜, 습관이야.”

청년의 긴 손가락이 오싹한 자국이 남은 목을 쓸었다. 앞뒤 없이 흘러나온 말은 안개처럼 흐려서, 결국 사내는 청년에게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누구의?”

내 습관이지. 전쟁이 끝나면 다 나을 줄 알았는데.”

청년의 말은 보통 직관적이고 명료한 것이었다. 때때로 돌려 말하더라도 못 알아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엔 너무 막연하다. 그 이상은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것인지. 평소라면 그가 말하려 들지 않는 것은 적당히 묻어두는 사내였지만, 이번엔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사내는 청년이 습관이라고 표현한 일을 명확하게 알기 위해, 그가 가리는 부분을 파헤치기로 마음먹었다.

목을 졸린 거지? 누가 그랬어?”

“‘습관이라고 했잖아. 스스로 목을 조르는 거야. 손으로든, 끈으로든.”

쿠로사키, 설마.”

자살을 시도했던 거냐고 물을 생각이었다면, 글쎄. 죽어도 상관은 없었지만, 죽는 게 목적인 건 아니었는데.”

그러면?”

청년은 오랫동안 제 목을 죄었던 스카프를 내려다본다. 그 아래, 많은 것을 감춰두었다. 함께 싸운 동지들도, 유일무이한 친우도, 협력자라는 이름으로 얽힌 사내조차도 모를 것을. 어디에 매어도 좋을 저항군의 표식을 하필 목에 두른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전쟁이 끝나는 동시에 풀어내야 했던 것을 아직까지 지니고 있는 것에도.

레지스탕스 사이에 통하는 농담이 있었어. ‘우리는 미쳐서 살아남은 것이라고. 농담이라곤 하지만, 아마 다들 반쯤은 진담이었을 거라고 생각해.”

그 말은, 너도 미쳐있었단 것?”

제정신으로 버티기엔 매일이 너무 끔찍했지.”

그가 있었던 지옥에 대해선, 그의 동지들 이외엔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다. 한 번도 진짜 전장에 발을 들인 적 없는 사내가 상상할 수 있을 리 없다.

레지스탕스 대부분은 강박을 안고 있었다. 도통 이해할 수 없는 강박적인 행동 말이야. 어떤 놈은 자기가 살아온 날을 매일 정확히 세어야 했어. 잡동사니를 끌어와서라도 제 주변에 벽 같은 걸 쌓아야 하는 놈도 있었고. 나는 목을 조르기 시작했는데, 목이 졸리는 감각도 숨이 막히는 것도, 정신이 풀리는 것까지도 안정을 주더군.”

매일 사람이 쓰러지는 전장에선 다들 제 삶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바빠, 마음만 먹으면 함께 지내는 이들의 시선을 피해 무슨 일이건 할 수 있었다. 자신을 학대하는 일이라면 더더욱 쉽다. 청년은 언젠가부터 와이셔츠 단추를 풀고 천천히 제 목을 졸랐다. 처음에는 시늉만 하던 것이 날이 갈수록 대담해졌다. 어딘가에서 끈을 구해온 후로부터는, 거의 기절하기 직전까지 목을 조를 때도 있었다.

와이셔츠 단추만 끝까지 채우면 그가 무슨 일을 했는지 누구도 알지 못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청년은 학생으로 이뤄진 저항군의 중심이었고, 침략자에 거의 대등하게 맞서는 강한 인간이었으니까. 전투력만큼이나 강한 정신의 소유자로 비쳤기에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청년은 자신처럼 되고 싶다는 소년들에게 언제나 같은 말을 돌려주었다.

[나 같은 인간이 되면 곤란한데.]

나만큼 망가져선 안 되지. 아마 뒷말은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기껏해야 저보다 몇 살 더 많은 청년을, 더 많은 적을 쓰러트리는 강함을 보고서 동경하는 소년들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들이 동경하는 강함이란 얼마나 우스운가. 청년의 내면은 소년들보다도 훨씬 망가져서,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는데. 전쟁이 일어난 때부터 그의 눈은 희망을 비추지 못했고 그의 머리는 미래를 생각할 줄 몰랐다. 내일을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 오늘의 싸움을 그저 넘길 뿐이었다. 그러한 태도는 그가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게 했지만, 동시에 그가 이른 나이에 닳도록 만들었다.

아무도 몰랐나?”

대부분은. 유토까지 몰랐으니 정말 잘 숨긴 편이지. 실은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는데, 한 번은 들켰고.”

누구에게.”

루리에게.”

어느 날 청년은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제 목을 조르고 있었다. 이전에 목에 남긴 자국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강박적으로. 숨이 막혀오고 정신이 차차 흐려졌지만 청년은 멈추지 않았다. 고통에도, 몸이 내는 위험신호에도 중독이라도 된 것 같았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삶의 증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가 매일 목격하는 죽음은 너무 가벼워 비현실적이었고, 그의 목숨을 이어온 건 절반쯤은 운이었다. 살아있다는 확신을 느끼기엔 너무 불안한 삶에서 그나마 현실감을 주는 건 청년이 위험천만한 습관으로 확인하는 것들이었다. 통증이나 죽기 직전의 신호 등.

몸을 몰아세울수록 삶의 감각은 선명해지고 정신은 흐려진다. 끝까지 몸을 통제하려 한다면, 기를 쓰고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다. 정신이 끊어지기 직전, 겨우 자신을 놓아주었을 때. 청년은 인기척을 느꼈다.

몽롱한 채로도 청년은 자신에게로 가까워지는 발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때는 이미 누구인지 확인할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철저하게 숨겨오던 자기학대를 들킨 상황에 뭐라고 변명해야 할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차가운 벽에 기대, 한동안 막혔던 숨만 들이쉴 뿐. 발소리는 멈추지 않았고, 오래지 않아 청년은 처음으로 자신의 병든 습관을 목격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표정 없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는 사람은, 여동생.

그 애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어. 무슨 짓을 하냐고도, 무엇 때문에 그러고 있었느냐고도 묻지 않았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내 곁에 왔을 뿐이야. 그 애는 내 왼쪽 손목에서 레지스탕스의 표식을 풀어내더니, 그걸 목에 둘러주었어. 그 다음에야 한마디 하더라고. ‘목에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라고.”

동생은 모른 체 넘겨주었다. 그렇다면 청년이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동생의 뜻대로 목을 감싸고 다니는 것.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숨기고 지내는 것. 손목을 감싸던 스카프는 타인에게 드러낼 수 없는 목을 충실하게 감쌌다. 언제나 몸에 지니고 다니는 저항군의 표식이니 타인에게 설명할 이유도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나쁠 건 없었으나 가장 큰 수확은 그 후 청년이 제 목을 조르는 일이 많이 줄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목을 조른 흔적을 가려온 거군.”

무언가가 내 목을 감싸고 있다는 것도 좋았어. 조금만 세게 묶으면 압박이 되었거든. 그래, 목을 조를 때처럼.”

형제가 전장에서 황폐해진 것을 알기 때문인지, 아니면 차마 말을 할 수 없어서였는지 동생은 그때도 그 후로도 그런 행동을 하지 말라는 말은 않았다. 동생에게 미안해져 청년이 스스로 이상행동을 줄이려 노력한 것도 아니었다. 동생이 스카프를 매어주었을 때의 감각이 꼭 목이 졸린 때처럼 안정감을 주었을 뿐이었다. 스카프를 풀지만 않으면, 목을 조르고 싶어질 때는 거의 없었다.

그때부터 그의 위험한 습관은 방향이 살짝 달라졌다. 이전엔 삶에 드리워진 강박이었던 것이 특정한 조건에서만 일어나는 것으로 바뀌었다. 어느 정도는 통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니 목을 덜 조르고 살 수 있었지.”

“‘나쁜 습관을 없앨 길은 찾지 못했고?”

글쎄, 두려워지면 되살아나더라고. 사람은 기계처럼 바로 수리가 되진 않아.”

그럼 지금은 뭘 두려워하고 있는 거지?”

이야기를 듣는 내내 사내는 청년의 목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청년이 스스로 목을 졸라 생겼을 자국은 가느다랗긴 했으나 제법 선명했다. 아마 최근에 새겨진 것이리라. 거기서 의문이 머리를 친다. 전쟁이 끝나고도 몇 달, 그동안 침략자도 위험도 없는 평화로운 도시에서 지낸 청년이 왜 목을 졸랐을까. 청년이 회사에서 지내기 시작한 때부터 그에 대해 보고받은 사항을 하나씩 떠올려도 짐작 가는 것이 없다.

아카데미아는 이제 누구도 짓밟을 수 없어. 침략군을 이끌었던 자들에 대해선 처분을 논의하고 있고, 네 고향인 하트랜드는 차차 복구될 거다. 지금 네 목을 조르는 건 뭐지, 쿠로사키?”

멀쩡해지는 것.”

한참이나 지나 흘러나온 말은 간결하고, 끔찍했다.

너는 아무것도 몰라. 내가 어떤 지옥에 있었는지, 네 눈으로 직접 본 적도 없지. 매일 귀를 때리는 포성과 하루하루 새롭게 무너지는 세상, 흔해빠진 죽음과 언제 모든 게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 그 속에서 살아남을 수야 있어. 하지만 그건 끔찍하게 망가진 삶이지. 전장에 선 때는 버티는 게 급해 어떻게든 넘기게 되지만.”

전쟁이 끝난 때 느꼈군.”

레오 코퍼레이션의 푹신한 침대에서 잠들었다 깨면, 내가 귀가 멀었나 싶은 거야. 너무, 고요해. 방을 나오면 세상이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가고 있어. 내일을 걱정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지. 모든 게 지나치게 멀쩡해. 그게 적응이 안 되거든.”

투쟁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곳에서 청년은 몇 달을 보냈다. 사람들은 사소한 것에 웃고, 먼 미래의 꿈을 꾸며, 평온함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 평범한 것들이 청년에게는 얼마나 버거웠는지. 고요에 숨이 막혔고 행복에 어지러웠다. 평화에 멀미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런 문제는 누구도 짚어낼 수 없다. 사내가 붙여준 의사의 차트에도, 검진 결과에도 찍힐 리 없는 실체 없는 병.

삶이 너무 망가져서 그래. 평범한 삶에 이질감을 느끼는 거야. 그래서야 어떻게 모두의 바람대로 멀쩡해지겠어?”

사람은 자신에게 익숙한 상태로 돌아가려는 습성이 있다고 하지. 그게 자신을 갉아먹는 방향이라고 해도.”

다들 청년을 두고 지독한 인간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적에 대한 청년의 자비 없는 태도를 말하는 것과 동시에 무엇에도 꺾이지 않는 그의 강인함을 뜻하는 표현이기도 했다. 그렇게 단단했던 사람이 정작 평화에 방황하고 있다. 어쩌면 사내는 지금껏 방심해온 것일지도 모른다. 전쟁이 청년의 삶에 드리운 그림자를 과소평가하고 그의 삶에서 나쁜 부분을 완전히 긁어낼 수 있다고 간단히 믿고서.

네가 바라는 대로 목을 보였고 불필요한 설명까지 했어. 만족해?”

껄끄러운 이야기를 하게 한 건 미안하군. 그래도 문제를 알았으니 조치를 취해야겠어.”

이해가 가지 않아. 모른 척 하면 되는데.”

청년은 가벼운 웃음을 걸친다.

아무 일도 없었던 척 하는 거야. 내가 스카프를 계속 두르고 다닌 건 습관이었을 뿐이고, 내 목엔 아무런 흔적도 없는 거지. 자기 목을 조르는 인간 같은 건 적어도 네 지인 중에는 없어. 그렇지?”

그런 식으로 도피하려고?”

스카프를 다시 하기만 하면.”

계속 목을 조르고 살겠지.”

전쟁으로 생긴 위험한 습관을 지금까지 숨겨온 청년이다. 마음만 먹으면 앞으로 몇 개월, 문제가 사라지지 않을 경우 몇 년도 더 숨길 수 있을 것이다. 내내 가까이서 청년을 관찰해온 사내조차 이제야 발견한 문제인데 다른 이들이 눈치챌 리 없다. 청년이 전쟁으로 황폐해졌다는 것을 어렴풋이 아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의 뒤틀림에 대해 방심할 것이다. 인간불신과 극단적인 경계 같은, 겉으로 드러나는 그의 문제를 걱정하느라 내면의 문제는 생각지도 못할 게 뻔하다.

흔적만 가리면 된다. 의심스러운 부분만 보이지 않는다면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는다. 청년이 지금껏 그렇게 생각해왔다면 사내는 이번에 알게 된 사실에 대해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사내가 나서지 않으면 청년은 앞으로 더 교묘하게 자신을 괴롭히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어떻게 할 생각인데?”

네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부터 생각해. 그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결심? 나아질 수 있다는 확신? 아니면, 완전히 안정을 느낄 수 있는 환경?”

고쳐보겠다고?”

네가 필요한 게 무엇이든 도와줄 뜻이 있다. 네가 겪는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알았으니 집중적으로 관리해야지.”

무엇 때문에?”

청년의 얼굴에는 동요가 없다. 목소리에 약간의 웃음기가 밴 것은 들뜬 것이라기보다 사내의 열의를 비웃는 듯하다.

나는 너 같은 인간을 많이 봐왔어. 사람을 고치려 드는 자. 시작이야 좋지. 자기 눈에 들어온 대상에 과할 정도로 관심을 쏟으면서 그 삶을 완전히 책임지고 싶어 해. 하지만 길면 반 년, 짧으면 몇 번의 만남에서 끝나.”

나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나?”

의욕이 클수록 좌절도 깊거든. 누군가의 구원자가 되고 싶다는 알량한 심리만으로 감당해낼 순 없어.”

구원을 내세우는 사람을 만날수록 청년은 체념을 쌓을 뿐이었다. 그에게 희망을 약속했던 사람은 전부 그가 쌓은 벽에 막혀 돌아가거나 황폐함을 살짝 들여다본 것만으로 질려 떠났다. 결국 그에게 향하는 마지막 시선은 실패를 보는 실망스러움. 차라리 그들이 처음부터 자신에 차 다가오지 않았다면, 그의 심연을 완전히 이해할 것처럼 굴지 않았다면 그는 제 삶이 처참한 것인 줄도 모르고 살 수 있었을 텐데.

제멋대로인 선의만큼 청년을 지치게 한 것은 없었다. 그 아래 연민이나 우월감이 깔려있다면 더더욱 끔찍하다. 눈앞의 사내도 지금까지와 다를 거라고 기대하긴 힘들다. 목을 조르는 습관에 대해 고백했을 때 바로 질린 기색을 보이지 않은 것은 놀랍지만 어차피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이다. 이미 많은 불쾌를 경험한 청년이 사내에게 방어적으로 나오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었다.

구원 같은 걸 생각한다면 잊는 게 서로에게 좋아. 네 의욕은 기억해둘 테니 내 삶에 더 끼어들지 않았으면 하는데.”

틀렸어, 쿠로사키.”

사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청년의 눈에서 불신을 읽어내면서도, 선을 그으려 드는 말을 똑똑히 듣고서도.

그런 생각으로 여기까지 온 게 아냐. 너에게서 전쟁의 흔적을 걷어내고 싶었던 건 좋지 않은 기억에서 어서 빠져나오길 바라서였지. 네 이야기를 듣고 고칠 방법을 찾으려 드는 건 네 문제가 심각하단 걸 깨달아서고. 내 영역에 들어온 사람에 대해서는 언제나 최선의 상태로 유지시키고 싶은 게 내 욕심이야.”

아직 실감하지 못해서 그래. 너는 내가 어떤 생각으로 버티고 있는지 모르지. 전쟁의 흔적이 내 삶에서 어떻게 튀어나오고 있는지도. 전부 알면 그런 말은 못 해.”

전쟁이 끝난 지 1년도 되지 않았다. 네가 여전히 고통을 겪는다 해도 잘못된 게 아냐.”

하지만 모두가…….”

다른 사람이 어떻건 신경 쓸 것 없어. 나는 너를 기다려줄 수 있으니까.”

지금껏 많은 사람이 청년에게서 결함을 찾아내는 데 몰두했다. 스스로를 병기로 취급하는 모습이나, 적에 대한 강한 적개심,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낱낱이 훑고는 그러한 문제를 잘라내려고 들었다. 그 엄격한 시선 속에서 청년은 자신이 잘못된 존재라는 생각에 자주 사로잡히곤 했다. 어쩌면 그래서 청년은 회복을 믿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전장에서 망가질 대로 망가진, 어딘가 분명히 잘못된 자신이 평범한 인간이 될 수는 없을 거라고.

사내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드러나게 달라지는 게 없다는 사실도 청년을 초조하게 만들었으리라. 모두가 정상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자신만 엉망인 채로 남아있다. 아마 앞으로도 가망은 없을 것이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좌절만 쌓이게 될 것이다 그런 생각에 청년은 괴로웠다. 불안을 떨치고 안정을 찾고 싶어, 평화로운 도시에서 몰래 목을 졸라야만 했다. 사내의 말을 들으면서 비로소 청년은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전쟁으로 생긴 문제가 다 고쳐지지 않아도 괜찮아. 어떤 상처는 평생을 가기도 하지. 우선은 습관부터 없애자고.”

그런 식으로도 정말 괜찮을까.”

중요한 건 완전한치유가 아니라 개선이야. 그러니 말해줘. 지금 네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믿어줄 사람.”

답을 토해내는 것은 쉬웠다. 그 순간을 기다려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아질 가능성이건 나 자신이건, 지금은 어디에도 믿음이 없어서, 그래서…….”

그거 참 놀라운데. 믿어주는 것은 내 전문이거든.”

변화가 언제 생길지는 몰라. 아예 실패할 수도 있고.”

그런 건 네가 걱정할 일은 아닐 텐데. 실패해도 내가 실패하고, 공을 들이는 것도 나인데.”

그런 각오가 없었다면 처음부터 청년의 삶에 관여하지 않았다. 방관자로 남아 완전한 타인으로 지냈을 것이다. 극한의 환경에서 살아남은 사람을 곁에 둔 것도, 의욕적으로 그를 변화시키려 든 것도, 지금 청년에게 도움을 약속하는 것도 결국 모든 걸 책임질 생각이어서였다. 한편으로, 사내는 목표한 대로 청년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자신은 물론이었다.

다만, 청년을 위해 움직이기 전, 먼저 처분해야 할 것이 있었다. 사내는 청년의 목에, 지금껏 강박적으로 가려온 곳에 시선을 두며 은근하게 물었다.

이제 스카프는 쓰지 않아도 되겠지?”

청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청년에게 자신의 선물을 걸어주는 것. 사내는 청년의 목에다 조심스레 초커를 걸쳤다. 살갗에 닿는 낯선 감촉에 청년은 순간 움찔했으나 곧 얌전해졌다. 흔적을 가능한 가릴 생각으로 사내는 청년의 목 위에서 몇 번 초커를 움직이다 한참이나 지나서 후크를 채웠다.

어때? 괜찮은 것 같나?”

네게 어울려.”

흡족함이 밴 목소리에 청년은 유리벽에다 제 모습을 비춰보았다. 보석 장식이 달린 검은색의 초커는 그에게 제법 어울렸다. 목을 죄는 감각에는 이미 익숙하니 몇 번 하고 다니면 곧 익숙해지리라. 단 하나 거슬리는 것은, 가느다란 초커 바깥으로 드문드문 보이는 자국. 전부 가리는 것은 불가능했던 모양이다.

이대로 나가면 다들 자국에 대해 묻지 않을까.”

적당한 핑계를 만들면 되지.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그 자국도 사라질 테고.”

내 습관이 다시 살아나면 어쩌려고.”

그렇지는 않을 거야. 네가 두려워하지 않게 도울 테니까.”

거기서 청년은 한 가지 의문을 떠올린다. 단순하지만, 어쩌면 중요할 수도 있는 의문을.

궁금한 게 있는데, 너는 왜 그렇게까지 나를 도우려고 애쓰는 거지? 그냥 네 영역의 사람이어서?”

우린 협력자였지.”

그건 이젠 의미 없는 이름 아닌가?”

조금 더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하나?”

사내는 속에 담아온 것을 꺼내기로 마음먹었다. 청년과 협력한 지 오래지 않아서 품게 된 마음. 사내가 청년을 돕는 것에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이유.

나는 너를 도우면서, 네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차지하고 싶은 거야.”

어떤?”

해답. 이전부터 나는 너의 해답이 되고 싶었어.”

제법 묵직한 고백에 청년의 입가에 엷은 웃음이 떠올랐다. 사내의 말을 한 가닥 오만으로 생각한 것이리라. 분명히, 사내는 청년의 해답이 되고 싶었다. 다만 표면적인 의미 아래, 청년이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되겠다는 전략도 깔려있을 뿐이다. 구원자나 성역 같은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 청년이 삶에 둘 수밖에 없는 처방약 같은 것이 되어야 한다. 청년의 삶에 교묘하게 뿌리내려, 언젠가는 그에게 당연한 인간이 될 수 있도록.

오늘 일 하나로 기대하진 마.”

그렇게 말하는 청년에게선 거부감이나 불쾌한 기색은 비치지 않았다. 한 번 마음의 벽을 허문 사람에 대해서는 다소 방심하는 청년의 습성에 사내는 안도했다.

두 사람은 청년이 고백한 습관을 둘만의 이야기로 삼키기로 합의했다. 기억하고, 고치려 노력하되 타인에게 드러내진 않는다. 때문에 청년이 돌아가자, 둘 사이에 무언가 대화가 오간 증거라곤 사내가 풀어낸 스카프밖에 남지 않았다. 의미가 사라진 것은 치워버리는 게 좋다. 사내는 청년의 과거 기록을 모았던 서랍에 스카프를 넣고 열쇠로 잠갔다. 처참한 이야기가 가득한 과거의 기록도, 없어질 병증에 대한 증거도 그렇게 묻어버리면 된다. 이제 미래에만 관심을 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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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현소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