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슌ts] 무기의 체온

2016. 11. 6. 11:49 from 03/2

 

  여자는 가볍게 추락했다. 날아든 공격을 가느다란 몸이 버티지 못해 날려간 지 오래지 않아서. 끔찍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닿은 몸은 그대로 움직임을 멈추었다. 동료들이 달려들어 그녀를 잡아 일으켰고, 여자는 일어나자마자 아무렇지도 않은 듯 눈을 깜빡였다. 추락의 여파로 몸에는 긁히고 쓸린 자국이 가득했으나 가장 심각한 것은 무참하게 찢긴 배였다. 상태를 점검하려 여자에게 시선을 돌린 사내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내부를 드러낸 여자의 뱃속에는 그가 아는 인간의 장기 대신 기계 장치가 그득했다. 여자는 경악하는 동료들을 무시하고 열린 배를 엉성하게 여몄다.

  “봉합하는 게 좋겠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군.”

  살갗이 찢어진 곳에서는 붉은 피 대신 오일을 닮은 것이 흘러내려 바닥을 적셨다. 여자가 미처 지켜내지 못해 흘린 부품들도 바닥을 나뒹군다. 괴상하기 짝이 없는 풍경이다.

  “쿠로사키?”

  여자를 부르는 사내의 목소리가 드물게 떨리고 있었다. 지독하게 비현실적인 풍경 속 여자만이 평온했다. 제 몸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있으면서도, 여자는 망가진 기계를 살피듯 덤덤하다.

  “성가시게 됐네.”

  감상은 거기까지였다. 여자는 배를 감싸지 않은 손으로 다시 무기를 집어 들었다. 그 상황에서조차 중단된 싸움을 마저 끝내려는 모양이었다.

  “왜 그렇게 봐?”

  여자는 사내와 눈이 마주치자, 금빛 눈을 둥그렇게 뜨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이런 몸으론 싸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

  다음 순간, 눈이 떠졌다. 사내는 꿈에서 깨어났다. 깨어나고도 한동안 꿈의 잔상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사내는 자신이 있는 곳이 전장이 아닌 제 방이라는 것을 깨닫고서야 안도할 수 있었다. 시선을 옆으로 돌리자, 곁에는 잠든 여자가 보인다. 그는 손을 뻗어 여자의 손목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손을 통해 전해지는 것은 맥박. 심장이 뛰고 있다. 숨을 쉬고 있다. 살갗 아래에는 따뜻한 피가 흐르고, 몸 내부에는 장기가 들어차 있을 것이다. 그녀라고 다른 사람과 다를 리 없다. 뻔히 알면서도 굳이 맥을 확인한 것은 꺼림칙한 꿈 때문이다.

  여자는 어려서부터 전쟁에 휩쓸린 사람이었다. 살아남기 위한 무장은 지옥 같은 전장에서 그녀를 지켜주었으나, 그녀는 그 대가로 많은 것을 버려야만 했다. 타인을 해한다는 것에 대한 주저함과 사람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경계와 적개심을 장착한 여자는 이미 평범한 사람으로부터 너무 멀어져 있었다. 누군가는 여자를 두고 병기가 된 인간이라 말하고 누군가는 그녀를 전쟁이 낳은 괴물이라고 불렀다. 적을 베기 위해 자신을 무기처럼 사용해온 사람이라, 여자는 자신에게 날아드는 그러한 말들을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사내 역시 단단히 무장한 여자를 두고 싸우기 위한 기계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것이 꿈에 투영된 것일까. 사내는 자신의 행동을 우스워하면서도 여자의 손목을 놓진 않았다. 여느 사람과 다르지 않은 따뜻한 체온을 더 느끼고 싶었다. 여자에 대한 자신의 무의식을 수정하고 싶었다. 사내의 시선은 그녀의 창백한 손목에 꽂혀있었다.

  “뭐가 그렇게 궁금해서 뚫어지게 들여다보는 거야?”

  갑자기 날아든 목소리에 사내는 반사적으로 손목을 놓았다. 언제 깬 것인지 여자가 눈을 뜨고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몰래 파헤칠 것이라도 있었던 모양이지?”

  천천히 몸을 일으킨 여자는 나른한 웃음을 걸친다. 이럴 때서야 여자는 살아있는 병기 따위의 이름을 벗고 그 나이대의 여자로 보인다. 전장에서 벗어나 풀어진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건 사내뿐이었다. 지금 비치는 것도 여자가 이곳에서 벗어나 전사로 돌아가는 순간 흩어질, 한순간의 느슨함에 불과했다.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다.”

  “무슨?”

  “네가 살아 숨 쉬는지, 맥이 뛰는지 같은 것.”

  “당연한 것을 왜 굳이 확인해? 그렇지 않다면 나는 대체 어떤 인간인데?”

  여자는 깔깔댔다. 사내도 실없이 웃으며 제 얼굴을 손으로 감쌌다.

  “, 기계 같은 사람이니 뭐니 하는 말에 당신도 전염됐나?”

  사내의 시선이 여자의 몸에 새겨진 흉터로 향했다. 그녀의 몸에는, 전장에서 새겨졌을 것이 분명한 흉터가 이곳저곳에 남아있었다. 살아남는 과정에 생긴 흔적이므로 여자는 굳이 흉터를 숨기려 들지 않았다. 영광의 상처라고 자랑스레 내보이지도 않았다. 그 모든 것은 그저 여자가 걸어온 길을 상징하는 증거에 불과했다.

  “꿈을 꿨다.”

  사내는 눈을 내리깔며 말을 이었다.

  “전장에서 부상당해 안을 드러내게 된 네 몸에 기계 장치가 그득한 꿈을.”

  “그래서 내가 진짜 기계로 된 인간인지 확인하고 싶었나? 배를 가르진 못하니 맥을 짚어서?”

  사내가 답하려는 때, 여자는 침대 옆 테이블의 유리잔을 깼다. 다음 순간 여자는 유리 파편을 쥐더니 자신의 팔을 그었다. 흰 팔을 타고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여자는 놀란 사내의 손을 잡고 자신에게로 가져와 피가 흐르는 상처에 얹었다.

  “나는 상처가 나면 피가 흐르고, 그 피는 따뜻하고, 이 순간에도 심장은 뛰고 있어. 당신과 똑같이.”

  그제야 여자가 스스로 상처를 낸 이유를 알아챈 사내는 여자에게서 손을 빼냈다. 상처는 깊지 않았지만 피가 계속 흐르는 것이 마음에 걸려, 사내는 여자의 상처 부위를 조심스럽게 천으로 싸맸다.

  “그렇게 확인시켜줄 필요는 없었는데.”

  “고작 꿈 따위에 휘둘려서 깨자마자 맥을 확인하는 사람인데?”

  이미 들킨 것이 있으므로 사내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사내에게 장난인지 진심인지 모를 말이 날아들었다.

  “사실 나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몸을 기계로 채우는 것도.”

  “이해할 수가 없군.”

  “치료보다는 수리하는 게 쉬울 거 아냐?”

  여자의 명랑한 목소리에, 사내는 여자가 걸어온 길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 나이에 시작되어 지금도 끝나지 않은 전쟁은 그녀의 삶을 완전히 잠식하고 말았다. 삶의 목표마저도 자신의 미래에 대한 소망이 아니라 전쟁을 끝내는 것이 되어버린 여자였다. 그렇게 살아오는 동안 여자 역시 자신을 싸움을 위한 병기로 취급하게 되었다 해도 놀라울 것은 없었다. 그녀는 그런 자신에게 연민을 던지지 않는다. 안타까워하는 건 언제나 타인이었다.

  “사람의 몸은 약해서 쉽게 부서져. 치료는 오래 걸릴뿐더러, 치료를 마친다 해서 정상적으로 기능한다고 보장할 수는 없고. 전장에서 부상이란 게 얼마나 발목을 잡는지.”

  “그래서, 차라리 기계로 몸을 채운다면 빠르게 수리해 다시 싸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효율을 생각한다면 그 편이 훨씬 낫겠지.”

  “결국 싸우기 위함이군. 그렇다면, 전쟁을 끝낸다면 그런 생각을 할 이유도 사라지겠지.”

  전쟁이 그녀를 놓아주지 않는 한 그녀는 언제나 단단히 무장하고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사용할 것이다. 그 과정에 그녀는 스스로 사용하기 좋은 무기가 된다. 사내가 전쟁을 끝내는 것을 가정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다만 그 가정 뒤에는 자못 오만한 결심이 깔려있었다. 반드시 전쟁을 끝내 그 고통스러운 처지로부터도, 스스로를 병기 취급하는 사고방식으로부터도 해방시키겠노라고. 그것까지 읽어낸 것인지, 여자는 아이를 보듯 웃더니 사내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와 안았다.

  “알고 있다면 어서 활약해봐, 지휘관님.”

  자신을 안고 있는 여자는, 분명 언젠가는 인간의 모습을 쓴 병기가 아닌 평범한 인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를 그렇게 만드는 것은 자신이 될 것이다. 사내는 여자의 체온을 느끼며 그렇게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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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현소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