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그렇게 언성을 높여 화낼 수 있는 사람일 줄은 몰랐다. 그 전까지의 네가 모든 것을 조용히 삼켰기 때문이었다. 절망을 감내하고 분노를 삭여 또렷한 증오만을 적에게 향했기 때문이었다. 폭발적인 감정을 삼킨 만큼 스스로를 벼린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네가 화를 내는 것은 무척이나 놀라운 일이었다. 짝짝짝. 무미건조한 박수로 이 놀라운 광경에 감탄을 표하자, 네 입매가 한껏 일그러졌다. 거듭 쌓여온 분노는 통제장치를 잃자마자 폭발적으로 쏟아져, 네 가무잡잡한 얼굴마저 발갛게 물들였다.
“감격스럽네. 이런 귀중한 광경을 보게 되다니.”
부러 감정을 담지 않은 목소리에, 너는 사납게 달려들어 목을 졸라왔다. 설핏, 너의 눈에서 살의를 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건, 몹시 진귀한데. 고통 속에서도 입꼬리를 올렸던 것은 기뻤기 때문이었다.
쉬지 않고 토해내는 너의 말은 짐승의 울음처럼 거칠어 무엇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니. 파헤칠 필요가 있을까. 지금껏 너와 같은 이들은 몇 명이고 봐왔다. 감당할 수 없는 분노에 사로잡혀 방향을 잡지 못하는 이들. 그들이 쏟아내는 말은 고작 응어리진 감정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조차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을, 정제되지 않은 감정을 그저 토해내는 것이 전부인 것이다. 너 역시 그러해서 너의 말은 순서 없이, 주제도 없이 허공을 떠돌다 흩어졌을 뿐이다.
아무것도 해하지 못하고.
고통 속에 시야가 차츰 흐려졌다. 살의를 품은 만큼, 이번의 너는 진심이었던 것이다. 처음으로 눈앞의 사람을 진짜 죽이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너는 여전히 나약하여 마지막까지 그 살의를 가져가진 못했다. 목을 조르던 손이 서서히 풀렸다.
“왜, 죽이지 그랬어?”
겨우 몸을 추스르자마자 물었다.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목소리는 희미했으나, 너는 분명히 알아들은 것 같았다.
“너는, 그럴 가치도 없어.”
“그럴 수 없는 게 아니라?”
네가 주먹을 꽉 쥐는 게 보였다. 정곡을 찔린 것이리라.
네가 처음으로 언성을 높여 화를 내고, 심지어 덤벼들기까지 한 이유는 분명했다. 네가 품고 있던 유일한 희망마저 짓밟혔기 때문이었다. 모든 희망적인 가능성이 말라붙었기 때문이다. 기댈 것마저 사라졌다.
그 극도의 절망 앞에서, 너는 어떻게 움직일까.
너의 모든 것을 빼앗은 것은 그것 때문이었다. 다른 목적은 없었다. 바로 네 눈앞에서, 궁핍하기 짝이 없는 네게 마지막으로 남은 것마저 탐욕스레 삼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유쾌한 일이었다. 심지어 너는 이전에 보지 못했던 모습마저 보여주지 않았던가.
“어정쩡하게 덤벼들지 마. 태도는 확실히 해야지.”
그러나 오롯이 만족할 수 없는 것은 네 진귀한 행동이 중간에 멈춰버렸기 때문이었다. 너의 나약함에, 혹은 두려움에 가로막혀 봉오리만 맺고 져버렸기 때문이다.
“완벽히 복종하거나, 철저히 저항하거나.”
너는 입술을 깨물었으나, 입을 열지는 못했다.
“전자라면 우리의 충실한 백성이 되어 연명할 테고 후자라면 저항군의 이름으로 지겠지. 어느 쪽을 원해, 레지스탕스씨?”
네 입은 여전히 굳게 닫혀있었다. 너는 언제나 그렇게 고뇌할 뿐 나아가지 못했다.
“적당히 착하게, 혹은 적당히 반항적으로 버티려고는 하지 마. 목을 조르려면 목을 부러뜨리고, 무릎을 꿇으려면 바닥을 기어 발에 입이라도 맞추라고.”
내 땅에서 살아남으려거든, 아니면 깨끗이 죽으려거든 ─
네 눈꺼풀을 손으로 덮으며 나긋하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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