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지+유야] 부재

2016. 1. 7. 00:00 from 02

 

  꿈을 꾸었다. 여태껏 수없이 반복해온, 과거의 한 장면. 꿈속에서 소년은 언제나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공간에 붙박인 무력한 관찰자일 뿐이었다. 마치 바닥에서 뿌리가 솟아나 그 발을 휘감은 양. 소년은 제 앞에 선 사내의 뒷모습을 본다. 사내는 천천히 나아가 반쯤 열린 문으로 향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마침내 문 너머로 향한 사내는 그제야 돌아서 여전히 문 바깥에 선 소년을 보았다. 안경 너머의 보랏빛 눈과 소년의 붉은 눈이 마주쳤다. 사내는 입을 열었다.

  「미래를 ─ 」

  소리가 묻히며 시야가 밝아졌다. 사내는 문을 닫았다.

  싫은 꿈이었다.

 

*

 

  세상을 삼키려는 괴물이 있었다. 모든 것을 손에 넣으려던 그의 음모는 다행히 실현되기 전 밝혀져, 세상을 구하기 위해 나선 전사들이 처절하게 싸워 그를 쓰러트렸다. 치열한 전쟁이 끝나고, 무사히 돌아온 8인의 전사는 세상을 구한 영웅으로 칭송받게 되었다. 괴물의 마수는 죄 없는 주변에 뻗쳐 이미 많은 희생자를 낳았으나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 이상의 피해를 막고 평화를 지켜낸 것만으로도 영웅들에게 감사했다.

  전쟁이란 쇼크를 견뎌낸 세상은 그 나름의 방식으로 복구를 시작했고 전쟁이 낳은 상처도 조금씩 아물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세상을 휩쓴 고통이 비교적 빠르게 허물어질 수 있었던 것은 영웅들이 최악의 사태를 막았기 때문이고, 돌아와서는 피해자들의 희망이 되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들 8인은 무사히 귀향한 후 몇 번이고 희생자를 위로했다. 그들은 영웅인 동시에 전쟁에 짓밟힌 이들의 위안이었다.

  8인의 영웅 중 하나로 주목받는 소년은 TV에서 제 모습이 흘러나오는 것을 무덤덤하게 바라보았다. 세상을 구한 영웅들 중에서도 중심이 되었던 소년에 대해서는 관심이 집중되고 있었고 그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이미 수없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감회를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끝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하루하루 자신에 대한 수많은 찬사와 시시콜콜한 정보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는 것은 그리 흥미로운 일은 아니었다.

  다만 소년이 그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 것은, 혹여 새로운 정보가 흘러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8명의 영웅, 랜서즈에 대해서. 그러나 소년의 기대가 무색하게, TV에서는 뻔한 말을 쏟아낼 뿐이었다. 세상을 위해 싸우고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모두 무사 생환한 영웅이라고.

  우스운 말이다. 영웅들이 전원 무사 생환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처음 전쟁을 위해 떠난 것은 아홉 명이었으니. 다만 모두가 아홉 번째 영웅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그가 랜서즈에 이름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리더로서 멤버들을 움직일 뿐 제 흔적을 남기지 않았던 그는 이런 결말마저 생각했던 것일까. 소년은 오래 전의 신문 기사를 꺼냈다. 사라진 영웅이 사진 속에서 웃고 있었다. 아카바 레이지. 소년은 사진 아래에 적힌 이름을 손가락으로 덧그렸다.

  아카바 레이지가 사라진 지 반 년이 흘렀다. 그가 군림하던 회사, 레오 코퍼레이션은 표면적으로는 아무런 문제도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라는 사람이 없었던 것처럼, 그의 공백을 삼키고. 회사에서는 사장이었던 그에 대한 언급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가 맡던 일은 회사의 중역이 대행하고 있을 것이다. 세계적인 대기업인 만큼 회사는 그의 부재만으로는 쉽게 휘청거리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 회사 내부인이라도, 그의 부재조차 알지 못할 것이다.

  그의 행방에 대해 아는 자는 단 하나, 그와 마지막까지 함께했던 소년뿐. 그러나 소년은 그에 대해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했다. 꿈처럼 비현실적인 종말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걸 입에 담는 순간 그의 실종이 명백해지기 때문에.

  별달리 좋은 감정을 품었던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소년에게는 언제나 껄끄러운 사람이었고 마지막까지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의 방식은 때로 소년의 신념을 정면으로 부정했으며, 그의 행보는 소년의 역린까지 건드리곤 했다. 그가 언제나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는 사람이라는 것은 소년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었으나 그 과정은 소년이 용납할 수 없는 영역일 때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다투었다. 덤벼들었다. 결과는 언제나 소년의 패배였다. 그는 지나치게 강했고 소년이 도달할 수 없는 영역에 있었다.

  그럼에도 소년은 그의 종말이 껄끄러웠다. 그런 방식으로 사라지길 바라진 않았다. 그라면 무사히 돌아가 시민 앞에 당당히 연설할 것이라 생각했다. 세상을 삼키려던 괴물을 저지했노라고. 나의 전사들이 전쟁을 끝냈다고.

  아카바 레이지는, 그의 종말은.

  순간, 소년은 아래에서부터 치미는 감정에 집을 나섰다. 누구도 돌아보지 않고 정면에만 시선을 둔 채, 한 걸음, 한 걸음. 목적지에만 집중했다. 마침내 소년이 멈춘 곳은 레오 코퍼레이션 본사였다.

  “아카바 레이지를 만나야 해요.”

  도착하자마자 소년은 프런트에서 억지를 부렸다. 그가 사라지는 것을 제 눈으로 똑똑히 보고서도.

  “사장님은 바쁘십니다.”

  그의 부재를 아는 상부에서 내린 방침일 것이다. 그에 대한 요청은 전부 거절하라는. 그들의 얼굴에 곤란함이 스치는 것을 보면서도 소년은 재차 요구했고, 쫓겨나다시피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소년이 하는 수 없이 회사를 떠나려 할 때였다. 문이 열리고, 익숙한 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카키 유우야였죠? 조금 얘기를 하고 싶군요.”

  위압감이 느껴지는 목소리에 직원이 고개를 숙였다. 소년의 시선 또한 말을 건넨 이에게 멎었다. 설마 그녀가 친히 나타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회사의 중역이자, 그의 어머니. 그가 사라진 후로 그 업무를 대행하고 있는 이라면 아마도 그녀일 것이다. 본디 경영에 능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녀가 왜 나타난 것인가. 그를 찾았기 때문에? 얼어붙은 소년을 잡아끌며 여자는 앞장섰다. 소년은 하릴없이 그녀의 뒤를 쫓았다.

  여자가 소년을 이끌고 들어선 곳은 사장실이었다. 내부는 정갈했다. 고풍스러운 가구로 가꾸어진 방은 주인의 취향인지 전체적으로 화려하기보단 세련된 인상을 주었다. 책장에는 소년 또한 들어본 유명한 프로젝트에 대한 서류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으며 개중에는 랜서즈 선발 프로젝트의 초안도 있었다. 벽에 붙여진 것은 랜서즈 선발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겼던 대회의 포스터. 어디에서나 그의 흔적이 묻어나오는 공간에, 소년은 침을 삼켰다. 사정을 몰랐다면 소년은 그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뿐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만큼 내부의 모든 것이 그의 공간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레이지를 찾더군요.”

  여자는 소년에게 자리를 내어주며 말했다. 소년의 얼굴이 굳어졌다. 자신이 벌인 일임에도 타인의 입으로 그것을 듣는 것은 껄끄러웠다. 그것이 어디에서 출발한 행동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만날 수 없음을 알면서도 굳이 그를 찾은 것은,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그의 납득할 수 없는 마지막을.

  “유감이지만 만날 수 없습니다.”

  아들의 자리에 앉은 여자는 표정 없이 말했다. 그러나 소년은 그 뒤에 숨은 말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으리라는 것을. 돌아올 수 있다면 진즉에 돌아왔을 것이다. 지금까지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은.

  “레오 코퍼레이션 내부에는 그 사람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고 있나요?”

  “이곳에선 어릴 때부터 바쁘게 달려왔던 젊은 사장에게 휴가가 주어진 거라 생각하고 있죠.”

  “휴가요?”

  여자는 눈을 내리깔았다. 푸른 눈에 설핏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설명하기 어려운 일에 대해서는 적당한 이름을 붙이는 게 좋답니다, 사카키 군.”

  “하지만.”

  “그렇다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아카바 레이지의 공백을.”

  소년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레오 코퍼레이션에서 아카바 레이지가 갖는 가치와 상징성은 결코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가 돌아올 수 없다고 한들, 그것을 단숨에 도려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성급히 공언될 경우 닥칠 쇼크를 생각하고 그녀는 그의 공백을 끌어안는 것을 택했으리라. 그녀는 능숙한 사람이었고 회사를 지켜낼 의무가 있었으니까.

  “언제까지 그렇게…….”

  “물려받을 사람을 키워낼 때까지죠.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그때부터는 레이지도 편히 퇴장할 수 있어요.”

전대 사장으로서. 그의 직책에 따라붙게 된 수식어가 처연했다.

  “혹시 전부터 생각하셨나요?”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이요? 물론이죠.”

  향하는 곳이 전장인 이상 돌아오지 못한다는 가능성이야 당연히 있었다. 그 불행한 가능성을 각오한 건 전장으로 향한 이들만은 아니었다. 그 주변인 또한 그 고통스러운 가능성을 헤아려야만 했다.

  “행동에는 언제나 그에 대한 각오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버려야 하는 것이 있고 잃을 수 있는 것도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그걸 각오하지 않는다면 무엇도 이룰 수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각오해야만 했고요.”

  여자는 잠깐 말을 끊더니 눈을 감으며 말을 이었다.

  “랜서즈가 돌아올 때 그가 없는 것을 보고 직감했죠.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자신의 일을 회피할 사람은 아니거든요.”

  그로부터 반 년. 여자의 예언대로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오기는커녕 소식 한 줄조차 없었다. 그 참담한 결말에도 그녀의 얼굴은 담담했다. 이미 감정을 저 바닥에서부터 전부 긁어낸 것처럼. 어쩌면 여자는 아들의 종말을 직감한 때부터 한 가닥 기대조차 전부 태워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기대가 바스러진 곳엔 책임이 남았을 터. 여자는 자신의 말이 잔향조차 흩어졌을 때 다시 입을 열었다. 묵직한 공기를 그녀의 목소리가 갈랐다.

  “당신과는 전부터 개인적으로 접촉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죠. 일부러 일을 만들어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았고요.”

  “개인적으로요?”

  뜻밖의 말에 소년의 눈이 둥그레졌다. 여자는 소년의 긴장을 눈치챈 것인지 웃으며 답했다.

  “첫째로는 랜서즈로 싸워준 것에 대해서 레오 코퍼레이션 측에서 감사를 표하기 위해서, 둘째로는 궁금한 것이 있어서였어요. 이렇게 만나게 되었으니 마침 잘 되었군요.”

  “궁금한 것이라면…….”

  불길한 예감이 소년의 내부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리고 결국 그것은 현실로 돌아왔다.

  “알고 있죠? 마지막을.”

  소년의 숨이 멎었다.

 

*

 

  아카바 레이지가 사라진 지 반 년이 흘렀다. 처음에는 선명하게 그려낼 수 있었던 그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에 대한 인상도 감정도 차츰 흐릿해지고 있음을 소년은 느꼈다. 그가 남긴 공백이 아무리 크다 한들, 언젠가 세상은 그의 부재를 삼키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세상은, 소년이 살아가는 세상은 어디든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소년은 그것이 숨이 막혔다. 모습은 감추었을지라도 그는 이곳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는 것이다.

  아마 아카바 레이지가 자연스럽게 퇴장하고 그의 공백을 새로운 인재가 채운다 해도 그가 남긴 흔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일상의 한 부분으로 녹아들어 모든 시민의 삶의 일부를 장식할 것이다. 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나 어디에나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그 아이러니함에 소년은 조소했다. 그는 이런 미래를 헤아리고서 그런 종말을 택했던 것일까.

  그러나 더욱 우스운 건 소년 자신이었다. 그의 흔적이 남은 회사로 향해 그를 찾았으면서, 결국은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여자가 던진 질문을 견딜 수 없었던 탓이다.

  [알고 있죠? 마지막을.]

  생략된 말이 무엇인지 소년이 모를 리가 없었다. 아들의 종말에 대해 묻고 있는 것이다. 소년의 얼굴이 일순 하얗게 질렸고 죽음처럼 긴 침묵의 끝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 순간조차 여자의 푸른 눈은 소년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 저는…….]

  [힘들다면 말하지 않아도 좋아요.]

  겨우 입을 연 소년에게 여자는 자비를 베푸는 양 부드럽게 말했다.

  [죄송해요. 제대로 볼 수 없었어요.]

  그 다음에 어떤 대화가 이어졌는지 소년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그녀가 던진 질문이 말 그대로 쇼크가 되어 소년을 질식시켰기 때문이다. 문제로부터 도피하는 제 모습이 한심하면서도 차마 그대로 돌파할 수가 없었다. 확실한 것은 여자가 그 이상 그에 대해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자는 오래지 않아 소년을 놓아주었고, 소년은 회사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보지 못했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소년은 유일하게, 그의 종말을 지켜본 사람이었으니까. 소년은 고향에 돌아온 후 그가 돌아오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달은 때부터 수없이 그 날의 꿈을 꿨다. 익숙하고 기분 나쁜 꿈. 꿈속의 그는 소년을 돌아보지 않고 열린 문 너머로 향했다. 소년은 문 바깥에 남겨둔 채로. 두 사람이 문을 사이에 두고 떨어지게 되어서야, 그는 소년을 돌아보고서 꼭 유언처럼 말하는 것이다.

  [미래를 ]

  뒷말을 듣기 전에 굉음이 공간을 덮치고 문이 닫혔다. 때문에 흩어진 말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의 말은 소음이 삼켰으며 그 자신은 영영 돌아올 수 없게 되었으므로.

  그런 꿈을 꾸고 또 꾸었다. 과거의 기억을 그대로 담아낸 꿈에서 그는 지금의 부재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생생했다. 그래서 소년은 그의 부재가 더욱 낯설었고 더욱 불편했다. 게다가 그런 방식의 종말이라니. 그에게 남은 감정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니라 해도, 소년은 그가 좀 더 나은 결말을 맞길 바랐다. 어려서부터 괴물에 맞서 싸우는 것만 생각하고 모든 것을 짊어진 채 싸웠던 사람이 겨우 그렇게 사라지는 것을, 소년은 용납하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자신이 일궈낸 평화의 보상이라도 받았으면 했다.

  그러나 그는 보람도 없이 타지에서 사라졌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방식으로, 소년 외엔 누구도 지켜보지 못한 종말을 선택하고서. 당신은 무엇을 위해? 소년은 때로 꿈속의 그에게 물었다. 물론 몇 번이고 물은들 그는 답하지 않는다. 아니, 답을 한들 그것이 의미가 있을까. 그는 결국 소년이 빚어낸 꿈속의 환상에 불과한 것을. 묻는다면 그가 사라지기 전이어야 했다. 그가 그 길을 선택하기 전이여야 했다. 전부, 소년이 놓쳐버린 시점이었다.

  전쟁이 끝나고도 그는 바삐 움직였다. 적의 본거지를 파헤쳐 전쟁이 낳은 피해를 수복할 방도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가 수뇌부를 심문하고 적들이 남긴 주요 정보를 해석한 덕분에 대부분의 포로가 풀려나고 관련된 이들을 색출하는 등 많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가 바라는 것은 단순한 복구가 아니라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막는 것이었으므로. 그러기 위해서는 전쟁의 빌미와 수단을 틀어막고 다시는 전쟁을 일으킬 수 없도록 완벽하게 통제해야만 했다.

  때문에, 상황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도 그는 미래의 재앙을 통제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 헤맸다. 전사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마쳤을 때까지도. 마침내 그와 8인의 전사들이 귀환하기로 한 날이었다. 약속한 시간에 모두 약속 장소로 모였으나, 단 하나, 리더만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마음에 걸렸던 소년은 그를 찾겠다고 자처하고 의심 가는 곳으로 향했다. 괴물의 본거지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 세상을 삼키기 위한 장치가 그득한 방이었다.

  다행히 소년은 어렵잖게 그를 찾아낼 수 있었다.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은 것인지, 그는 미동조차 없이 한껏 집중하고 있었던 것일까. 기척을 숨기지 않았음에도 그는 시선을 한쪽에 고정한 채 돌아보는 일이 없었다. 석상처럼 꼼짝 않는 모습에 문득 호기심이 일어 소년은 그에게로 걸었다. 마침내 그의 곁에 섰을 때 소년은 그가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 알아차렸다. 거대한 문. 반쯤 열린 문 틈새로는 눈부신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차원의 문이다.]

  그는 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혼잣말처럼 흘러나온 것이었으나, 그것이 자신에게 날아든 말이라는 것을 소년은 알았다.

  [이번 같은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이 문을 닫아야 해. 아마도, 저 바깥에서.]

  그는 소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안경 너머의 보랏빛 눈이 차게 번득였다. 소년은 그 날카로운 눈에 제 모든 것이 낱낱이 파헤쳐지는 것 같아 공연히 움찔했다.

  [하지만 누가?]

  다음 순간, 소년은 그의 얼굴에 희미하게 비치는 웃음을 보았다. 그에 의문을 품기도 전에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반쯤 열린 문을 향해, 조금씩, 조금씩.

  [아카바 레이지?]

  이 이후는 수없이 반복된 꿈과 같았다. 그는 그대로 문 너머의 공간으로 걸어갔고, 문을 닫았다. 그것이 작별이었다.

  소년은 눈을 감아 기억을 흩어버리고 다시 눈을 떴다. 그가 떠나기 전 야심차게 준비했던 프로젝트에 대한 소식이 시계탑의 TV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소년은 한동안 영상을 멀거니 바라보다 화면 가득 그의 사진이 비치는 순간, 저도 모르게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

 

  시간이 갈수록 그의 부재는 당연해졌다. 그가 추진하던 프로젝트는 그의 이름을 단 채 훌륭하게 진행되었지만 사람들은 어느새 그가 보이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다. 그의 종말을 껄끄러워하던 소년도 가끔 그 결말을 곱씹을 뿐, 굳이 그에 대해 파헤치려 들지 않았다. 돌아오지 않는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 사람. 소년은 언제까지나 그가 사라진 시간에 멈춰있을 수 없었다. 소년에게는 소년의 오늘이 있고 내일이 있었으므로.

  그렇게 영웅은 시간 속에 묻히게 되었으나, 소년의 꿈에서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소년이 그를 잊을 때쯤이면 귀신같이 꿈에 나타나 질리도록 본 과거의 풍경을, 자신의 종말을 다시 보여주는 것이다. 소년은 되돌릴 수 없는 그의 종말을 전과는 달리 무덤덤하게 지켜보았으나, 단 하나, 그의 마지막 말은 집요하게 파헤쳤다. 어차피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유언처럼 남긴 말이 무엇이었는지, 그것이라도 듣고 싶었다.

  그가 사라진 후 쇼크라도 받은 양 머릿속에서 지워진 말. 꿈속에서는 아예 소음에 묻혀 들을 수도 없게 된 말.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허망하게 흩어지곤 마는 그의 유언을 온전하게 듣게 된 것은, 그가 사라진 지 1년하고도 석 달이 지났을 때였다.

  꿈을 꾸었다. 지독하게 익숙한 꿈이었다. 여느 때처럼 무력한 관찰자일 뿐인 소년은 제 앞에 선 사내의 뒷모습을 본다. 사내는 망설임 없이 나아가 열린 문 너머로 향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마침내 문 너머에 닿은 사내는 그제야 돌아서 문 바깥에 붙박인 소년을 보았다. 안경 너머의 보랏빛 눈과 소년의 붉은 눈이 서로를 비추었다. 얼마간의 침묵이 흐르고, 사내는 마지막 인사를 남기려는 양 입을 열었다.

  「미래를 ─ 」

  여느 때와 같은 순간이지만 이번만은 놓칠 수 없었다. 이번만은 들어야 했다. 소년은 이번에야말로 집중하기로 했다. 그의 마지막 말을 듣기 위해서. 갈망이 닿은 것일까. 문이 닫히기 직전 그의 마지막 말이 소년에게 파고들었다.

  「부탁하지.

  아아, 역시. 소년은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싫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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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현소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