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에게는 오래 전부터 챙겨온 사람이 있었다. 먼 곳에서 와, 가족도 친밀한 사람도 없이 자신에게 의지하는 자. 때문에 자신이 스물 즈음부터 중년에 접어들 때까지, 줄곧 눈 닿는 곳에 두고 보호해온 사람. 사내는 그에게 자신이 경영하는 회사의 사택을 내주고 생활을 지원하는 대신, 때로 얼굴을 비추러 오게 했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로, 그의 삶을 들었다. 그것은 보호하는 대상을 제대로 살피기 위해 사내가 설정한 안전장치였다.
타인의 시선에 묶인다는 것이 별로 내키지 않는 기색이었지만 상대는 어쨌든 가끔이나마 사내를 찾아주었다. 이번에도 사내를 만나러 온, 그의 관리 대상은 스물에 조금 못 미쳐 보이는 청년. 알아온 시간이 있어서인지, 청년이 사장실에 불쑥 들어오는 것도 팔짱을 끼고 사내와 마주앉는 것도 제법 자연스럽다.
만남의 명목은 전쟁 피해자의 생활을 점검하는 것. 전쟁이 희미해질 정도로 시간이 흘렀지만, 전쟁을 일으킨 것이 자신의 아버지였다는 이유로 사내는 피해자에 대한 지원을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 다만 청년은, 그가 관리하는 대상 중에서도 특별한 경우. 사내가 아예 손이 닿는 곳에 두고 챙기는 사람은 청년뿐이다. 사내에게 청년은 가장 마음이 쓰이는 보호 대상이자, 가장 무거운 책임을 느끼게 하는 피해자였다.
언뜻 사제지간 혹은 숙질간으로 보일 정도인 두 사람이었지만, 실제 나이로 따지면 그들은 또래였다. 두 사람이 스물이 되기 전 만나, 함께 전쟁을 끝내고 계속 친분을 유지해왔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 사내가 평범하게 나이 드는 가운데 청년이 이상할 정도로 변하지 않을 뿐이다. 사내는 자신보다 한참은 어려 보이는 청년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그는 언제부터 나이를 먹지 않았더라?
나이가 잘 들지 않는 편이다, 혹은 분위기가 달라지지 않는다 정도가 아니었다. 긴 시간 동안, 청년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의 시간만이 멈춰, 모두가 자라고 혹은 늙는 가운데 홀로 과거에 붙잡혀 있는 것 같았다. 청년을 통해 자신이 나이 들고 있음을 느낄 때마다, 사내는 청년의 그 의문스러운 불변이 섬뜩했다.
사내가 추측하기에 청년이 나이를 먹지 않게 된 것은, 전쟁이 끝난 때부터. 소년기에 침략자에 맞서 저항군이 되어야 했던 청년은 전쟁을 끝내는 날만을 기다렸다. 전쟁에 너무 많은 것을 걸어서, 그의 시간도 전쟁과 함께 멈춰버린 것일까. 아니면 너무 많은 것을 잃어 더는 자랄 수도 없게 된 것일까. 전쟁은 결국 청년이 가장 사랑하던 것을 제물로 끝났고, 그 후로 청년은 반쯤 죽은 인간처럼 보였다. 한 조각 욕망도 의미도, 그에게선 들여다볼 수 없었으므로.
“오늘은 네 계획에 대해 들어보도록 할까.”
“계획?”
그러니 청년이 이런 화제에 관심이 없는 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가볍게 던진 말에 돌아온 것은 시큰둥한 목소리.
“미래의 계획 말이다. 쿠로사키.”
“별로 없는데.”
멈춰버린 시간 때문인지 황량해진 내부 탓인지, 청년은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몰두하는 것도 즐기는 것도 없이, 그냥 오늘만 넘길 뿐이다. 과거 사내는 청년에게 자신의 일을 돕게 하면서 그가 이것저것 시도하도록 유도했지만 청년은 어디에도 크게 흥미를 보이지 못했다.
“막연하게라도 생각한 게 있으면 말해. 네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니까. 하고 싶은 것이나 필요한 게 아무것도 없나?”
“네가 도움이 될 수 있는 거라면 하나 있지만.”
전쟁의 끝과 함께 빛을 잃은 청년의 눈이 드물게 생기를 찾았다. 사내는 말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카드를, 하나 찾아줘.”
청년이 말하는 카드라는 게 어떤 것인지는 분명했다. 그의 특기인 게임에서 사용하는 카드. 게임 사업이 주가 되는 회사를 운영하며, 관련된 정보를 완전히 쥐고 있는 사내에게 카드 하나쯤 찾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사내는 회사의 시스템을 동원해 청년이 이야기한 카드를 찾기로 약속했다. 오래지 않아 사내는 청년이 찾는 것이 데이터상으로 존재하는 것은 확인했으나, 그뿐이었다. 실제로 등록된 경우가 한 건도 없다. 그 자체가 어떤, 환상의 재보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몇 주간 매달려도 결국 성과가 없어, 사내는 청년에게 실망스런 소식을 전할 수밖에 없었다. 뜻밖에도 청년은 그리 놀라지 않은 얼굴이었다.
“역시 그런가.”
“찾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나?”
“살면서 그 카드를 소유한 사람은 딱 한 명 봤거든. 그 사람의 카드는 이미 없어졌으니 찾을 수 없고. 혹시 또 어딘가에 한 장쯤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부탁했을 뿐이다. 크게 기대하진 않았어.”
“그 카드를 찾아야만 하는 이유는?”
“내게 필요해서, 였지만 아무리 찾아도 없는 모양이군.”
말이야 덤덤했지만, 앳된 얼굴에는 옅은 실망이 비치는 것 같았다.
“더 찾아볼 생각? 아니면 비슷한 카드라도 만들까.”
“아니. 그건 됐어. 나를 돕고 싶다는 말이 유효하다면 다른 부탁을 하고 싶은데.”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무엇이든.”
“빈 카드를 만들어줄 수 있어?”
한순간 긴장한 것이 허탈해질 정도로, 청년의 부탁이란 김빠지는 것이었다. 머리를 스쳐간 온갖 예상을 순식간에 흩어버린 사내는 자신이 이해한 것이 맞는 것인지나 확인하기로 했다.
“빈 카드라면, 데이터가 없는 카드를 말하는 건가.”
“그래. 카드의 형태만 있고 아무것도 설정하지 않은 것.”
“어렵지는 않지만, 어디 쓰려고?”
“그런 걸 얘기할 정도로 친밀한 사이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우리.”
긴 시간을 곁에 두고 관리해주는데도, 청년은 사내에게 거리를 두는 것을 고집했다. 인간에 상처 입은 동물이 호의적인 인간을 만나고도 완전히 긴장을 늦추지 않는 것처럼. 자신을 불행으로 몰아넣은 사람을 연상시키는 자에게 쉽게 마음을 열기란 어려울 것이다. 단순히 연상시키는 것이 아닌, 그 피가 흐르는 가족이라면 더더욱. 사내는 청년이 아직도 자신의 성씨를, 그의 모든 것을 앗아간 자의 유산을 꺼린다는 것을 안다.
공격성은 보이지 않지만 경계는 언제나 깔아두고 있다. 말은 쉽게 섞어도, 마음은 절대 어느 정도 이상 허락하지 않는다. 친밀해질 기회도 주지 않으면서, 친밀한 사이는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사내는 청년이 도통 내려놓지 않는 경계에, 적당히 물러서는 방법을 배웠다.
“좋아. 준비되면 부르지.”
쉬운 부탁이었으므로, 다음 만남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사내는 자신을 찾아온 청년에게, 이름도 그림도 설명란도 빈 카드를 내밀었다. 사내의 눈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청년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챙겼다. 그것이 흥미로워, 사내는 슬그머니 질문을 던진다.
“앞으론 어떻게 할 생각이지?”
“돌아가려고.”
청년은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의미심장한 말을 돌려주었다. 그 말의 의미를 캐묻기도 전에, 청년은 가볍게 감사를 표하고는 사내를 떠나갔다. 그렇게 카드를 받아간 날이 마지막이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나도록 청년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돌아가겠다는 말이 마음에 걸려 청년의 고향 사람에게 그의 행방을 물었으나, 받아낸 것은 아예 돌아온 적 없다는 답변이었다. 언제나 비현실적이었던 청년은 사라지는 것마저 비현실적이었다.
가족도, 가장 친하게 지낸 사람도 전쟁 끝에 사라졌다. 청년은 전후 복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 이유를 물었을 때, 혼자가 되었기 때문에. 라고 답했다. 고향에 남아있는 지인과도 오랜 시간 연락하지 않았으니, 그들과의 관계도 많이 소원해졌을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로는 피해자 지원 명목으로 줄곧 그를 곁에 두고 있었던 사내가 그나마 가장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이리라.
오랫동안 자신에게 경계를 늦추지 않은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청년을 책임져야 할 사람은 자신이라는 생각이 사내를 움직였다. 사내는 청년의 고향에 사람을 보내, 그를 추적하도록 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이란 대개 이런 답변이었다.
[그런 사람은 없는데요.]
[쿠로사키 루리에 대한 기록은 있어요. 하지만 그 형제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사내에게 남아있는 청년의 정보를 이용해, 그가 살던 곳에서 기록을 찾으려 했지만 청년의 존재 자체가 의심되는 수준이었다. 청년의 가족이나 친우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만 청년에 대한 기록만이 아예 없다고 했다.
[기록이 훼손되었을 가능성은.]
[가능성이야 있지만, 어쨌든 기록상으론 존재하지 않아요. 때문에 추적은 불가능합니다.]
청년이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다녔다던 학원으로 향해도 마찬가지였다. 강사로 일하는 사람이 청년의 옛 친구라 제법 열심히 찾아주었는데도 소득이 없었다.
[기록을 찾아봐도, 슌의 이야기는 없어. 정말 이상하지만, 사실이 그래.]
[쿠로사키 슌이 전쟁 전 일정 기간 학원에 등록하지 않았나?]
[당연히 등록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기록은 없다니까?]
처음부터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모습을 감춘 그가 슬그머니 자신의 흔적을 지우고 있는 것일까. 알 수 없으나, 사내는 청년이 서서히 지워지리라는 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고향 사람들과의 관계는 옛 것이 된 지 오래였고, 그를 찾아줄 가족도 없다. 결국은 타인인 사내는 청년에 대해 파헤치는 데 한계가 있다. 앞으로 청년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청년은 점점 화석에 가까운 존재가 될 것이 뻔했다.
주변인을 만나도, 청년에 대한 증언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 몇 년에 집중되어 있다고 했다. 가장 오래된 증언도 그가 십대일 때였다. 그들 남매와 어릴 때부터 친밀했다는 자들조차 누이에 대한 증언은 꽤 오래 전으로 가는데 청년에 대해서만은 기억하는 것이 비교적 최근이었다. 그 이전의 기억은 그들에게도 흐릿하다고 했다. 쭉 함께 살아온 남매인데, 한쪽에 대한 기억만 뭉텅 잘려나갔다는 것이 수상쩍다. 파고드니 모호했던 기록들과, 제대로 남아있지 않은 흔적이 아른거렸다. 사내는 거기서 한 가지 의심을 하게 된다.
만일, 청년이 어느 시점에 동생의 삶에 끼워진 존재라면? 남매가 처음부터 함께한 것이 아니었다면?
그래서 그들이 함께하기 이전의 이야기는 세상에 제대로 남아있을 수 없다면. 추측이라고 하기엔 거의 망상에 가까운 것이었으나, 청년이 보여준 비현실성을 생각하면 가능성은 있었다.
머리가 복잡해진 사내는 혹 청년의 실종에 대한 단서가 있을까 싶어 청년이 부탁했던 카드를 다시 검색했다. 오래지 않아 결과가 나왔지만, 아무래도 이상했다. 카드가 미묘하게 바뀌어 있었다. 누군가 데이터를 덧씌우기라도 한 것처럼. 카드에 그려진 것은 새의 날개를 가진 남자. 기분 나쁠 정도로 사내가 아는 사람과 닮은 남자가, 꼭 청년에게 날개를 달아 구겨 넣은 것 같은 사람이 카드 속에서 얌전히 사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
사내는 청년이 사라지기 몇 주 전의 대화를 기억한다. 기억 속 청년은 자신의 기계 새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청년이 애정을 보이는 몇 안 되는 것이자, 전장에서 그의 무기가 되어준 것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청년에게 남은 것은 몸과 무기가 전부. 얼마든 인간을 해할 수 있는, 병기로 만들어진 기계 새를 청년이 그렇게 소중히 다루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온화한 웃음을 걸친 청년이 낯설다고 생각한 때, 사내는 꿈을 꾸는 것 같은 목소리를 들었다.
[유토는 어릴 때 새의 날개를 가진 남자를 본 적이 있다고 했지.]
청년에게는 드물게, 평화로운 이야기였다. 자신에게 남은 과거의 유물에서 행복했던 날을 떠올리기라도 한 것일까. 사내가 턱을 괴고 얌전히 듣는 동안, 청년은 말을 이었다.
[어릴 때는 상상력이 풍부하니까, 그게 자신이 상상한 건지 실제인지는 알 수 없다고 덧붙이긴 했지만.]
[너는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지?]
[후자. 유토가 무엇을 봤는지 알 것 같아서.]
[의외의 답변이군. 너라면 비현실적인 가능성 따위 냉정하게 잘라버릴 거라 생각했는데.]
[카드를 통해 정령을 보는 경우가 있다고 하지. 드문 경우고, 아이일 경우 커가면서 볼 수 없게 되기도 하지만.]
[그에게 그런 카드가 있었나?]
[유토에게는 아니지만, 어쨌든 그런 카드가 있긴 했지. 오래된 카드고, 유토가 얼마든 볼 수 있는 곳에 있었으니까 한 번쯤은 만났을 수도, 카드 속 남자.]
[상세하게 아는 걸 보니 카드의 소유자는 너였던 모양이지.]
[너도 언제나 예측을 잘하는 건 아니군. 아쉽지만 틀렸어.]
어쩐지 수수께끼를 맞히는 느낌이 들어, 청년에게서 소유자에 대한 힌트를 얻으려던 사내였으나 청년은 바로 화제를 돌려버렸다. 때문에 지금까지도 카드의 소유자에 대해선 알 수 없는 사내였다. 짐작 가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지금은 답을 확인해줄 사람이 없다. 다만 청년은 그 날 돌아가기 전, 사내가 결국 맞히지 못한 답을 이야기해주는 대신 한 가지 묘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고 보니 말이야, 유토는 나를 보면 그 남자가 생각난다고 했어.]
들을 때는 아무런 생각도 없었지만, 지금에 와선 기분 나쁜 이야기였다. 청년이 찾던 카드 속 그림이, 청년과 닮은 모습으로 바뀌어 있기에 그랬다. 어릴 적 선명하지 않은 기억에 대한 타인의 사소한 이야기가, 이제 사내에게까지 현실이 된 것 같아서. 사내는 화면 속 카드에서 자꾸만 청년을 본다. 청년에게서 환상 속 남자를 연상했다던, 청년의 친우처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청년은 돌아가겠다고 했지만, 그것이 어디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고향은 아니었고, 사내가 사는 도시에 남아있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리 없다. 그나마 청년에게 익숙한 그 두 곳을 제외하면, 후보로 꼽을 곳도 없는 수준이었다. 세상에서 아예 지워진 듯 흔적도 남기지 않았는데, 데이터에 불과한 카드에선 청년이 보이는 것 같다. 괴상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조사해보라고 한 남자 말입니다.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추적을 위해 청년의 고향에 보낸 사람은 돌아오자마자 그렇게 말했다. 청년의 비현실성을 오랜 시간 지켜본 사내는 별 감흥 없이 받아쳤다.
“이십 년 동안 나이를 먹지 않은 것부터 이상했어.”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그 자가 나이를 먹지 않았다는 건 그보다도 오래 전부터일지도 몰라요.”
말을 마치자마자 상대가 꺼낸 사진은, 청년과 그 누이가 담긴 것이었다. 여러 장의 사진을 번갈아 보면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지만, 그 흐름 속 하나 어색한 것이 있었다.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변화하지 않는 사람.
“보시면 동생 쪽은 계속 자라고 있는데, 그 자는 동생이 어릴 때나 자라서나 달라지는 게 없어서.”
정말로 똑같은 모습이었다. 전쟁이 끝난 때부터 나이를 먹지 않은 게 아니었다. 몇 년도 더 전부터 청년은 사내가 기억하는 모습으로 살았던 것이다. 그가 도대체 몇 년간 그 모습으로 살아온 것인지, 사내로선 짐작도 할 수 없다.
“동생이 어릴 적에 동생의 학교에서는 그를 조금 앳된 삼촌 정도로 생각하기도 했다더군요. 실제 나이가 몇 살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나와 처음 만났을 땐 17세라고 했었는데, 과연.”
“동생과 함께 계속 살았다면, 언젠가 동생이 성장에서 역전하지 않았을까요?”
“정상적이었다면 그랬겠지만, 모르지. 그의 동생은 완전히 사라졌으니까.”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의문스럽다. 청년은 사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괴상하고, 수상쩍고, 비현실적인 인간이었다. 청년의 기록이 제대로 남아있지 않은 건 그래서일까?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도록 기록이 거의 남지 않도록 한 것은 아닐까.
“그리고, 두 사람이 남매인지도 분명하지가 않아요.”
“남매라고 확신할 수 있는 기록이 없다는 건가?”
“기록도 기록이지만, 동생이 어릴 땐 사실상 부모 역을 했던 것 같고요. 동생 쪽으로 추적해보면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긴 한데 오빠라기보다 ‘보호자’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보호자라.”
“물론 형제도 보호자일 수는 있지만, 그보다는.”
“형제의 의미는 아니었다, 그런 뜻이겠지.”
“스스로 가족이라고 소개하지도 않았고, 외부에서 온 양육자나 교육자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합니다.”
“그러다 동생이 자라면서 가족의 역할을 수행했을지도. 자신은 나이가 들지 않으니까 가족의 형태를 가져오려면 밖에는 ‘오빠’로 소개하는 게 편했겠지.”
거기서 사내는 이전에 잠깐 떠오른 의심을 되살린다. 청년이 동생의 삶에 갑자기 끼어든 존재일 가능성. 스스로도 깊게 믿었던 것은 아니지만 청년의 수상쩍은 배경을 생각한다면 이제는 믿어볼 법도 했다. 다만 여전히 의문스러운 것은, 청년의 정체. 나이를 먹지 않는다는 것 말고도 청년은 보통 사람과는 달랐다. 사고는 인간의 것이라기보다 장치에 가까웠고, 때로 보이는 비현실적인 능력은 한순간 폭발적으로 튀어나오는 것이라도 인간에게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렇다면 청년은 어떤 인간인가. 혹은, ‘무엇’인가. 사내는 청년의 정체에 대해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그와의 기억을 자세히 따져가며 추측해보기로 했다.
생각해보면 괴상한 이야기는 얼마든지 있었다. 과거 청년이 가장 가깝게 지낸 친우에 대해 물었을 날의 이야기도, 따져보면 시원스럽지 못한 부분이 있다.
[유토와 친해진 것? 듀얼학원을 다니면서부터였지만, 만난 건 좀 오래 전.]
[그럼 학원에 다니기 전까지는, 그냥 알기만 하는 사이였단 건가. 빠르게 친해진 편이었군.]
[글쎄, 나는 그 전에도 제법 친밀했다고 생각하지만, 일방적인 기억이겠지. 녀석은 어릴 때 나와 놀았던 건 잘 기억하지 못하더군. 듀얼학원에서 마주쳤을 때 나는 오랜만에 만나 반가웠는데, 유토는 처음 봤다는 눈치였다고.]
[어릴 때의 기억이란 건 잘 날아가니까.]
[그렇기도 하고, 처음 만났을 때의 나와 그때의 나는 좀 많이 달랐으니, 알아보지 못해도 서운할 정도는 아니지.]
[네가 너무 많이 자랐나.]
[웬일로 재미있는 발상인데. 틀렸지만.]
진지한 목소리로 엉뚱한 말을 하는 사내가 우스웠는지, 청년은 낄낄대면서 덧붙였다.
[유토가 어릴 때 본 나는, 완전히 다른 존재였으니까?]
그때는 단순히 시간이 가져온 변화가 컸던 것이라 생각했다. 사람은 자라면서 많이 바뀌기도 하니, 청년이 그런 경우라 해도 놀라울 건 없었다. 그러나 청년이 꽤 어릴 때부터 성장하지 않았다는 것을 고려하면, 당시의 청년이 아예 지금과 다른 모습으로 살았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유토는 나를 보면 그 남자가 생각난다고 했어.
청년의 말이 머리를 울렸다. 청년의 친우가 어릴 적 본 환상과, 사실은 그와 친해지기도 전 어릴 적에 만난 적이 있다는 청년의 이야기. 당시의 청년은, 어쩌면 정말로 카드 속 환상, 청년이 정령이라고 이야기했던 것과 닮아있었던 것일까. 사내의 생각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정령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전쟁 때의 기억에까지 닿는다.
청년의 고향을 짓밟은, 그리고 사내가 적대한 침략자는 섬칫한 방식으로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사람을 공격해 쓰러트리면 영혼을 카드에 봉인하는 것이었다. 민간인이든 저항군이든 쓰러지기만 하면 어김없이 카드가 되었다. 침략자의 무기를 분석하면 같은 방식으로 무장할 수야 있었지만, 이미 카드로 변한 사람을 되돌리는 방법까지는 알 수 없었다.
전쟁이 끝난다 해도 희생자가 원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주변 사람이 거의 카드로 변한 건 청년 쪽인데도, 청년은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 사내보다도 덤덤했다. 수하가 희생당한 것을 확인하고 결국은 동요한 사내에게, 청년은 지나가는 듯 말을 던졌다.
[카드에 사람의 영혼을 가둔다면, 언젠가 꺼낼 수도 있다고 믿어.]
[‘카드에 영혼을 집어넣는 것’의 역이 가능하다고 어떻게 자신하지? 직접 확인한 적이라도?]
[카드화의 역은 본 적이 없지만, 카드 속에서 무언가 튀어나오는 것이야 경험한 적 있으니까.]
사내의 시선이 게임용 디스크에 닿았다. 그의 회사에서 개발한 디스크에는 게임용 카드의 몬스터를 실체화시키는 기능이 있었다. 단순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그때의 사내는 디스크의 실체화 기능에라도 기대보고 싶었다. 그런 절박함을 읽어낸 것인지, 청년은 사내가 한순간 떠올린 생각을 흩었다.
[솔리드비전은 카드 속 몬스터를 일시적으로 구현하는 것이지만, 내가 말하는 건 아예 카드 속 존재가 나오는 것.]
[네 경험이라는 걸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줬으면 좋겠는데. 참고가 될지도 몰라.]
[구체적으로라고 해도, 그냥 카드 속 정령이 세상에 나와서 그대로 인간 세상에 눌러앉은 일이라고밖에.]
[그걸 날더러 믿으란 말인가.]
[믿는 건 네 자유지만, 이런 주제를 가지고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고 해두지.]
투박한 말을 쓰더라도 없는 말을 만들어내진 않는 청년이었다. 자신에게도 무거운 일에 어설픈 장난을 얹을 리도 없었다. 아무래도 제 쪽이 흥분한 것 같아, 사내는 잠깐 침묵을 지켰다 입을 열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아. 되돌릴 가능성이 있다면 됐어.]
[가능성이야 있지. 그러니까 카드화된 자들을 적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해야 해. 언젠가 되돌리려면 확실히 쥐고 있어야 하니까. 내 동료들은 거의 못 챙겼지만.]
청년의 말은 옳았다. 전쟁이 끝난 후 사내는 카드에 봉인된 희생자를 되돌리는 기술을 얻었고, 많은 사람들이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었다. 다만 봉인된 시간이 길었던 사람일수록 성장이나 노화 등, 시간의 흐름이 같은 나이대의 사람에 비해 더딘 모습을 보였다. 청년은 그에 대해 카드 속에선 시간이 흐르지 않아서라고 이야기했다. 추측이라기엔 제법 단정적인 어조라,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물었더니 ‘현실에서 차단되었으니 시간의 영향도 못 받지 않겠어?’ 정도로 얼버무릴 뿐.
여러 가지 기억을 종합해, 사내는 청년과 관련된 의문스러운 점을 하나씩 기록하기로 했다.
<동생의 삶에 갑자기 끼워진 존재. 멎어버린 성장. 비현실적인 힘. 정령에 대한 언급(‘경험했다’는 표현을 사용).>
<카드 속에선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는 말. 어릴 적에도 친우와 만났지만 친우는 그를 전혀 다른 존재로 인식.>
<친우가 어릴 적 보았다던, 정령으로 추측되는 환상. 그리고 그가 그 환상을 연상시킨다는 친우의 말.>
<친우가 본 환상을 두고 ‘그런 카드가 있었다’고 말함. 카드의 존재를 알고 있을뿐더러, 바로 카드의 정령이라고 추측.>
<새의 날개를 단 남자를 보았다는 친우의 이야기. 그가 찾던 카드는 현재, 그를 닮은 남자가 새의 날개를 단 모습.>
<그가 찾던 카드의 원래 모습은.>
그가 찾던 카드의 원래 모습은. 사내는 거기까지 쓰고 멈췄다. 갑자기 기분 나쁜 망상이 그를 덮쳤으므로. 카드의 원래 모습은, 새의 날개를 단 남자. 다만 그 모습은 지금의 형태와 완전히 달랐다. 그렇다면 혹시.
사내는 청년이 이야기한 카드를 다시 찾아보기로 했다. 청년이 사라지기 전에 검색했을 땐 어디에도 없는 것으로 나왔는데, 이번에는 딱 한 장이 등록되어 있었다. 등록된 위치는, 괴상하게도 사내의 회사 내부. 시스템이 알려주는 위치로 향하자, 이전까지 있었을 리가 없는 카드가 사내를 기다리고 있었다. 게임용 카드이기에, 확인하기 위해서는 사내가 가지고 있는 디스크로 실체화하면 그만이었다. 사내는 수상쩍은 카드를 디스크에 장착하고, 시스템을 통해 구현했다. 조금 전까지 자신이 생각한 것이 터무니없는 망상이길 바라면서.
그러나 사내의 소망은 바로 깨어졌다. 실체를 가지고 소환된 남자는 청년의 얼굴을 가지고 사내에게 너무도 익숙한 웃음을 지었다. 사내에게 결정타를 날린 것은 그 다음에 흘러나온 말.
“아, 찾아버렸네.”
청년의 목소리였고, 청년이나 할 법한 말이었다.
*
“루리는 형제를 갖고 싶다고 했어.”
청년은 평화롭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몇 달간의 실종이 아무 일도 아니었던 것처럼. 청년에게는 그동안 모습을 감췄던 것이 ‘돌아간다’는 계획을 실행한 것에 불과했으리라. 그의 행방을 찾던 사내만이 줄곧 무거운 마음이었을 뿐. 사람을 동원하고 기록을 뒤지면서까지 찾았는데, 알고 보니 너무도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것도 하필 그의 회사. 공간으로만 따지면, 청년은 마지막으로 만난 건물을 벗어나지도 않고 있었던 셈이다.
사내는 청년을 만나자마자 인사도 생략하고 설명부터 요구했다. 긴 시간 그를 챙겨온 사람으로서, 그리고 사라진 그를 찾은 사람으로서 그 정도는 부탁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날개로 몸을 감싼 채 사내를 내려다보던 청년이 가장 먼저 꺼낸 말은 엉뚱하게도 동생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무래도 청년은 ‘처음부터’ 이야기를 할 생각인 듯했다. 사내가 듣고 싶은 것 이전에, 그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배경부터.
“그 애는 혼자였거든. 그래서 나를 본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그 소원을 이뤄준 건가?”
“그렇게 간단히 된 일은 아니었어. 나는 내가 인간이 아니라는 자각은 있었으니까, 그 애에게 제대로 된 형제는 될 수 없다는 걸 알았고. 그냥, 곁에 있어주는 것쯤만 할 생각이었는데.”
본인의 입으로 인간이 아니라는 말을 듣는 것은 괴상한 일이었으나, 이 단계에선 이미 당연한 이야기였다. 청년을 찾을 수 있게 한 사내의 추측이란 그가 인간이 아님을 전제하고 있었으니까.
청년의 친우가 어릴 적 보았던, 정령으로 추측되는 환상. 그것은 사실 청년이었고, 때문에 청년은 친우를 어릴 적부터 만났지만 친우는 청년을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카드에서 튀어나왔다는 정령의 이야기, 청년이 경험했다는 것은 본인의 이야기. 청년은 정령이기 때문에, 혹은 오랫동안 카드 속에 있었기 때문에 나이를 먹지 않는다. 청년이 빈 카드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한 것은 아마도, 그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 그가 마지막에 남긴 돌아간다는 말은 ‘카드 속으로’ 돌아가겠다는 뜻.
이러한 생각으로 사내는 청년의 카드를 찾아낼 수 있었다. 청년은 비현실 그 자체였으므로, 사내는 가장 터무니없는 가능성을 믿음으로써 청년을 다시 만난 셈이다.
“그런데?”
“유토가 걸려서. 유토가 어릴 때부터 마주쳤는데, 나이가 들면서 점점 나를 비현실로 인지하는 것 같더군. 그러다 어느 순간엔 아예 나를 보지 못했어. 그게 두려웠지.”
“언젠가는 네 동생도 너를 보지 못하는 때가 올 거라 생각한 건가.”
“맞아. 그렇게 되면 나는 루리와 계속 함께할 수 없을 거고, 루리는 다시 혼자가 될 게 뻔했으니까. 내가 인간의 모습으로 눌러앉으면 그런 위험은 없을 테고.”
청년은 그렇게 말하며 모습을 바꾸었다. 인간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주는 모습에서, 사내가 기억하는 모습으로.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것만 빼면 평범한 인간의 외형이었다. 그 껍질을 쓰고, 청년은 긴 시간을 인간 흉내를 내며 살아온 것이다. 인간의 틈에서, 인간에게 애정을 붙이고.
청년이 ‘돌아가기’ 전 데이터로 확인한 원래의 카드가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쩌면 청년은 자신의 외형 또한 동생에 적당히 맞추었을지도 모른다. 동생이 바라는 ‘형제’에 가깝게. 소망이 아니었으면 가족이 되지 않았을 남매는 닮은 얼굴이었다.
“유토는? 그는 루리와 친분이 없었고?”
“두 사람이 만난 건 나중의 일. 유토가 나와 마주쳤던 건 루리와 만나서가 아니라, 유토가 산책하는 곳 근처에 내가 있었기 때문이고. 루리 말고도 나를 보는 사람이 있다니, 처음 마주쳤을 땐 놀랐지.”
“그러니까 네 동생은 혼자였고 너는 언젠가 그녀에게 비현실이 될 테니까 동생의 현실이 되고 싶었다는 이야기군.”
전쟁의 끝에 동생을 잃기 전까지, 청년은 동생의 삶에 완전히 뿌리내리고 있었다. 가족의 형태를 빌려와, 인간 흉내를 내면서. 그것으로 형제를 갖고 싶다는 동생의 소망도, 그녀와 함께하고 싶다는 청년의 소망도 이루어졌다. 청년이 전쟁 속에서 동생을 구하려 처절하게 싸웠던 것도, 어렵게 이뤄낸 소망을 지키고 싶어서였으리라. 그런데도 청년은 모든 것을 잃었다. 청년이야 살아남았지만, 동생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것은 그의 생존을 실패로 만들었다.
“현실이 된다, 라. 좋은 표현인데. 결국 나는 루리의 현실에서 유일하게 잘려나간 것이 되었지만. 나만 남았잖아? 그 애도, 그 애가 가진 것도 모두 사라졌는데 나만 이 세상에 남겨졌어. 나는 원래 이 세상에 있었던 게 아닌데도.”
“그래서 ‘돌아가고’ 싶었나?”
“그랬지만, 돌아갈 곳이 없었지. 내가 원래 있던 곳은 없어졌으니까.”
“루리의 카드?”
청년이 동생을 만나게 된 것은, 그가 깃든 카드의 소유자가 그녀였기 때문이라고 사내는 추측하고 있었다. 청년은 고개를 끄덕여 사내의 말을 긍정했다.
“내가 나온 카드는, 루리와 함께 흩어졌거든. 그러니 어디에도 없을 수밖에. 그렇게, 어쩔 수 없이 이곳에서 지내던 중에 생각했다. 굳이 그 카드일 이유가 있을까?”
“데이터가 없는 카드이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간단해. 그런 카드쯤, 적당히 만들면 그만이니까.”
정말로, 돌아갈 곳을 만들어주고 만 것인가.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라 생각한 부탁이 그 정도의 무게를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거기서 사내는 청년이, 이미 오랫동안 살아온 세상을 포기할 정도로 삶에 의욕이 없었다는 것을 실감하고 씁쓸해진다. 그가 사랑하는 것은 대개 죽은 것이고, 멈춰버린 성장처럼 현재의 것을 사랑할 줄 모른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렇다 해도, 그가 ‘돌아가지 못해’ 제 곁에 있었을 뿐이라면.
“그래서, 어땠지.”
“뭐가? 카드 속? 현실에서 차단된 것? 그것도 아니면 설명 없이 너를 떠난 것?”
“돌아가서, 만족했는지를 물은 거다.”
“글쎄, 돌아가도 이쪽과 마찬가지로 혼자인데.”
“그래서야 달라지는 게 없지 않나.”
“시간이 흐르지 않으니까, 세월을 느끼지 못하는 건 좋지. 나야 나이를 못 먹는다고 해도, 루리도 유토도 세상에 남아있었으면 한참 자랐을 거야. 네가 나이 드는 걸 볼 때면 내 머릿속에서 나이 들지 않는 두 사람이 생각났어.”
청년이 이 세상에 눌러앉은 것은 동생이 어렸을 때의 일.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의 긴 시간을 통해, 청년은 동생의, 그리고 어릴 때부터 마주쳤던 친우의 성장을 실감할 수 있었으리라. 침략자가 밀려들었던 때, 청년에게 가장 소중했던 두 사람의 나이는 열네 살. 그들은 그 해에 사라졌으므로, 청년은 그 이후의 그들을 그려내지 못한다.
“그게 괴로웠다고. 두 사람에겐 미래가 없어. 늙지 않는 것 이전에, 자라질 못해.”
단절된 사람에게는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사라진 사람들은 살아남은 모두에게 과거로만 존재할 뿐이다.
“사카키 유우야도 히이라기 유즈도, 프로 듀얼리스트로서 완전히 자리 잡았다. 곤겐자카는 아버지를 이어 도장을 지키고 있고, 사와타리는 자기만의 사업을 시작했던가. 너는 아카바 레오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아카바 레이지’를 확실하게 각인시켰고. 긴 시간이잖아, 무언가에 도전하고 이룰 수 있을 정도로. 그런데 두 사람은 그냥 레지스탕스일 때로 멈춰있어.”
“그래서, 시간이 흐르지 않는 곳이 차라리 편했다고? 그들의 잘려나간 미래를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렇기도 하고, 나는 원래 루리의 ‘형제’가 되려고 나왔으니, 그렇게 살 수 없다면 원래대로 돌아가도 되니까.”
“계속 그렇게 있을 생각이었나?”
“그랬지만, 네가 찾아버렸는데, 어쩔까.”
“그래봤자 나는 네게 ‘이유’가 될 수 없는데.”
내내 여유롭던 청년이 거기서 멈칫했다. 사내는 그 순간에야, 청년이 얼마든 움직일 수 있었음에도 자신의 곁에 계속 머무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너는 돌아가는 데 내 도움을 받았지. 내가 너를 챙겨온 건, 네 선택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 거다. 붙잡아줄 사람이 있다고 해도, 돌아갈 생각이 없진 않았던 거야.”
“그거야.”
“그냥, 이 세상의 사람들은 네게 동생과 친우만큼의 의미가 되진 못하는 거야. 너는 이십 년 동안 그런 존재를 찾고 싶었을지도 모르지만.”
청년은 결국 찾지 못했다. 이전에 사랑한 자들만큼, 자신을 세상에 묶어둘 수 있는 사람을. 어떤 사람도 사라진 이들을 대체할 수 없을뿐더러, 어떤 사람에게도 그만한 애정을 쏟을 수 없었다. 단절된 존재가 그의 모든 것을 말려버린 것처럼.
“사실은 한참 전부터, 네게 이 세상에 남아있을 이유는 없었던 거지?”
“네가 부르지 않는다면야.”
유일하게 자신을 찾는 사람이기에 곁에 머물렀을 뿐이다. 사내가 읽어낸 청년의 심리란 그러했다. 자신의 노력을 받아주었다는 것에 만족해야 할지, 그 긴 시간에도 완전히 마음을 얻진 못했다는 것에 실망해야 할지 사내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있었다. 청년이 몇 달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묶어두지 않을 테니까, 어디든 가도 좋아.”
“이젠 곁에 두지 않으려고?”
“내가 정말로 필요했다면 너는 진작 돌아왔을 테니까. 사람들 틈에 섞여 산 세월이 얼만데, 다시 카드에 들어갔다고 스스로 못 나올 리가 없지.”
청년은 사내에게 익숙해졌지만 그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사내는 청년에게 이유가 될 수 없고, 청년은 사내에게 ‘관리 대상’ 이상이 되어줄 수 없었다. 그것은 함께해온 시간으로 넘어설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서운하기라도?”
“그동안 내게 어울려준 것으로 충분해.”
그러니 이제는 청년에게 선택권을 줘야 할 것이다. 사내는 아무것도 챙기지 않은 채 돌아섰다. 청년의 손을 잡지도, 청년을 카드로 되돌려 품에 넣지도 않고 청년을 찾으러 온 때 모습 그대로. 사내는 그렇게 공간을 빠져나갔고, 붙잡는 목소리도 따라붙는 발소리도 끝까지 들리지 않았다.
*
시간이 흐르자 청년을 찾는 사람도 조금씩 사라졌다. 사내의 뜻으로 추적하던 자들은 전부 제자리로 돌아갔고, 단서가 될 것을 찾아 전해주던 고향 사람들도 대부분 포기했다. 그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모두가 결론을 내린 것 같았다. 청년을 찾는 데 가장 열심이었던 사내조차 그에 대해 언급하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 청년에 대해 물으면, 사내는 이제 더는 찾을 이유가 없다고 답할 뿐.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굳이 찾을 필요는 없겠지.]
의미심장한 답변에 상대가 어떻게 청년에게 연락이 닿은 것인지, 만나기라도 했는지 물어도 사내는 그 이상 입을 여는 일은 없었다. 청년이 스스로 세상에 나오지 않는 이상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의미가 없으므로.
짐작한 대로, 청년은 사내가 한 번 찾아낸 후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선택권을 준 것은 자신이었음에도 사내는 때로 그에 쓸쓸함을 느꼈다. 아무래도 오랫동안 곁에 두어서 너무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그가 ‘찾아주는 것’에 익숙해진 청년이 오랫동안 그를 떠나지 않았던 것처럼.
청년의 공백을 느낄 때면, 사내는 시스템을 통해 카드를 검색했다. 오래 전, 한 소녀의 소유였던. 그리고 어떤 소년에게 환상으로 남았던. 원형은 세상 어디에도 없지만, 그 속에 살던 것은 수십 년을 인간처럼 존재해온 카드를. 카드의 위치는 찾을 때마다 그의 회사 어딘가. 카드에 그려진 남자도 그가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
이전처럼 마주칠 순 없지만, 잃은 것은 아니다. 돌아가긴 했어도 아직은 사내의 행동반경 내에 있다. 이것은 애매한 선택인지, 가능성을 열어둔 것인지. 그러나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하나. 청년은 어쨌건 사내에게 묶여있기로 했다. 그것이 사내에겐 위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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