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은 가능성을 탐구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사람에게 잠재된 가능성에 몰두하여, 그것을 발전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 도시 곳곳에 깔린 카메라와 매일 날아드는 자료로 수많은 인간을 분류하고 분석하는 것은 바로 그것을 위해서였다. 타고난 영민함과 천재적인 판단력은 상대를 꿰뚫어보기 충분했다. 신중한 태도와 지속적인 관찰은 그의 예측을 확신으로 만들었다. 그 결과로, 그의 손에서 우수한 인재들이 발탁되어 그의 도움으로 자라났다. 채 스물도 되지 않은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노련한 행보였다. 그는 뛰어난 스카우터이자 후견인이었다.

청년이 선별하여 길러낸 자들은 그의 충실한 수족이 되었다. 그들은 그에게 충성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가 그리는 원대한 그림을 완성시키기 위해 언제든 싸울 준비까지 되어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거둔 성과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끝없이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헤매며, 새로운 인재를 발굴하려 애썼다. 그의 계획은 일군 것만으론 완성될 수 없었던 까닭이다. 청년의 보랏빛 눈은 제 또래의 아이들에게까지 곧잘 향했다.

그 중에서도 청년이 특히 주목하는 것은 한 소년.

사내는 관제실로 들어섰다. 어린 주인이, 가능성을 탐구하는 청년이 그곳에서 여느 때처럼 후보들을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커다란 화면에는 수많은 이들의 모습이 비친다. 나이도 실력도 천차만별, 잠재성을 품었다는 것만을 공통점으로 갖는 자들. 모든 가능성을 생각하여 면밀하게 관찰하기는 하나, 청년의 관심은 평등하지는 않았다. 분명 차등이 있었다. 미래의 전사가 될지도 모를 수많은 이들의 영상이 일시에 꺼지더니, 커다란 화면 전체에 한 명의 모습만이 가득 담겼다.

청년의 시선을 독차지한 주인공은, 이제 막 십대 중반에 들어선 어린 소년이었다. 얼굴은 아직도 앳되고 몸은 가늘어 꺾일 듯하다. 겉으로 보기엔 그 나잇대 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 소년에게 청년은 지대한 관심을 품고 있었다. 실력은 평균 즈음. 다룰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이며 능숙함과는 거리가 멀다. 새로운 소환법의 창시자라는 타이틀이 소년이 내세울 수 있는 전부. 그에 대한 청년의 관심은, 도시의 정점에서 군림하는 이가 베푸는 것이라기엔 놀라울 정도였다.

그러나 청년은 언제나 소년을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소년의 행동 하나하나에 주목하며 그에게 기회를 주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그것이 의문스러워, 사내는 언젠가 물은 적이 있었다.

왜 그 소년에게 그렇게 몰두하느냐고.

답은 웃음과 함께 돌아왔다. 청년은 안경을 고쳐 쓰며 부드럽게 말했다.

사카키 유우야는 완성되지 않은 사람이니까.”

미완이기에 주목하신다는 겁니까?”

이해가 되지 않아 재차 물었다.

미완이란 가능성을 뜻하지, 나카지마. 사카키 유우야는 수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다. 완성된 인간은 그 이상 발전할 수가 없으나, 미완의 인간에겐 발전의 가능성이 충만해. 물론, 그걸 위해서는 여러 변수가 잘 작용해야 하지만.”

화면 속 풍경이 급작스레 바뀌었다. 적을 상대하고 있는 소년의 모습이 사라지고, 소년에 대한 모든 정보가 어지러이 화면을 장식했다. 사내는 청년의 손에서 소년이 낱낱이 해부되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그러한 인간이라면 주변인이 관여하는 것으로, 자신이 필요성을 느끼는 것으로 얼마든지 온갖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 내가 사카키 유우야에게 기대하는 것은 바로 그것.”

미완이라는 것은 그 상태에서 정지할 가능성도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요?”

물론 그렇지. 잠재성이 언제나 확실하게 발현되는 것은 아니고, 미완인 채로 남는 이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사카키 유우야는 그 단계에서 멈추지 않아.”

어째서 그렇게 확신하십니까?”

사람들은 그에게서 사카키 유우쇼를, 그의 아버지를 본다. 그에게 사카키 유우쇼를 기대함과 동시에 사카키 유우쇼의 아들이라는 한계를 만들지. 하지만 그는 타인이 만든 한계를 뛰어넘어, 펜듈럼으로 스스로의 힘을 입증해보였다.”

청년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와 함께 화면이 꺼지며, 소년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인간은 분명 가능성을 품고 있고 그것은 크건 작건 결과를 가져온다. 나는 미숙한 인간을 발탁하여 키우지만,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이를 뽑지는 않아. 스스로 나아갈 힘이 있고 내가 그 가능성을 싹틔울 수 있다고 판단할 때 고르는 것이지. 그는 모든 조건을 만족하고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나?”

청년은 미완을 예찬하고 있었다. 미완은 부족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더 나아갈 것이 있음을 뜻한다고. 그것은 완성되지 않은 이들만이 가진 특권이라고.

그렇다면 그는 완성된 인간으로서, 발전할 기회가 거의 남지 않은 사람으로서, 발전의 여지가 충분한 가능성의 집합체를 부러워하고 있는 것인가? 일순 머리를 스친 생각을 사내는 바로 흩어버렸다. 그런 것이 아니다. 그는 저 상좌에 앉아, 낮은 곳에서부터 천천히 상좌로 향하는 소년을 여유롭게 굽어보고 있는 것이다.

완성된 사람으로서, 더 나은 사람으로서, 소년의 발전을 기원하면서.

최종적인 목적은 가능성을 품은 소년을 제 편으로 끌어들여 전사로 만드는 일이라 해도, 소년을 지켜보는 청년의 시선에는 어딘가 순수한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그것은 미숙한 인간을 사랑하는 신의 시선과 닮아있었다.

그는 또 한 발짝 나아갔다.”

여느 때처럼 지극히 단정한 목소리였으나 여태껏 그를 모셔온 경험으로 사내는 그의 목소리에 미세하게나마 흡족함이 배어있음을 알았다. 주인의 곁에 선 사내가 물었다.

이번에는 어떤 발전이었습니까?”

펜듈럼이라는 가능성으로 꾀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지.”

만족하십니까?”

무슨 답을 바라지?”

만족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만.”

그라면, 언젠가는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언제가 되느냐의 문제였을 뿐.”

청년은 수하를 돌아보며, 순간의 감상이 사라진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가능성을 연 펜듈럼의 시조라면, 당연한 일 아닌가?”

 

*

 

펜듈럼의 시조. 청년이 소년을 칭하는 이름 중 하나였다. 새로운 소환법을 발견하면서 소년은 단숨에 수많은 이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그는 청년처럼 뛰어나지도 어른처럼 침착하지도 못했다. 그는 아직껏 서툰 십대 중반의 소년이었고, 제 앞에 자리한 장애물을 전부 뛰어넘기에는 아직 약했다. 냉정하게 따지자면, 그에게 주목할 점이라곤 소환법의 창시자라는 타이틀 하나뿐이었다. 때문에 몇몇은 소년에게 섣불리 기대하였다가 섣불리 실망하여 그에게 상처를 안기기도 했다.

그러나 청년은 달랐다. 청년의 시선은 소년이 막 이목을 끌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펜듈럼의 시조라는 이름이 청년을 완전히 매료시킨 것이 틀림없었다. 그때부터 청년은 소년의 가능성을 탐구하기로 다짐해 지금껏 그를 관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관계는 결국 거기서부터 시작한 것이 분명했다. 따라서 청년이 그 이름을 습관적으로 되뇌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사내는 때로 그 이름에 대해 묘한 감정을 느꼈다. 제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청년은 다소 과하게 영민했다. 평범한 이들을 아득히 뛰어넘어, 다른 사람이라면 결코 보지 못할 것을 보았다. 지금껏 그의 손에서 완성된 인물들이 전부 뛰어난 인재였던 것은 아니다. 지금 청년이 주목하는 소년과 마찬가지로 미숙하고 약한 이들도 더러 있었다. 그는 모두가 고개를 내젓는 것에서 가능성을 본다. 모두가 찬양하는 것에서 한계를 본다. 상대를 낱낱이 해부하고 진단하는 그는, 애초에 타인보다 월등히 높은 곳에 올라있었다.

평범한 인간의 생각 따위는 쉽게 읽어낼 수 있다. 그에게 얕은 수를 부리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했다. 채 스물도 되지 않은 짧은 생에서 이미 청년은 자신보다 부족한 이들과 수없이 마주쳤으리라. 평범한 이들은 그의 시선을 잡아끌지 못했다.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이유로 수많은 이들을 관찰하지만 그들 중 발탁되는 이는 소수. 달리 말하면, 그가 주목하는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 소수만이 청년의 머릿속에서 새로운 이름으로, 그들의 특질을 드러낸 이름으로 각인되었다.

펜듈럼의 시조라는 이름도 그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것은 연구자가 실험체에 이름을 붙여 관찰하는 것과 비슷했다. 그들은 모두 청년이라는 연구자의 손에서 가능성을 깨우는 연구의 대상이 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청년은 그들이 인식하건 인식하지 못하건 그들의 삶에 관여하며 연구를 지속했다. 소년 역시 청년에게 그렇게 각인되었을 것이다. 펜듈럼의 시조라는 이름으로.

청년은 개인을 보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특질을 파헤치고 가능성을 보는 것이다. 그들이 새로이 각인되었다는 것은 청년이 그들의 가능성에 열광하고 있음을 뜻한다. 청년은 소년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펜듈럼의 시조로서의 소년을 보는 것이리라. 가능성의 집합체로서,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할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소년을.

소년의 이름이 무엇이고 나이가 얼마이며 성격은 어떻고 어떤 과거를 가지고 있는지 따위는 청년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청년은 소년이 어떤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 수 있는지에 주목했다. 소년에 대한 청년의 놀라운 믿음은 바로 그곳에서 출발하는 것이었다.

사카키 유우야라면 가능할 것이다.”

청년이 자주 되뇌는 말에는 따라붙는 것이 있었다. 그는 펜듈럼의 시조이니까. 사카키 유우야여서가 아니라 펜듈럼의 시조이기에 그를 믿는다. 바로 그 소년이기 때문이 아니라 가능성을 품은 인간이기에 집중한다. 그렇기에 그들의 관계는 동등할 수 없다. 첫째가 완성된 인간인 청년과 미완의 인간인 소년간의 간극이 크기 때문이라면, 둘째는 그들이 상대를 보는 방향이 처음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인간을 보는 이와 특질을 보는 이는 다를 수밖에 없다. 전자가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소년에게 청년이 어떻게 각인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소년이 청년을 만난 때라곤 청년이 소년을 끌어들이려 했던 날 펼쳐진 잠깐의 대결이 전부였기 때문에. 소년이 본 청년의 모습은 지극히 단편적이었고 실제와는 거리가 있었을 것이 분명했다. 무엇보다, 소년은 자신이 청년의 연구대상임을 알지 못했다. 그것을 알면 그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타인에게 낱낱이 해부되고 자신의 삶의 여러 변수마저 타인의 손에서 놀아날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면.

청년은 가능성을 싹틔우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수많은 변수를 통제하고 의도적으로 소년을 특수한 상황에 몰아넣을 수도 있었다. 소년은 인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이미 청년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왔다. 이제 그의 삶은 오롯이 그의 의도대로만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다. 가능성을 싹틔우겠다는 청년의 열망은 쉬이 꺼질 리 없으며, 청년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의지도 능력도 충분히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으므로.

악의는 없다. 그러나 선의도 없다. 청년의 열망 자체는 순수한 것이라 해도 그것이 소년을 해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청년은 영민한 사람이었고 언제든 최선의 결과를 출력할 수 있는 정밀한 판단력을 가졌다. 그에서 출발한 청년의 계산에는 오류가 없었으나, 계산이기에 간과하는 것도 더러 있었다. 대상이 되는 인간의 감정 따위가 그 예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소년으로서도 감당할 수 있는 것인가. 거기에 대해서는 사내도 고개를 내저을 수밖에 없었다.

평범한 사람에게 일반적이지 않은 방식을 이해해달라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지대한 관심과 그에서 출발한 교묘한 관여를 감당해달라고 요구할 수도 없는 일이다. 청년의 방식은 결코 일반적이지 않았다. 그들의 관계 역시 일반적일 수 없었다. 그 괴상한 관계는 언젠가는 기괴한 결말을 맞게 되리라고 사내는 짐작하고 있었다. 동등하지 않은 관계는 언젠가는 삐걱거린다. 그것은 어찌할 수 없는 흐름이었다. 따라서 언젠가는 소년이 의문을 품는 날이 올 것이다. 언젠가는 연구대상인 소년이 연구자인 청년에게 반기를 드는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날은 그리 오래지 않아 찾아들었다.

 

*

 

한동안 유약하다는 말을 들어왔던 소년이었다. 자신의 행동에 자신감이 없었고 주변의 소수에게 의존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따라붙었던 말이었다. 그러나 소년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을 반복하며, 바로 그 유약함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었다.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타인에게 인정받고, 스스로 자신만의 방식을 인정함으로써 성장하게 된 것이다. 청년은 그 모습을 낱낱이 지켜보고 있었다. 안경 너머의 보랏빛 눈에는 드문드문 만족이 비치고 있었다. 연구자로서, 또한 완성된 이로서 차츰 성장해가는 자신의 연구대상의 모습이 보기 흡족했기 때문이리라.

빠르게 한계를 부숴가는 소년의 모습을 보면서 사내는 일전에 제 주인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소년은 미완의 인간이기에 발전의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 정말로 그러했다. 소년은 순간순간 가능성을 싹틔우며 더 나은 길을 열었다. 한때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외축되었던 바로 그 소년이 맞나 싶을 정도의 놀라운 발전이었다. 사람들은 소년에게 열광했고 소년은 그에 부응하여 더욱 달아오르고 있었다. 지극히 순조로운 흐름이었다.

그것이 부서지기 시작한 것은 청년의 계획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을 때였다.

평화로운 세상에 적이 찾아들었다. 청년은 이 세상의 전사들로는 적을 완전히 막아내기 어렵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이 불행히도 쓰러질 수도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청년은 세상을 지켜야 했고 전사를 내보내야만 했다. 그 전사들 속에는 자신들이 전사임을 알지 못하는 이들, 아직 어리고 미숙한 이들도 있었다. 비정한 처사일 수도 있으나, 청년은 그들에게서 가능성을 보았고 그곳에서 가능성을 펼치리라고 믿고 있었다.

가능성을 지닌 미숙한 인간. 그 속에 소년이 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소년만이 아니었다. 언제나 함께해온 친구도 있었고, 친구가 될 수 있었을 사람도 있었다. 침입은 현실이었고 적은 무자비했기에, 유감스럽게도 그들은 전부 적의 공격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중 몇몇이 소년의 눈앞에서 쓰러지고, 사라졌다. 소년은 살아남았으나 그가 경험한 것은 어린 나이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이었고 끔찍한 현실이었다.

의지하던 존재가 사라지고 가까워질 수 있었던 이들이 사라졌다. 바란 적도 없는 일에 휘말려 소년이 얻은 상흔이었다. 모든 것이 끝나고서야 모습을 드러낸 이는, 이 모든 것을 계획하고 모두를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몬 원흉 소년의 가능성을 예찬하던 청년이었다. 원망과 분노와 증오가 뒤엉켜 소년은 청년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가볍게 막혔다. 청년은 분노만으로 쓰러트릴 수 있는 벽이 아니었다. 소년이 정당하게 이겨 부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두 사람의 두 번째 대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서로를 탐색하고 인정했던 첫 번째 대결과는 달리 두 번째는 지극히 공격적이고 위태로운 것이었다. 아니, 소년에게만 그러했을 것이다. 청년에게 있어서는 두 번째 대결 역시 탐색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청년은 소년의 가능성을 탐구하고 싶었다. 소년이 스스로의 힘으로 일궈낸 것도 놀라웠고 그럼에도 다 펼치지 못한 가능성도 놀라웠다. 조금 더 탐구하고 싶다. 직접 끌어내어 다시 확인하고 싶다. 그러한 열망이 청년을 순수하게 들뜨게 했다.

청년을 향한 극도의 분노는 소년에게서 그의 최대한을 끌어낼 것이다. 소년은 그것으로 자신의 가능성을 입증해보일 것이다. 바로 그것이 청년이 바라던 것. 극단적으로 치닫는 감정도, 소년을 지배하는 흥분도 결국 청년에게는 소년의 가능성을 열어줄 기회였다. 그것이 소년을 잠식하여 자신을 위기로 몰아넣는다 한들 청년은 바로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었다. 소년은 빠르게 청년을 몰아세워 그를 부수려 했다. 그를 휩쓴 분노는 그것으로만 풀릴 수 있을 것이며 그의 목적도 그것으로만 이룰 수 있을 것이 분명했기에.

그러나 소년은 한 가지 결정적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소년은 가능성이 충만한 인간이며 지금껏 수없이 성장해왔지만, 완성된 인간인 청년을 이기기엔 미숙하다는 것을.

그가 아이라면 청년은 이미 어른이었다. 실력의 간극은, 경험의 간극은 쉬이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그가 수많은 가능성을 지닌 인간이라고 해도, 아무리 분노가 그를 지탱한다고 해도. 청년은 너무도 우수했고 이미 저 정점에 있었다. 불행히도 소년은 아직 청년을 끌어내리기엔 모든 것이 부족했다.

청년은 여유롭게 판을 뒤집었다. 소년의 투쟁도 헛되이, 결국 승리는 청년의 것이었다. 청년을 향해 넘실거렸던 분노도, 최대한 펼쳐낸 가능성도 소년을 구원하지 못했다. 반기를 든 소년은 청년을 쓰러뜨리지 못하고 무너졌다. 참담한 패배와 승리가 교차하는 순간에, 사내는 보았다. 쓰러지는 소년을 보는 주인의 시선을.

안경 너머의 보랏빛 눈은, 막 걸음마를 뗀 아이를 보는 부모처럼, 분명 기쁨을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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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현소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