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눈이 청년을 담고 있었다. 그가 선 자리가 인형을 만드는 공방이니 모조 안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쩐지 섬칫하다. 공방의 주인은 뛰어난 실력만큼이나 괴팍한 성격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자신이 만든 인형을 입구부터 숨이 막힐 정도로 쌓아둔 것도 꼬인 내면에서 비롯한 심술일지도 모른다. 들어서는 손님마다 인형에 포위된 느낌이 들게 하려는, 혹은 제 아름다운 공예품으로 사람들을 압도하기 위한. 청년은 형형색색의 눈을 애써 외면하고, 좁은 통로를 따라 안으로, 안으로 들어섰다. 사람을 맞아야 할 카운터에 아무도 없었던 탓이다.
청년이 듣기로 인형사는 보통 작업실에 틀어박혀 있다고 한다. 방해받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니 큰 소리로 부르기보단 작업실 앞에서 기척을 내는 게 낫다던가. 소문으로 들은 괴팍함을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그는 얌전히 작업실을 찾기로 했다. 바깥에선 그저 어수선하고 좁은 공간으로 보였는데, 막상 깊숙이 들어서자 의외로 내부 공간은 넓었다. 손님을 맞는 공간을 거의 포기한 대신 작업실을 제대로 확보한 것인가. 별종에게 어울리는 선택이었다.
그렇게 파고든 끝에 눈앞에 보이는 방은 두 개. 별다른 표시가 없으니 어느 쪽이 작업실인지는 알 수 없다. 아니, 어쩌면 양쪽 다일까 ─ 청년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 두 개의 문 앞에서 방황할 때,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오른쪽 방문이 열렸다. 인형의 집이나 다름없는 곳에서, 처음으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많아봐야 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소년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얼마간 그를 훑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마침내 입을 연 소년이 방문자에게 처음으로 던진 말은 소문 속 예술가의 이미지와는 전혀 달랐다. 청년은 공손한 태도에 안도하면서도 괜히 저도 조심스러워진다.
“주문해둔 것이 있어서…….”
“그럼 제게 말씀해주시겠어요? 마스터는 최근 과로해서인지 앓고 있거든요.”
“아, 그러니까 그쪽은.”
“조수예요.”
소년은 짤막하게 답하고 자신이 나온 오른쪽 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머뭇거리는 청년에겐 들어오라는 듯 손짓하고서. 따라 들어간 청년은 바깥보다 훨씬 많은 인형이 쌓인 것을 확인하고 놀랐다. 아름답고 정교하지만, 지나치게 생생해 소름 끼치는 인형들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경멸받는 출신, 불손한 태도에도 인형사가 수많은 손님을 받아온 것은 그가 만들어낸 인형이 너무도 뛰어난 예술품이기 때문. 독보적인 기술과 인간으로 착각할 정도로 섬세한 재현은 금세 귀족 사회에 알려졌다. 결정적으로 상부가 그의 인형을 몰래 들이고 있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유명세를 탔다. 들어가는 시간과 돈이 상당한데도 이곳의 인형이라면 하나쯤 손에 넣고 싶어 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다만 그러한 인기가 인형사에게 정말 행운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망국의 유민 치고는 잘 살아가고 있지만, 상부에 선택받은 바람에 이곳에 반쯤 유폐된 채 인형만 만들게 되었으므로. 괴팍한 성격이라는 것도, 행동의 제한 때문에 예술가적 기질이 폭주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는 제 나라를 멸망시킨 이들에게 예술품을 납품하며, ‘다른 마음’을 품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감시당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의 인형은 너무도 아름답다. 청년은 인형사에게 망자의 사진을 내밀고 똑같은 인형을 만들어달라고 한다는 부류를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 나이에 죽은 아이, 젊은 시절의 애인, 오래도록 존경받아온 집안의 어른 등 ─ 몇몇은 이미 인형으로 만들어져 귀족 가문의 깊은 곳에 박혀있다고 한다.
청년은 소년이 장부를 찾는 사이 슬쩍 인형의 뺨을 쓸어보았다. 보드라운 감촉은 살갗과 흡사하다. 이 정도라면 정말로, 죽은 이의 외형이나마 재현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에 몇 가지 기술을 조합한다면 간단한 말과 행동을 흉내내는 인형으로도 만들 수 있을지도.
“이름이?”
갑자기 날아든 말에 청년은 숨을 크게 삼켰다. 소년의 검은 눈이 어느새 자신을 담고 있었다. 소년에게 조금 전의 행동을 들키지 않았길 바라며, 그는 차분하게 답했다.
“D. 맥필드입니다.”
“어디 보자, 맥필드 씨……이런, 정말 엉망으로 써뒀네요. 시간이 좀 걸리겠어요.”
“괜찮습니다.”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소년은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무렇게나 휘갈긴 장부를 열심히 들여다볼 뿐이다. 근처에 앉아 지켜보던 청년은 생각보다 기다림이 길어지자 지루해져 시시한 말을 던지기 시작했다.
“조수라면, 그쪽도 인형을 만드나요?”
“아뇨. 저는 그만한 기술이 없어서.”
“그럼 배우고 있다거나?”
“여기는 제자를 받지 않아요.”
“그럼 다음 대에는 이만한 인형이 나오지 못하는 것 아닌가요?”
“마스터는 자기 대에서 끝났으면 한다네요.”
거기서 소년은 장부를 덮었다. 곧이어 소년이 늘어놓은 것은, 정확히 청년이 기억하는 주문 사항이었다.
“D. 맥필드 씨, 남녀 인형 1체씩. 연령은 17세에서 20세로. 확인했습니다. 아카데미아의 주문이라고 말씀하셨다면 훨씬 빨랐을 텐데요.”
“아카데미아의 이름으로 움직이는 건 조금 조심스러워서요.”
“문제가 되나요? 고객이나 주문의 정보는 바깥으로 새어나가지 않아요.”
“이건 조금 특별한 것이어서요.”
인형사가 상부의 결정으로 반쯤 유폐되어있다는 것은, 이곳을 찾는 손님이라도 대부분은 모르는 정보. 지배층 간부 조직에 소속된 청년이기에 아는 사실이었다. 청년은 이번에, 상부의 명령으로 인형을 주문했다. 통치자가 저에게만 내린 임무라는 점이 은근히 기쁜 한편, 혹 실수라도 할까 긴장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를테면 누군가 부주의하게 통치자의 ‘사적인 사치’를 흘린다거나, 인형사의 작품에 뭔가 문제가 생길 경우.
“그런 거라면 마스터가 괜찮을 때 오시는 게…….”
“우선은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 정도로 괜찮으시다면, 네. 안내하죠.”
바깥에 숨겨진 공간이라도 있을 줄 알았더니, 소년이 향한 곳은 짐으로 막힌 방의 끝이었다. 짐을 적당히 치우자, 생각지도 못했던 문이 드러났다. 조심스레 열면 마법처럼 깊은 공간이 있었다. 작업을 마쳤거나, 따로 분류한 인형은 이곳에 두죠. 소년의 설명을 들으며, 청년은 굴을 연상했다. 문 너머에 또 문이 숨겨져, 이곳에서 지내는 사람이 아니면 모를 공간을 자꾸만 품고 있는 공방.
무언가 숨기고 싶은 게 있는 것일까. 굴처럼 자꾸 파고드는 것을 생각하면 그럼직한 발상이었지만, 인형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바쁜 사람에게 대단히 숨길 것이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게다가 과거 위험인물로 낙인찍힌 일 때문에 행동이 그리 자유롭지 않은 인형사였다. 혹 수상쩍은 게 있다 해도, 적당한 핑계로 공방을 한 번 엎으면 그만이다.
“인형 말이에요, 주문을 넣을 때 남성형에게 붙인 이니셜이 Z, 여성형이 A였죠?”
청년을 두고 혼자 들어간 소년은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저 안에서 말을 걸어왔다.
“네.”
“끝과 시작이 되는 글자라니, 희한하네요. 무슨 의미라도 있나요?”
“글쎄요, 별 의미는 없을 것 같지만.”
명령을 받을 때, 그런 사소한 부분까지는 듣지 못했다. 안다고 해도 상대에게 이야기할 수는 없다. 이번 일은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으며, 망국의 사람에게는 불필요한 것은 무엇도 흘리고 싶지 않았다.
“주문할 때 뭐라도 이름을 붙이는 건 드문 일이라서, 그냥 물은 거예요. 이번엔 마스터가 정말 까다롭게 굴어서 조금 궁금하기도 했고요. 마음에 드는 작업이었을까요, 어쩌면.”
“그랬다면 다행입니다.”
“아, 찾았어요. 안으로 들어와서 보세요.”
청년은 들뜬 것을 숨기고 안으로 들어섰다. 수술실을 연상시키는 작업대에 놓인 상자가 두 개. Z라고 적힌 상자에는 은발의 남성형 인형이, A라고 적힌 상자에는 붉은 머리카락의 여성형 인형이 얌전히 누워있었다. 과연, 대단한 정교함이었다. 옷을 입히지 않아 접합부 등에서 작업의 흔적이 보일 것 같은데도, 인간의 나신처럼 매끈한 몸만 눈에 들어올 뿐이다. 청년은 저도 모르게 감탄을 흘렸다.
이대로라면 돌아가서 바로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으리라. 주문할 때 요구한 이미지 그대로 만들어졌다고. 인형이란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니, 충분히 만족할 거라고.
“거의 끝난 것 같아요. 여기서 조금 더 다듬고, 옷을 입히겠죠.”
“다음번에 찾아오면 가져갈 수 있을까요?”
“사람을 시켜 보낼 수도 있어요. 그쪽이 더 편할 겁니다. 아무래도 크기가 있다 보니.”
그러고 보면, 실제 사람과 거의 비슷한 크기였다. 하나도 아니고 두 개를 혼자서 챙겨가기는 아무래도 무리일 것이다. 소년의 제안에 미리 주소를 남긴 청년이 만족을 안고 공방을 떠나려던 때.
공간의 한쪽에, 커튼으로 가려진 곳이 보였다. 소년이 인형을 정리하는 틈에 호기심으로 슬쩍 커튼을 젖힌 청년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아름다운 소녀 인형이 그곳에 얌전히 앉아있었다. 소년과 비슷한 나이로 설정된 듯한 인형은 긴 흑발을 예쁘게 단장하고 고풍스러운 드레스를 입었다. 단정한 얼굴에 걸린 웃음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그러나 인형이 청년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인형은 과거의 어느 시간을 헤집었다. 설익은 감정과 조잡한 심리가 엉킨, 수년 전의 나날들. 인형을 보는 순간 짧은 추억 속에서 빛나던 사람이 눈앞에 되살아났다. 거리공연을 매번 찾아준 사람. 마술로 꺼낸 꽃을 받아들고서 수줍게 웃던 소녀. 루리 양. 속에서 튀어나올 뻔한 이름을 청년은 겨우 삼켰다. 자신에겐 그 이름을 입에 담을 자격이 없다.
“그럼 작업이 완료되는 대로…….”
소년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얼굴에서는 표정이 걷혔다. 상황을 확인하자마자 청년 쪽으로, 정확히는 인형이 놓인 곳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니 청년이 인형에 관심을 두는 것이 당혹스러운 모양이었다.
“이것도 살 수 있나요?”
“아, 그건.”
“물론 파는 인형이겠지요?”
어떻게든 손에 넣고 싶다. 그것이 청년을 지배하는 생각이었다. 이곳에 쌓인 인형이라면 어느 것이라도 아름다웠지만, 그 전까지는 수준 높은 예술품으로 느껴졌을 뿐 이렇게 소유욕이 치밀지는 않았다. 유물이 된 사람을 너무도 닮아있기에 지금의 인형은 그에게 의미가 커진다. 단순한 인형이 아닌, 누군가의 재현으로. 잃은 사람에 대한 후회를 조금이나마 잊게 해줄 것으로.
이것을 본 이상, 다른 인형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다른 방식으로의 재현도 마찬가지였다. 인형사의 기술을, 무서우리만큼 정교한 작품을 알기에 더욱 집착하게 된다. 이렇게나 섬세하게 만든 인형을 꼭 손에 넣어서, 인형으로라도 그녀를 ─ 어느 정도의 금액을 제시해야 할지 빠르게 계산하던 청년은, 딱딱한 답변을 돌려받아야 했다.
“이건 바깥에 둔 인형과는 달라요. 의뢰를 받아 만든 것도 아니고요. 혹시 이 정도 연령으로 보이는 인형이 필요하다고 하면 따로 주문하시면 됩니다.”
“마스터한테 제대로 물으면 살 수 있을까요.”
“마스터 앞에서 말 꺼냈으면 바로 쫓겨났을걸요. 사람들 앞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아끼는 것인데.”
“공을 들인 인형이어선가요? 값은 충분히 지불할 수 있습니다만.”
“……이 얘기는 그만하죠. 마저 정리해야 하니 나가주시겠어요?”
“여기의 주인, 유명해지기 전에 위험인물 딱지가 붙었었던 것으로 아는데요. 그때는 적당히 넘어갔지만, 제대로 파헤치면 이 공방도 엎어야 하겠지요.”
가능한 무난하게, 눈에 띄지 않게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생각은 이미 흩어진 후였다. 인형에 대한 집착과 상황을 유리하게 끌어와야 한다는 마음이 그를 흔들었다.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얕은수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은근한 협박이 거슬렸는지, 소년은 챙기던 것을 내려놓고 청년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검은 눈이 깜빡임도 없이 한참을 바라보는 건 묘하게 섬뜩했다. 사람의 눈이 아니라 유리구슬을 보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소년의 입이 열렸다.
“시시한 이야기를 할까요.”
착 가라앉은 목소리에선 막 청년을 맞이할 때 같은 친절함이나 부드러움은 찾아볼 수 없다. 분위기가 기묘해진 것을 감지한 청년이 입을 뗐지만 어째서인지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갑자기 모든 것이 그를 짓눌렀다. 공기마저 무거워진 것 같아 숨이 막혔다.
“믿어도 되고 믿지 않아도 될, 인형 이야기 말입니다.”
청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천으로 덮인 인형이나 그 잔해 같은 것이 시야에 그득했다.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인형은, 보시다시피 꽤 고급 인형입니다. 보통 사람이 생각하는 것 이상의 발전도 가능하죠. 예를 들어, 과거에는 인형에 사람의 영혼을 이식하려는 시도도 있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그걸 이야기하기 위해선, 왜 인형에 영혼을 담으려 했는지를 먼저 설명해야겠죠. 모든 것은 한 소년에게서 시작됩니다.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썩 좋긴 했지만, 소년은 원래 그렇게 인형에 관심이 깊진 않았어요. 전쟁이 그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지요. 적군은 무시무시한 무기로 무장해, 그에 당한 사람들이 전부 영혼을 잃었거든요. 슬프게도 소년은 그런 공격에 대항하기엔 어리고 약한 존재였습니다.”
거기서 청년은 기시감을 느낀다. 인형사의 나라는 제 나라의 군대에 멸망했다. 화사한 도시는 잿빛으로 물들고, 사람은 거의 희생당해 죽음의 땅이 되었다. 성전을 내세우며 침공한 군대는 그곳에서 인간의 영혼마저 잔뜩 긁어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재료라던가 동력원이라던가, 쓰임은 알 수 없으나 자원을 확보하듯 끌어왔다는 것은 기억한다. 소년의 이야기는 높은 확률로 이곳의 주인, 인형사의 이야기이리라. 전장에서 겨우 살아남은 인형사가 상실로 망가져 괴상한 연구에 매달렸던 것일지도 모른다.
“인형을 만들어서 거기에 잃어버린 영혼을 담으려 했던 건가.”
“그렇다고 빼앗긴 영혼을 끌어올 순 없잖아요? 단서를 얻은 거예요.”
“어떤?”
“영혼을 빼앗긴 이들은 죽지는 않았으나 스스로 움직이지도 사고하지도 못했습니다. 인형 같은 존재가 되었죠. 소년의 친구 중 하나는, 반대로 회복불능의 부상을 입었고요. 절망 속에서 소년은 생각했을 겁니다. 빈 껍질이 된 몸에, 육신이 망가진 영혼을 넣는다면?”
기분 나쁜 생각이 머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청년은 그때 소년이었을 인형사의 선택을 알 것 같았다. 그가 왜 인형을 만드는 데 집착했는지도, 그의 인형이 왜 그렇게나 정교한 것인지도.
“그때부터 인형을 만들기 시작한 거죠?”
“그래요. 최초의 인형은, 친구의 모습을 본뜬 것. 절박했던 소년은 친구의 영혼을 인형에 이식했습니다. 그것으로 소년은 친구와 다시 함께할 수 있게 되었어요. 친구의 ‘몸’은 초기의 인형이라 지금만큼 정교하진 않지만요.”
소년은 청년과의 거리를 좁혀, 숨이 닿을 거리에 섰다. 조금 전과는 달리 그의 얼굴에는 기묘한 웃음이 걸려있었다. 어쩐지 부자연스러운 웃음에 움찔한 청년은 소년의 팔에서 수상쩍은 것을 발견해냈다. 인형의 관절 결합 부위를 연상시키는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소년이 말한 ‘친구’는, 어쩌면.
“그럼, 나머지 사람들은? 영혼을 잃은 자들은?”
“글쎄요, 어떻게 되었을까요?”
“왜 이 이야기를 시작했지?”
“여기가 그렇게 친절한 곳이 아니라는 걸 알려드리고 싶어서였죠. 인형사가 된 소년은 나머지 사람들도 포기하지 않았어요.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된 겁니다. 영혼이 없는 존재를 움직일 방법, 자아와 비슷한 것을 새길 방법을 생각하면서. 물론 그건, 인형의 발전으로 이어졌고요.”
“셰이 옵시디언이 위험인물로 찍혔던 이유를 알겠어. 기술을 발전시켜 인형을 마음대로 부리게 되는 걸 경계했던 거야. 인간에 가까울 정도로 정교한 인형이라 더 위협적이었겠지.”
그럼에도 이곳에서 계속 인형을 만들어내는 것은, 인형사의 ‘의심스러운 행동’이 실질적인 위협으로 번지지는 않았기 때문. 섬칫한 이야기로 겁을 주려 했다면 소년은 절반만 성공했다. 처음에야 분위기에 짓눌려 잠깐 공포를 느꼈으나, 청년은 이제 머리가 차가워졌다. 인형사가 광적인 연구에 매달렸건 그렇지 않건 그의 인형은 현 시점에선 아름다운 예술품일 뿐.
“실패했지만 말이야, 그렇지?”
인형사가 행동이 제한된 신세라는 것, 그의 위험행동이 특별히 보고된 적은 없다는 것, 망국의 생존자인 인형사가 정복자에 제대로 저항할 수 없다는 것. 그러한 사실이 청년에게 자신을 불어넣었다. 내주지 않는 것은 빼앗으면 된다. 따르지 않으면 짓밟으면 그만이다. 청년은 정복자의 웃음을 걸치고 인형에 손을 뻗었다. 소년의 이야기를, 인형사의 불행을, 절박함에 매달렸을 연구를 전부 비웃듯.
“그렇게 친절한 곳이 아니라고 했지요.”
청년의 손이 인형의 머리카락을 쓸기 직전이었다. 여전히 불손한 태도에 무어라 쏘아붙일 기세였던 청년은 기분 나쁜 소리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선반에 놓인 인형들이 크게 흔들리며 삐걱거렸다. 천을 덮어두었던 인형들은 어느새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무슨 장난질을. 신경질적인 말은 청년의 속에서 말라붙었다. 정면을 봐야 할 인형의 눈이 전부 청년에게로 향한 까닭이다.
다음 순간 청년에게 꽂힌 것은 고통에 찬 신음이었다. 팔짱을 낀 소년과 인형에 포위당한 청년은 입을 꾹 닫고 있는데, 수많은 사람의 신음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인형의 울음이었다. 열린 입에서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울음이었다. 제대로 된 단어조차 만들어지지 않는데, 여러 소리가 겹친 끔찍한 소음일 뿐인데, 청년에겐 그것만큼 공포스러운 게 없었다. 귀를 막아도 벗어날 수 없다. 뒷걸음질 치면 소리가 더욱 거세진다. 멈춰. 저걸 멈출 줄 알잖아. 공포에 짓눌려 도망치는 것조차 잊은 청년은 소년을 붙들고 거의 애원했다.
“글쎄, 나는 조수일 뿐인데.”
“그럼 마스터라도 불러서.”
제발, 여기서 해방시켜줘. 청년의 간절한 말에도 끔찍한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청년에게서 ‘시선’을 돌리는 인형도 없다. 모든 것이 청년을 노리고 있었다. 이대로는 미쳐버릴 거라고 생각한 때.
거짓말처럼 모든 것이 멈췄다.
인형은 더는 삐걱거리지 않았다. 유리구슬 같은 눈은 평범한 인형처럼 정면을 볼 뿐이다. 고요해진 방을 뛰쳐나가려던 청년은 문 쪽에서 누군가와 마주쳤다. 청년과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남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마도 이쪽이 인형사이리라. 그가 나타나며 모든 게 바로잡혔다는 사실이, 생각을 굳혔다.
“손님이 왔었나 보지.”
남자는 청년에게 계속 시선을 얹은 채 입을 뗐다. 착 가라앉은 목소리엔 피로가 묻은 듯했다. 청년이 무어라 변명하기도 전에 소년이 대신 답했다.
“그냥 쉬고 있었으면 해서 안 불렀어.”
“시끄러워서 제대로 쉴 수가 있어야지. 저 양반이 여길 이렇게 어지럽혔나?”
“맞아. 네가 제일 아끼는 걸 가져가겠다고 난리지 뭐야.”
“미친 새끼.”
인형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는, 엉망이 된 방을 뒤져 상자를 하나 찾아냈다. 다음은 청년에게 상자를 거칠게 넘기는 일이었다. 제법 묵직한 것을 기습적으로 안긴 탓에 청년은 하마터면 열어보기도 전에 떨어트릴 뻔했다.
“그걸 줄 테니 다음부턴 여기 오지 마.”
거친 목소리로 말한 인형사는 바로 나가라는 손짓을 한다.
“이건?”
“14-16세, 여성형 인형. 그쪽이 관심 보이던 것과 비슷하지. 받고 꺼지란 뜻이야.”
“아카데미아에서는 다음번에도 이곳의 인형을 주문할 텐데요.”
“그쪽을 다시 보고 싶지 않다고. 다른 사람을 보내든지.”
인형사의 목소리에는 그 이상의 말을 잘라내려는 냉랭함이 깃들어 있었다. 소란을 조용히 넘어가주는 것에 만족하고 공방을 떠나도 되련만, 청년은 괜한 오기가 치밀었다. 제 할 말만 하고 돌아서는 인형사의 등에 청년은 나긋한 목소리를 꽂았다.
“당신이 아낀다는 그 인형, 원래는 인형이 아니었죠?”
인형사의 걸음이 멈췄다. 바로 돌아보는 것이, 청년의 말에 동요한 모양이었다.
“죽은 사람을 재현해달라는 의뢰는 거절하지 않는다던데. 당신이 비슷한 일을 겪어서였던 건 아닌가요? 죽은 사람을 도저히 잊을 수 없어, 모든 힘을 쏟아 ‘그 사람’을 만들었다거나.”
“꺼지라고 했지.”
“그게 아니라면.”
사실은 그 소녀도, 당신의 여러 주변인이 그랬듯 영혼을 잃은 ‘진짜’ 사람이었거나. 다음 말은 꺼내지 못했다. 인형사가 집어던진 연장이 바로 청년의 머리 옆으로 날아들었기 때문이었다. 아슬아슬하게 피한 후 청년은 깨달았다. 조금만 더 노골적인 말을 꺼냈다면, 아마 인형사는 ‘실수로라도’ 그를 처리하려 들었으리란 것을. 인형사의 단정한 얼굴에는 짙은 경멸이 드리워져 있었다. 묘하게도 그 모습이 누군가를 연상시켰다. 당장 떠오르지는 않지만, 청년이 언젠가 마주쳤던 사람을.
“아카데미아에서 맡긴 인형을 다 부숴버리기 전에 꺼져.”
희미한 기억에서 답을 찾기도 전에, 인형사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것이 마지막 경고임을 청년은 직감했다. 이 이상 그를 자극한다면 임무마저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것이다. 혹은, 그가 인형을 조종해 조금 전과 같은 공포스러운 상황에 빠트릴지도 모른다. 청년은 인형사가 내준 것만 챙긴 채 도망치듯 공방을 빠져나갔다. 그 뒷모습을 한참이나 눈에 담던 인형사는 공방이 완전히 고요해지고서야 소녀에게로 향했다.
한 발짝, 한 발짝. 소녀와의 거리가 좁혀질수록 인형사의 감정은 복잡해진다. 소녀가 그에게 어떤 존재인지 생각하면 당연한 일. 그녀는, 그의 하나뿐인 동생은 수년 전 모든 것이 멎었다. 기능정지한 장치처럼, 움직임도 성장도 없다. 영혼이 잠들었다고 했다. 동생을 납치했던 침략자의 수작이 분명하지만 인형사는 아직껏 동생을 깨울 방법을 알지 못한다. 무방비해진 동생을 깊숙한 곳에 숨겨 세상으로부터 보호할 뿐.
지배층의 최심부에 침투하면 단서를 얻을 수 있으리라. 무엇이 동생을 잠들게 했고, 침략군이 어떻게 모두의 영혼을 앗아갔는지. 인형사가 깊은 적개심을 숨기고 정복자 측에 인형을 납품하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것이야말로 상부에 손을 뻗치기에 가장 편리한 길이었으니. 동생 앞에 선 인형사는 답을 돌려줄 수 없는 사람에게 말을 건넸다.
“기술은 점점 발전하고 있어. 언젠가는 아카데미아도 무너뜨릴 수 있겠지.”
지배층에 납품하는 인형에는 인형사의 의식이 조금씩 들어가 있다. 그 대가는 제 목숨을 깎아내는 것이었으나, 인형사에게 후회란 없었다. 어차피 수년 전부터 이 삶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영혼을 빼앗긴 이들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망가뜨린 침략자에 복수하기 위해 바치기로 결심했다. 고위 간부, 귀족, 자본가. 그의 인형을 사치품으로 들이는 상류층. 이 나라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자들은 언젠가, 인형사의 작품에 짓밟힐 것이다. 자의로 움직일 수 있는 인형을 일시에 조종해 그들을 끌어내리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모두 자유로워진다. 영혼을 빼앗긴 동지들도, 인형의 몸을 쓰고 있는 친구도, 수년째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동생도. 저주 같은 불행에서 벗어나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 인형사는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이들을 향해 선언한다.
“너희는, 예전처럼 행복하게 할게.”
맹세하겠다는 듯, 인형사는 동생의 왼손을 들어 살짝 입을 맞추었다. 손등에서는 산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데, 동생의 눈은 끝까지 그를 비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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