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슌ts] 미완의 연구

2015. 5. 16. 22:42 from 02

 

  사내는 여자에게 제 패를 보였다. 겨우 완성한 것은 아슬아슬하게 여자의 것을 앞섰다. 달갑잖은 패배였지만 여자는 깨끗이 인정했다. 사내가 마지막에 뒤집긴 했으나 게임은 팽팽했다. 조금만 집중력이 흐트러졌으면 패배하는 건 그 쪽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에게 게임을 가르쳐준 것도 그리 오래지 않았다. 처음에는 게임의 이름조차 몰랐던 여자였지만 이제는 종종 저를 뛰어넘을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여자는 타고나기를 영민했으며 무엇이든 집중하여 빨리 배우는 편이었다.

  전쟁을 앞둔 전사들의 모습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평화로웠지만, 사내는 이런 시간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전쟁이란 언제 어떤 불행이 닥칠지 모를 위험 그 자체인 것이다. 긴장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 위험에 뛰어들어야 할 그들에게는 휴식도 위안도 필요했다. 아직 어린 나이의 그들을 선택받은 전사라 전장에 이끄는 것부터가 잘못되었다 해도 만일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그 정도는 마땅히 베풀어야 했다. 그들이 의무에 질식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여자는 다른 전사들을 동료로는 인식하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그럼에도 유독 섞이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함께하고 있음에도 언제나 그들과는 약간 떨어져있는 것 같은 느낌. 그러나 그것은 그녀의 어쩔 수 없는 성향 때문이리라고 그는 생각하여 특별히 어울리기를 강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애초에 그런 인간이니까. 대신 그녀는 종종 그와 시간을 보냈다. <전사>인 그녀가 <지휘관>인 사내와 함께하는 것은 이질적인 풍경이었으나 그녀는 이쪽을 불편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았다.

  피차 기대하는 것이 없는 관계여서인가.

  기대하지 않는 만큼 잃을 것도 없다. 요구하는 것도 없다. 언제나 일정 거리를 유지한다. 그것은 썩 편한 방식이라고 사내는 생각한다. 서로에게 빚지는 것 없는 관계인 것이다.

  어쨌든 그녀는 전쟁을 경험한 당사자이고 그것은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삶에 영향을 미쳤다. 사내의 일견 냉혹한 계산에 동조했던 자는 그녀가 처음이었다. 그 이전에, 목적을 위해서 타인에게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다. 사내가 전사들을 모으기 위해 비정한 행동을 보였던 것처럼. 전쟁의 참혹함을 안다는 것. 비정한 논리를 경험했다는 것. 이것은 우습게도, 성향을 따지면 정반대에 가까운 그들에게 접점을 만들어주었다.

  여자는, 쿠로사키 슌이라는 인간은, 그와 마찬가지로 이해받기 어려운 인간이었다. 신념은 확고하며 그를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그것은 분명 그와 닮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와는 결정적으로 달랐다. 그녀는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쉬이 납득하지 못할 행동을 거리낌 없이 저지르면서도 굳이 그에 대해 해명하려 들지 않았다. 그녀에 대해 사람들이 품은 오해는 대개 그런 데서 시작한 것이리라. 명분을 내세우고 교묘하게 설득하는 그와는 다르다.

  그래서일까. 언젠가부터 그녀에 대해 알고 싶다는 욕망이 강하게 들었다. 파고들고 싶다. 그녀에 대해 알고 싶다. 그 욕망의 근원을 그는 헤아릴 수 없다. 그녀에 대해 알면 알수록 자신이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라 스스로를 납득시킬 뿐.

  공동의 목적을 위해 협력한 후 그들은 표면적으로 협력자라는 동등한 위치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둘은 태생이 포식자. 서로 우위를 점하려 들었다. 특히 그는 그에 몰두했었다. 그래서 그는 감시를 거듭하고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섬세하게 파고들었다. 아는 만큼 이해하고, 이해하는 만큼 틀어쥐기 쉬울 테니까. 하지만 그녀는 의외로 복잡한 인간이었고 그녀를 정의하는 것은 자꾸만 미뤄지고 있었다. 그들이 <전사><지휘관>이 된 지금까지도.

  사내는 여자에게로 시선을 향한다. 게임이 끝나 흥미가 사라진 탓인지 여자는 화병의 꽃에 시선을 돌린 채였다.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탐스러운 꽃을 쥔다. 그러나 이내 조화 특유의 이질적인 감각에 실망한 듯 손을 뗀다. 그 모습을 한 편의 영상처럼 지켜보던 사내는 입을 뗐다. 여자가 긴장을 푼 지금이야말로 그녀를 보다 명확하게 파악할 기회라 기대하고서.

  “쿠로사키.”

  “뭐지.”

  물을 머금은 적 없는 모래처럼, 지극히 건조한 목소리였다.

  “아카데미아를 물리치면, 아카바 레오를 무너뜨리면 무엇을 할 생각이지?”

  그러나 입에서 나온 것은 본래 찌르려던 핵심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괴상한 질문이었다. 느닷없이 날아든 엉뚱한 질문에 여자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야, 우리 세계로 돌아가서 복구에 힘쓰는 거지.”

  “그것뿐?”

  “그러면 그 외에 다른 게 필요하다는 거냐.”

  “좀 더 개인적인 목적은 없나?”

  “개인적인 목적?”

  여자는 그 말을 곱씹어보았다. 사내가 말을 던진 의도를 헤아릴 수 없다. 지금껏 저를 이끌었던 것은 세계의 불행과 그 불행으로부터 모두를 구해야 한다는 목적뿐이었다. 함께 이 세계로 온 친우보다는 나을지 몰라도, 그녀 역시 그 의무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아니. 레지스탕스라면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잃어버린 것이 너무도 많아, 더 잃지 않기 위해, 고통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승리할 경우 최우선의 목표는 당연히 세계의 복구.

  개인적인 목적이라.

  사랑하는 동생과 친우의 행복은 상상해본 적 있다. 동지들이 본래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그리며 지독한 절망에서 버티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은. 모두가 행복을 되찾은 세계 속에 자신의 모습은 없다. 그려본 적도, 생각해본 적도 없다.

  “그런 건 없다.”

  “유감이군. 너는 좀 더 자신에 집중할 필요가 있어. 다수의 행복도 중요하지만 결과적으로 가장 소중한 건 너 자신의 행복이지. 하지만 너는 그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군.”

  “쓸데없는 참견이야.”

  “……그런가.”

  사내의 목소리는 어딘지 감상적이었지만 여자는 그 미묘한 차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녀는 예민한 플레이어였지만 타인의 사소한 변화를 놓치는 때가 종종 있었다. 매순간 제게 중요한 것에 모든 정신을 집중시키기 때문이리라. 그럼에도 사내는 도망치는 것처럼 여자에게 새로운 게임을 재촉한다. 여자의 눈이, 맹금을 연상시키는 금빛 눈이 승부욕에 불탔다.

  게임이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여자의 차례. 여자는 사내에게 제 패를 보였다. 단숨에 승부를 뒤집을, 최상의 패였다. 사내는 쓰게 웃고 패배를 인정했다. 그러나 여자는 승리했음에도 무언가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마뜩찮은 기색을 숨기지 않은 채 사내에게 쏘아붙인다.

  “집중하지 않고 있었군. 아카바 레이지.”

  “아아.”

  “봐주지 말라고, 말했을 텐데.”

  쏟아지는 햇볕 속, 눈이라도 부신지 여자가 눈을 깜빡였다. 그 모습을 한참이고 바라보던 사내는 천천히 입을 뗐다.

  “아니. 네 실력이 뛰어난 거다.”

  ─ 일순 눈이 부셔서, 사내는 눈을 감았다.

 

*


  그 이후 거듭된 게임에서, 여자와 그는 비등비등한 실력을 보였다. 승패 또한 비슷비슷했다. 여자가 돌아간 후 혼자 남은 사내는 여자와의 게임을, 그리고 그들 사이에 오갔던 대화를 하나하나 되새겨보았다. 여느 때처럼 적절히 긴장하고 적절히 즐거운, 나쁘지 않은 시간이었음은 분명하나, 딱 하나 너무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여자의 말. 그녀가 남긴 말이 칼날이 되어 자신을 찌르는 것 같았다. 견딜 수가 없어, 사내는 수첩을 폈다. 그리고 홀린 것처럼 쓰기 시작했다.

  「쿠로사키 슌에게는

  그것은 이전까지의 관찰 결과와 이번의 대화를 통해 얻어낸 결론. 그러나 사내는 그에서 가로막힌다. 쿠로사키 슌에게는. 그는 한참이고 그 주어를 바라보다가 그 장을 찢어버리고 문장을 새로 썼다.

  「레지스탕스에게는 자신이 결여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다음 문장을 쓰던 손이 멈추었다. 펜이 손에서 스르륵 떨어졌다. 다음 문장은 차마 쓸 수 없었다.

  그때 그는 직감한 것이다. 그녀는 일찍 지게 될 것이라고.

  그녀에 대해 파고들었던 것은, 슬프게도 그 날이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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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현소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