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는 누구에게도 악의가 없었지만 상냥하지는 못했다. 인간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헤아린다고 감싸는 인간은 못 되었다. 이번의 일도 그의 그런 특성에서 비롯했을 것이다. 사용하는 전사의 동료가 쓰러진 것을 인지하고 그 유품을 입수해 연구하기까지 했으면서 일부러 그 사실을 비밀에 부친 것이다. 쓰러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면 동료에게 종말을 전하고 유품을 넘겨주었다면 좋았을 것을, 자신의 전사가 싸움 중에 혹 동요할까 싶어 끝까지 숨기고 말았다. 결국 모든 것이 끝나고서야 슬며시 진상을 알린 사내였다.
그는 영민한 인간이었고 순간순간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있었다. 사라진 동료를 애타게 찾았을 이를 달래는 것보다 눈앞의 일을 말끔히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빠르게 판단했으리라. 그가 어떤 인간인지 모르지 않았기에 여자는, 쓰러진 자의 동료는 그에게 ‘왜’라고 묻지 않았다. 대신 여자는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공백을 견딜 수 없을 때 자주 하는 행위였다. 무릎을 안은 손가락은 가늘고 뼈가 도드라졌다. 잎을 떨군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손.
사내는 막 동료의 마지막에 대해 듣게 된 여자가 입을 뗄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아무리 여러 가능성을 고려해 내린 결정이었다 해도, 여자가 슬퍼할 수 있을 날을 박탈한 것은 분명했으므로. 원망을 던지든 저주를 퍼붓든 사내는 아무 말 없이 받아들이려 했다. 여자에게는 그럴 자격 정도는 있었다. 모든 것을 잃은 채 한 가닥 희망이라도 건지기 위해 먼 세계로 숨어들어서까지 싸우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함께 온 동료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너무 늦게 알고 만 것이다. 사내가 고의로 정보를 차단한 탓에. 그동안 기댈 곳 없는 타지에서 그녀가 얼마나 마음을 앓았을지, 사내는 짐작할 수도 없다.
그러나 여자는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시선을 아래에 두고 깍지 낀 손에 자꾸만 힘을 실을 뿐이었다. 최대한 움츠린 채 홀로 슬픔을 삭이고 있는 것처럼.
“덱은 어디에 있어?”
한참이나 지나서 흘러나온 것은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설명이 생략되어 있긴 하지만 사내는 굳이 더 묻지 않고도 여자가 의도한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동료의 무기를 말하는 것이다. 그녀가 구할 수 없었던, 그래서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된 자의 것.
“이전까진 당신이 마음대로 했으니, 걸릴 게 사라진 지금은 내 멋대로 해도 되겠지.”
여자가 찾는 것은 연구 자료로 사용할 것도 아니었고, 자신이 소유할 것도 아니었다. 그것쯤은 그녀에게 돌려주어도 될 것이다. 사내는 사라진 자가 남긴 것을 내밀었다. 그러자 여자는 고개를 들더니 사내가 쥔 것을 받아들어 귀한 것을 다루듯 조심스레 쓸었다. 그제야 사내는 여자의 얼굴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울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눈물은 한 방울도 흘리지 않는다. 그저, 희미하게 웃으며 친구의 유품을 쓰다듬다가 가슴께로 가져왔을 뿐이다.
“고마워. 이것으로 됐어.”
여자는 물기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으로 전부 털어낸 것은 아닐 것이다. 하나뿐인 동료의 마지막을 그렇게 쉽게 삭일 수 있을 리 없다. 다만 여자는 동료와의 끈을 계속 붙들고 있게 되었다. 동료가 사용하던, 그의 사상까지 담겨있던 무기를 손에 넣음으로써.
“간직할 생각인가.”
“돌려줄 거야.”
쓰러졌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사내보다 여자가 더 잘 알 것이다. 지금까지 주변 사람들이 쓰러지는 것을 수없이 지켜봤을 여자이니까. 쓰러진 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주변인의 기억 속에서만 살아갈 뿐, 자라지도 늙지도 않는 정체된 존재가 된다. 그런데도 여자는 동료가 돌아올 것을 전제하고 말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음을 다잡기 위한 자기위안일 뿐일까, 아니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버리지 않은 한 가닥 희망일까.
“유토에게?”
“그래. 그러니 그때까지는 잘 보관하고 있어야지.”
“좋아.”
속에서 치미는 말을 누르는 것은 그녀의 희망을 믿어서가 아니다. 차마 그것까지 짓밟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냉정하게 현실을 말하는 사내라 해도 그녀의 처절한 희망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쓰러진 자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죽음’을 확인한 것은 아니었으므로, 거의 0에 가까울 확률이긴 하나 언젠가 거짓말처럼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었다. 여자는 그 가능성을 끌어안고 버티는 것이다.
그 엷은 희망이야말로 그녀가 쓰러지지 않게 해줄 마지막 선.
“나에게 할 말은 없나, 쿠로사키?”
“무슨 말을 듣고 싶어?”
“무슨 말이든 좋아. 할 말이 있다면 지금 해둬.”
“없어. 아무것도.”
즉답이었다. 원망이든 혐오든, 여자는 이미 전부 비워내고 온 듯했다. 감정을 태울 기력도 남지 않은 것일까. 여자의 창백한 얼굴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서, 사내는 고통스레 숨을 삼켰다.
“무엇을 기대했는지는 대충 알 것 같지만.”
여자는 웃으며 동료의 유품을 코트 속에 숨겼다.
“이미 너무 늦었잖아, 아카바 레이지.”
그녀가 마음껏 슬퍼할 기회까지 앗아간 것은 그 자신이었기에, 사내는 그대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정보가 차단되었던 동안, 여자는 사라진 동료를 기다리던 끝에 모든 것을 놓아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겨울의 나무가 마른 잎을 떨구듯.
“이번 일로 확실히 느꼈어. 당신, 다른 사람들에게 오해받기 쉬운 타입이네. 그러다 원망을 사고.”
“내가 자초한 것이기도 하지.”
“원망을 끌어안는 게 괴롭지 않다면 멋대로 해. 하지만 당신 정도라면 오해받지 않도록 할 수 있을 텐데.”
“걱정해준 것은 고맙지만 괜찮아.”
최선의 결과를 위해 고통이 따르는 선택을 하고, 그로 인해 짓밟힌 사람들에게 지독하게 비정한 인간으로 오해받는 것은 사내에겐 이미 익숙한 일이었다. 자신의 진의를 오해해 비난을 퍼붓는 것으로 조금이나마 그들이 슬픔을 덜 수 있다면 사내로서도 조금은 홀가분할 것이다. 용무가 끝났다고 판단한 것인지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사내에게서 돌아섰다. 그녀가 몇 걸음 걸었을 때 사내는 불쑥 말을 던졌다.
“너도 나를 오해해도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양쪽 다 마음의 짐을 가벼이 할 수 있었을 텐데.
여자는 잠깐 걸음을 멈췄지만, 사내를 돌아보는 일 없이 곧 다시 걸었다. 언제라도 꺾일 듯 앙상한 몸이 이내 사내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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