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역조] 생일은 모두 함께

2017. 3. 10. 16:33 from 03/2

 

진열된 케이크를 신중하게 살핀다. 온갖 색의 크림에 장식까지 얹은 케이크에 둘러싸인 청년은 그 중 가장 괜찮아 보이는 것을 고르려 가게 안을 몇 번이나 맴돈다. 긴 고민의 끝에 청년이 점원에게 가리킨 것은 가장 화려하고 큼직한 케이크였다. 처치 곤란한 것이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잠시 머리를 스쳤으나, 청년은 자신의 선택을 바꾸는 일은 없었다. 가까운 사람의 생일을 위한 케이크였다. 조금 무리해도 좋았다.

초는 몇 개 드릴까요?”

점원은 케이크를 포장하며 물었다. 청년은 케이크를 받을 이가 몇 살인지 헤아리다 그만두었다.

. 초는 괜찮아요.”

어차피 초를 꽂을 일은 없었으므로, 청년은 초 없이 포장된 케이크만 받아 나왔다. 오늘은 그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남매의 생일. 며칠 전부터 청년은 오늘을 위해 시간을 비워두고, 남매를 위해 무엇을 준비할 것인지 고민했다. 일 년 중 하루. 12월 말의 어느 날. 소중한 사람의 생일은 몇 년을 챙기는 사이 청년에게도 특별한 날이 되었다. 한 사람의 생일만이어도 특별할 텐데, 두 사람의 생일이었다. 청년에겐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날이다.

예전부터 그와 함께했던 남매는 꼭 같은 날 생일을 챙겼다. 쌍둥이도 아닌데 왜 같은 날이냐고 물으면, 그 중 하나가 비슷한 날짜니까하고 대답하곤 했다. 겨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성탄절을 며칠 앞둔 날. 그것이 남매가 둘의 생일로 기념하는 날이었다. 그 날이면, 그때는 소년의 나이였던 청년은 남매와 함께 온종일 놀러다니며 세 사람만의 날을 즐겼다. 저녁쯤 되면 남매는 미리 준비한 케이크를 가져와 생일을 기념했다.

다만 남매는 케이크에 초를 꽂지는 않았다. 하나밖에 없는 케이크에 누구의 나이에 맞게 초를 꽂아야 하는지 답을 내긴 어려웠을 것이다. 나이를 합산해서 꽂을까 생각하기도 했거든. 근데 그러면 우리, 나이 너무 많은 것 같잖아. 동생이 장난스레 말하면 오빠가 거든다. 13에다 16 하면 29 우리 아직 성인도 아니라고? 세 사람은 깔깔댔고, 더 이상 초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 없이 케이크를 잘라 나눠먹었다.

그들이 한꺼번에 생일을 챙겨야 했던 이유를, 청년은 나이가 들면서 눈치채게 되었다. 두 사람의 생일이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서로 생일을 챙겨주고 싶어도 정확한 날짜를 알지 못하는 처지에서 두 사람은 어떻게 생일을 기념할지 고민했을 것이다. 그 결과가, 같이 챙기는 것. 기억에 없는 생일을 마음대로 만들어 챙기는 것이 된 셈이다. 태어났음을 기념하는 것이라면 날짜가 언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진짜 생일이 언제인지 따위는, 남매에겐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으리라. 물론 비밀을 알아챈 청년에게도 남매의 생일은 이 날 뿐이었다. 진짜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생일 케이크를 챙긴 청년이 향한 곳은 남매의 집이 아니라 자신의 집이었다. 남매의 집은, 이제 남아있지 않다. 근처에 가더라도 남매를 만날 수는 없다. 아니, 어디에서도 그들을 만날 수 없다. 생일을 기념하는 것은 그 혼자뿐. 청년은 상자에서 케이크를 조심스레 꺼내고는, 근처에 포장한 선물을 놓았다. 오늘을 위해 준비한 것이지만 직접 전할 길은 없다. 지난 수 년, 청년이 챙긴 남매의 생일은 꼭 이런 식이었다. 주인공은 없고, 준비하는 사람만이 있는 생일.

남매는 이 세상에 없다. 그는 언젠가부터 존재하지 않는 사람의 생일을 챙기고 있다.

살아있지 않은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청년은 그것이 언제나 괴롭다. 그들은 분명 존재했지만 세상에선 없는 사람이 되어있다.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청년밖에 없고, 때문에 이 상황에 괴로워하는 것도 그 하나밖에 없다. 살아오면서 가장 소중했던 사람들은 그의 머릿속에서만 실재한다.

수 년 전, 세상이 파멸했다 재구성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은 사라졌다. 아마 두 사람은 평화의 제물로 쓰였을 것이다. 그들이었던 것이 세상에 고루 흩어졌을지도 모르지만, 그들과는 만날 수 없다. 평화를 찾은 세상에서 모두 함께하고 싶다는 세 사람의 소망은 결국 반만 이루어졌다. 혼자 돌아온 청년은 한동안 광인처럼 남매를 찾아 헤맸지만, 남매가 있었단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세상과 맞닥뜨릴 뿐이었다.

그 해가 넘어가기 직전에야 청년은 포기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이 어딘가에 살아있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니라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12월 말이었고 성탄절을 앞두고 있었다. 휴일이 가까워져 들뜬 사람들 사이에서 청년은 문득 기억해냈다. 언젠가부터 매년 그 즈음이 되면 챙기던 날을. 두 사람의 생일을. 청년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케이크를 사고, 누구도 뜯지 못할 선물을 준비했다.

그로부터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남매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청년은 여전히 생일을 챙기고 있었다. 매년 두 사람을 위해 산 선물은 포장된 채로 서랍 속에 얌전히 잠들어있다. 올해의 생일도, 청년은 주인공 대신 혼자 준비했다. 결국 자기위안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꼬박꼬박 생일을 챙기는 것은, 그렇게라도 붙잡고 있고 싶어서였다. 자신만이 기억하는 사람들을. 아직도 어딘가 먼 곳에라도 살아 숨 쉬는 것처럼 챙기는 것으로.

생일 축하해. 루리. .”

청년은 혼자만의 공간에서 말했다. 답해줄 이 없는 말은 쉽게 흩어졌다.

루리는 법적으로 성인이 된 것을, 슌은 그보다 세 살을 더 먹은 것을 축하해.”

그렇게 말해도, 기억 속의 남매는 나이가 들지 않는다. 여전히 동생은 마지막에 보았던 모습 그대로 열네 살 소녀 같고, 오빠는 열일곱 소년 같다. 청년만이 나이가 들어 성인이 되었다. 청년은 자주 자신과 함께 나이를 먹은 두 사람을 상상해보려 하지만 언제나 제대로 그려내지 못하고 포기하고 만다. 앞으로 청년이 더 나이가 들어도 남매는 영원히 그때의 모습으로 정지해 있을 것이다. 기억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란 그럴 수밖에 없다.

건조한 축하를 마친 청년은 제 몫의 케이크를 입에 넣었다. 혀가 마비될 것 같은 단맛에도 그는 중독되기라도 한 듯 뱃속에 케이크를 계속 쏟아부었다. 그것만이 남매가 존재했던 생일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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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현소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