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회사의 젊은 사장은 수완이 좋았다. 그가 어린 나이에 사장직을 맡았을 때 막 업계의 정점에 선 회사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도 제법 있었으나, 그는 몇 년 만에 자신에게 향한 불신과 걱정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증명해 보였다. 창업주의 자식이라 회사를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사람이기에 사장이 되어야 했던 것이다. 사장은 의욕적으로 미래를 열었고, 물려받은 기술을 발전시켰으며 유행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의 능력이 가장 빛나는 데라면, 사람을 키워내는 것이었다. 제 회사의 기술을 바탕으로 한 게임 대회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는 프로를 계속해서 배출하는 것. 선수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만큼 게임을 키우고, 게임은 회사를 키우고, 회사는 다시 사람을 키워낼 수 있었다.
사장이 만들어낸 여러 선수 중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이전까지 없었던 특이한 기술을 사용하는 청년.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기술을 습득했는지도 알 수 없다. 선수가 되기 전 어떤 삶을 살았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세상에 알려진 것이라곤, 등장하고 단기간에 신화 같은 기록을 쌓았다는 사실과 사장이 완전히 자신의 사람으로 키웠다는 것.
청년 개인에 대한 정보는 어떤 이유에선지 단단히 숨겨져 있었는데, 그것은 청년만이 사용하는 기술과 합쳐져 청년을 일종의 신비로 만들었다. 의도한 것이라면 영리한 전략이었고,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성공적인 수확이었다. 청년은 사장이 세공한 보석 중 가장 빨리 대중을 사로잡았고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청년의 경기엔 언제나 사람이 몰려들었고, 경기가 끝나기만 하면 기사가 쏟아졌다. 그의 모든 행동은 온갖 갈래로 해석되었으며 그가 사용하는 것은 이내 인기를 끌었다. 청년이라는 인간 자체가 하나의 돌풍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주목받는 데는 익숙하지 않은지 청년은 주변에서 인기에 대해 언급할 때마다 어설프게 웃었지만 대중은 그것조차 좋은 쪽으로 해석했다. 경기에 열중하는 만큼 서투른 것이라고. 경기장에서 압도적인 힘으로 상대를 꺾어버리는 청년을 본다면 고개를 끄덕할 만한 이야기이긴 했다.
그렇게나 사랑받는 선수의 경기 중 주목받지 못할 것이 있겠냐만, 청년의 이번 경기는 지금까지의 어떤 경기보다도 대중의 시선을 모았다. 프로 경기가 시작된 이래로 가장 긴 시간을 정점에 선 자와의 경기. 말하자면, 전설과의 대결이었다. 어떤 결말이 나더라도 이슈가 될 수밖에 없는 경기는 수많은 사람의 기대 속에서 시작되었다.
무대에 올라온 청년의 얼굴은 여느 경기에서처럼 표정이 없어 긴장의 정도를 알 수 없다. 다만 평소보다 훨씬 신중한 접근이, 상대의 무게를 느끼게 했다. 과연, 쌓아온 것이 있는 만큼 상대는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안정적이면서도 묵직한 공격은 청년을 응원하는 자들을 긴장하게 했다. 챔피언 도전자 치곤 제법 잘 버틴 편이었지만 청년은 결국 위기에 몰렸다. ‘그’ 쿠로사키라도 챔피언을 꺾는 건 무리일지도 모른다 ─ 사람들의 생각이 그리로 번질 때, 청년이 지휘하듯 손을 허공에 올렸다.
결말은 다음 순간에 났다. 청년은 자신의 열세를 트리거로 하는 함정을 발동했고, 단숨에 전세는 청년 쪽으로 기울었다. 마지막 공격은 이 세상에서 그만이 사용하는 기술로. 과거부터 군림해온 최강자를, 세상에 없던 기술을 사용하는 신인이 꺾는다. 극적인 결말에 환호가 쏟아졌다. 청년은 자신이 쓰러트린 챔피언에게 찬사를 받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이제, 사장에게 돌아가면 된다. 자신을 선수로 만들어낸, 공들여 키워온 사람에게로. 자랑스러운 소식을 전하고 만족한 얼굴을 확인하면 된다. 그렇게, 무대에서 내려 몇 걸음이나 걸었을까, 청년은 바로 기자에게 가로막혔다.
대중의 해석대로 ‘서투른’ 청년에게 기자와의 만남이란 달갑잖은 것이었다. 말솜씨도 없고 임기응변도 부족하다. 실력과 감각으로 위기를 넘길 수 있는 건 게임뿐. 사장은 청년을 끼고 있을 때는 청년의 부족한 말을 능숙하게 메워주었으나 청년에게 완벽한 답변을 준비시키진 않았다. 이런 데는 영 자신이 없는 청년이 도움을 받지 않으면 어설플 거라고 매달려도, 사장은 사람들에겐 그 엉성함이 먹힐 거라는 말을 돌려줄 뿐이다.
준비도 없이 기자와 맞닥뜨린 청년은 날아드는 질문에 가능한 짧게 답하는 것으로 실수의 여지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경기에 대한 몇 개의 질문을 그럭저럭 넘긴 청년이 조금 안도했을 때 뜻밖의 공격이 그를 흔들었다.
“LDS에서 쿠로사키 씨가 본래 마이아미 출신이 아니라는 것은 밝힌 적이 있습니다만, 출신지가 정확히 어디죠?”
바깥에서 자신의 뿌리를 캐려고 할 때면 청년은 자신이 얼어붙은 호수에 서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기자의 질문에, 그는 자신이 선 호수의 아래쪽으로 시선을 향한다. 얼음 아래 비쳐야 할 바닥 대신 깊이를 모를 물이 시야를 메우고.
“기억이, 없습니다.”
“아예 모르는 건가요?”
“어려서 아카바 씨의 손에 거둬져서요. 어디인지도 불분명해요.”
무덤덤한 말은 반은 진실이고 반은 거짓이었다. 기억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디인지는 알고 있다. 어디에서 왔는지는 알지만 어떤 곳인지 모를 뿐이다. 그의 바탕은 완전히 잘려나갔으므로. 세상에는 없는 곳이다, 라고 사장은 이야기했다. 존재가 깨끗이 지워졌다고 했다. 이곳 사람들에겐 처음부터 미지의 세계였고, 때문에 누구에게도 남아있지 않다고. 너의 고향은 말해봤자 누구도 알지 못해. 책 속의 이야기만큼이나 비현실적이지. 너는 환상 속에서 태어난 셈이야. 사장의 목소리가 머리를 울린다.
그런 세계가 실재했다는 증거가 있다면, 청년이 이 세계에 소개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그 전까지 누구도 사용하지 않았다던 새로운 기술. 엑시즈라 이름한 그것은 청년이 고향에서 배워온 것이다. 어떻게 익혔는지도 모르게 자연히 머리에 새겨져 있었던 것을 보면 그곳에선 일반적인 기술이었던 것 같다. 고향의 기술을 사용할 때마다 대단한 비밀이라도 보는 듯 열광하는 대중이, 청년은 신기하기만 하다.
“LDS의 아카바 사장이 직접 키워왔다는 소문이 사실이었군요. 사장에게 특별한 존재였을까요.”
“특별하다고는.”
확신이 없다. 사장이라면 어떻게 말했을까. 여기서는 사장이 대신 이야기해줄 수 없으니 적당히 말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앞으로 뭐든 지원해주겠다곤 했죠.”
“어린 쿠로사키 씨에게서 무언가 발견한 걸까요?”
"글쎄요. 내내 가능성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어릴 때는 별로 이해가 가지 않았지요.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확신하는지, 도대체 어떻게 들여다본 것인지."
“하지만 사장이 옳았군요. 지금의 쿠로사키 씨는 모두가 인정하는 실력자니까요.”
청년은 어렵게 답을 생각하는 대신, 부드럽게 웃으며 슬그머니 넘어간다. 그것만은 그에게도 능숙한 대처법이었다.
*
청년의 삶에서 최초의 기억이란 젊은 남자가 제 얼굴의 피를 닦아준 것이었다. 대략 십대 초반의 일이었을 것이다. 구조라는 상황을 인식하지도 못한 채, 그는 안경 너머로 빛나는 남자의 눈이 보석 같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차가운 얼굴을 하고선 제법 정성스레 상처를 살펴주었는데, 그 손길에 안도한 것인지 그때까지 기를 쓰고 의식을 유지하던 그는 이내 정신을 놓아버렸다. 의식이 끊어지기 전까지 시야에 보석처럼 선명한 보랏빛이 아른거렸다.
그 후로 남자는 구조한 아이의 보호자를 자처했다. 살 곳을 제공하고, 생활을 지원하고, 아무것도 없이 내던져진 아이에게 적당한 신분을 만들어주는 등 필요한 것은 뭐든 베풀면서. 게임 회사의 사장이라는 남자는 아이가 게임에 흥미를 붙이는 것을 보고는 회사 소속으로 선수가 되는 길을 제안했다.
즉, 청년이 프로의 길을 걷게 된 것조차 사장이 가져온 결과인 셈이다. 청년의 삶은 보호자를 통해 새롭게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니, 사장과의 만남은 어떤 의미로 청년에게 최초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청년이 그 날의 일을 최초의 기억으로 꼽는 건 그런 이유에서는 아니었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청년에게도 그 날 이전의 기억은 있었다. '자신의 것'으로 느껴지지 않을 뿐이다. 배경도 상황도 지워지고 감각만이 남았기에 그랬다. 타인의 꿈에 들어가, 꿈속 인물의 감정을 강제로 간접 체험하는 것 같다. 감지할 수 있는 것은 낯선 고통과 절망뿐이고, 그 외에 읽어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의' 기억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건 그 남자를 만난 때부터였다 ─ 청년이 이미 십대에 접어든 때의 기억을 최초의 기억으로 취급하는 것은 그래서였다.
그때 막 성인이 된 사장은 자신이 거둔 아이의 바탕에 대해 자료를 만들기로 했다. 아이를 이해함으로써 제대로 보호하기 위해서였는지 단순한 흥미였는지는 알 길이 없고, 청년에겐 중요하지도 않은 것이었다. 보통 때의 청년은 자신의 뿌리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미 그는 ‘이곳’의 사람이 되었고, ‘사장의’ 인간이 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사장 이전의 삶이야 자신도 건져낼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궁핍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러나 경기장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사장에게 들러 인사하는 것조차 미루고 청년이 향한 곳은 자료실이었다. 자신의 과거를, 뿌리를 품고 있는 유일한 공간.
자료라고 해도 대단한 것은 없다. 진실인지 적당히 꾸며낸 것인지도 명확하지 않은 증언, 청년이 막 구조되었을 때의 사장과의 면담 자료. SF 영화에나 나올 것 같은 비현실적으로 화려한 미래형 도시의 사진 등. 그것이 과연 자신의 바탕인가? 자신이 떠나온 곳에 대한 기록이며, 자신의 과거와 연관된 이야기며, 자신의 존재에 대한 증명인가? 하나하나 살펴보면서도 청년은 확신이 없다. 기억이 제대로 남지 않은 이상, 어떤 정보를 손에 넣든 의미가 없을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도 제 것으로 느끼지 못하는데.
“축하 파티라도 열어줄 생각이었는데, 주인공이 보이지 않으면 곤란하지.”
청년만이 있던 자료실에 어느 순간 사장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워낙 침착해 웬만한 일로는 꿈쩍도 않는 사람인데, 목소리에 평소 같지 않은 열기가 느껴진다. 공들여 키워온 아이의 성공에 그 사장조차 들뜬 모양이었다. 그런데도 청년은 시선조차 주지 않고 제 할 말만 한다.
“엑시즈에 대해선 나를 데려오기 전부터 개인적으로 조사했다고 했잖아. 그런데 자료가 이것뿐?”
“자료실엔 왜 들어왔나 했더니. 너는 엑시즈에 별 관심 없지 않았나? 무슨 심경의 변화지?”
그제야 청년은 불완전하게나마 사장에게 필요한 키워드를 던져준다.
“경기 끝나고 인터뷰.”
“그게 왜?”
“출신지가 어디냐는 질문을 받았어.”
“그 질문 하나에 갑자기 감상적인 인간으로 바뀐 건가?”
“내가 이 세상에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가 필요해.”
청년은 고개를 들어 보호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금빛 눈에 지금까지 본 적 없던 간절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것을 외면하려는 듯, 사장은 청년의 말을 가볍게 받아친다.
“너를 찾는 사람이 이 세상에 가득해.”
“그런 것이 아니라.”
“신분? 예전에 아카바 레이지가 구조한 신원불명의 소년이라면 모를까, ‘쿠로사키 슌’은 신원이 확실한 인간이다만.”
“그것조차 당신이 만들어준 거잖아.”
“내가 관여한 것은 싫나?”
분명, 청년의 삶은 사장을 통해 새롭게 시작된 것이었다. 그것에 불만을 가진 적은 없었다. 다만 새로운 삶의 모든 것이 사장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때로 청년을 불안에 빠트렸다. 그가 자신을 놓아버리면? 어느 날 그에게 삶을 부정당하면? 세상에서 부르는 청년의 이름은, 부모가 아닌 사장이 지어준 것이었다. 청년의 진로는 사장이 깔아준 길이었다. 회사 바깥은 물론이고, 회사에서도 사장과의 연결이 끊어지면 청년이 쥘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만큼, 그의 바탕은 너무 궁핍하다.
“연결고리를, 세상과의 확실한 연결고리를 바라. 나는 언제나 부유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어. 당신이 만들어준 가짜 신분을 덮어써서 이 세상에 억지로 끼워넣어졌을 뿐인 거야. 그래서야 언제 뿌리가 뽑혀 흩날릴지 모르지. 아니, 처음부터 이 세상에 뿌리는 못 내렸을지도.”
“연결고리라. 너는 고향인 엑시즈에 대해 기억이 없다면서, 거기서 배워온 기술에는 집착하지. 무엇이라고 불러도 좋을 기술에 굳이 엑시즈라고 이름을 붙인 것도 너였고. 그게 네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앞으로 너를 ‘엑시즈의 시초’로 기억할 거다. 어때.”
“가져왔을 뿐인 기술로, 창시자 취급이라.”
“어차피 이 세계에 그걸 소개한 사람은 너고, 온전히 쓸 수 있는 사람도 네가 유일하지 않나. 나도 너에게 엑시즈의 기본은 배웠지만 어차피 너만큼은 못 쓸 거야. 그것으론 부족할까.”
할 말을 찾지 못한 것인지, 말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인지 청년은 더 이상 말이 없다. 그것으로 끝낼 수도 있었을 테지만 영민한 사장은 자신이 거둔 아이의 얼굴에서 미진함을 읽어낸다. 거기서 사장이 떠올린 것은, 자신이 세공한 보석 중 가장 뛰어난 자를 만난 날이었다. 그 아이는 왜 하필 자신의 눈에 들어온 것일까. 우연이라고 하기엔 짓궂은 데가 있는 만남이었다.
“쿠로사키. 나는 신비를 탐구하는 것을 좋아해. 말한 적 없었던가?”
“그래서?”
“내가 왜 너를 건져와서, 아무런 정보도 없는 아이를 귀하게 키우며 곁에 두었다고 생각해?”
“동정? 책임감? 모르지. 그때의 아카바 레이지는 도덕적인 인간이었을 수도 있고.”
“물론 피를 뒤집어쓴 아이를 보고도 방치하는 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행동이지만, 도덕성만으로 움직였다면 의무적으로 약간의 지원을 하는 게 전부였겠지.”
“그런데?”
“너에게서 엑시즈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어. 그 전까지 환상이나 다름없던 엑시즈를 네가 현실로 만든 거야. 살면서 그렇게 흥분된 적은 거의 없었지.”
청년은 최초의 기억에서, 보석처럼 빛났던 사장의 눈을 떠올린다. 이곳 사람들은 들은 적도 없는 자신의 출신지에 대해, 이전부터 조사했다는 사장의 말도. 그리고 우연히 구조했을 뿐인 신원불명의 소년에게 사장이 베풀어온 엄청난 지원도.
“엑시즈의 인간이란, 이젠 더 찾아볼 수 없는 귀중한 신비다. 엑시즈 자체가 증발하고 말았으니까. 이 세상에 남은 흔적이란 너 하나. 네가 원하건 그렇지 않건, 너에 대한 내 흥미는 아마 네가 죽을 때까지 지속될 거야. 이제 안심이 되나?”
“몰라. 당신의 말은 이해하기 힘들어.”
“이해할 필요 없어. 너는 그냥, 내게서 필요한 것만 가져가면 돼. 너라는 신비를 내가 독점하는 대가라고 생각하고.”
“독점?”
“너를 세상에 내놓기는 하지만, 너의 바탕은 나만이 쥐고 있는 것이니까. 그건 누구에게도 공개 안 해.”
대중이 청년을 마음껏 해석하도록 그에 대한 정보를 틀어쥐고 있는 것은 약점을 흘리지 않으려는 노력이나 그를 ‘무해한 미지’로 만들기 위한 전략만은 아니었다. 사장은 살아있는 화석이나 마찬가지인 청년의 가치를 자신만 알고 싶었다. 청년이란 신비를 누구도 함부로 파헤치지 않게 하고 싶었다. 사장에게 그만큼 흥미로운 연구대상은 없었으니까.
짙은 흥분이 사장의 단정한 얼굴에 번졌다. 청년은 ‘사장에겐 드물게’ 흐트러진 모습에, 괴상한 열망에 안도한다. 삶의 토양이 된 사람이 이렇게나 자신을 쥐고 있으려 든다. 그렇다면 그를 통해 이 세상에 계속 뿌리를 내리고 있을 수 있으리라. 청년은 바닥에 흩어진 자료를 정리하지도 않고 일어났다. 희미한 과거보다 훨씬 강렬한 바탕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
“축하 파티, 열어줘. 당신이 공개적으로 축하해주는 걸 보고 싶어.”
“성대하게 열어줄 테니까 기대하라고.”
청년은 사장을 따라 자료실을 빠져나온다. 자신을 세상에 붙잡아둘 확실한 연결고리를 찾았으므로, 앞으로 저곳에서 불완전한 자료를 헤집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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