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지+슌] 손 안의 먹이

2017. 9. 6. 14:51 from 02

 

젊은 사장의 집무실에 누군가 뱀처럼 스르륵 들어왔다. 기척이야 느꼈지만, 공간의 주인인 사내는 굳이 침입자의 얼굴을 확인하지 않는다. 그가 부리는 사람이라면 허락을 받고 들어올 터. 굳이 숨어드는 방식을 취하는 것은 충동적인 방문이기 때문이고, 사내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가족을 제외하면, 사내 개인의 공간에 허락의 절차 없이 들어올 수 있는 자는 하나. 사내의 무기로 움직여주지만 그의 사람은 아닌 청년이었다.

필요하면 얼마든 들어와도 좋다. 일을 마칠 때까지 얌전히 기다려주기만 한다면 네가 필요로 하는 것도 제공할 것이다. 그런 말을 먼저 꺼낸 것은 사내였다. 청년으로서는 거절할 이유 없는 호의였다. 그때부터 청년은 사내에게 받은 패스키로 곧잘 그의 집무실에 숨어들었다. 사내를 부르는 일도, 방문을 예고하는 일도 없이. 원래 제 공간이었던 듯 뻔뻔하게.

사내가 수하로부터의 보고서에 시선을 고정한 사이 청년은 이번에야말로 발소리 없이 다가와 사내의 옆에 냉큼 앉는다. 그러고는 펜을 쥔 사내의 오른손 대신 왼손을 끌어와 입에 가져갔다. 손을 잘근잘근 씹어대는 청년에도 사내는 별달리 표정을 걸치지 않는다. 한두 번 당한 짓도 아니거니와, 그런 것쯤은 참아줄 수 있었다. 사실 손을 물어뜯는 것은 청년의 평소 모습을 생각하면 매우 얌전한 장난이라고 볼 수 있다.

청년은 기본적으로 충동적인 인간이었다. 삶을 지배하는 목표에 열중할 때를 제외하면 그의 행동은 대개 충동과 욕망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그의 단정한 얼굴 아래 얼마나 강렬한 욕망이 잠들어 있는지, 보통의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어린 나이에 삶을 덮친 극한의 불행과 내일을 약속할 수 없는 삶이 그를 욕망에 충실한 인간으로 만들고 만 것일지도 모른다. 불안과 고통에 짓눌린 삶에서 그나마 선명한 즐거움이라면 날것의 욕망일 테니까.

청년을 사용하는 인간으로서 사내는 그가 좋은 상태로 있도록 관리할 의무가 있었다. 전장에서 살아남은 인간이니만큼 전투에서의 경험과 동물적인 감각은 무시할 수 없다. 무기로서야 청년은 사내가 쥔 사람 중 가장 뛰어난 축에 들었다. 다만 그는 그 자체로 위험했다. 어디로 튈지 모를 습성과 변덕, 인간에 대한 깊은 불신이 날을 세우게 두어서야 곤란했다. 시선을 떼면 사라질지 모르고, 마음이 맞지 않으면 얼마든 이쪽을 해하는 무기가 될 수 있다. 그런 위험성을 잠재우기 위해선 사내가 달래주어야 했다. 그의 목표에 대한 단서를 뿌리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며, 그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식으로.

그런 이유에서 사내는 청년의 욕망을 풀어주고 있었다. 청년의 충동적인 방문을 허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 청년은 채 통제하지 못한 욕망과 자신을 지배하는 충동을 사내를 물어뜯는 것으로 표출하곤 했다. 짐승이 이를 세우는 것처럼 거칠게. 그러나 다치게 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라도 깔려있는지 그렇게 억세진 않게. 그러면 사내는 그것을 자신이 필요하다는 청년의 신호로 여기고, 일을 끝내면 그를 데리고 사라지는 것이다. 그렇게 합의된 관계였다.

다만, 청년이 그렇게 자주 호소하는 욕망은.

사내는 펜을 든 채 청년을 살폈다. 금빛 눈에 비치는 열기는 간단히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무겁다. 저런 것을 홀로 해소할 수 없어 타인의 힘을 빌리고 있다. 내키는 대로 해주겠다고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자신인데도 사내는 청년의 깊은 충동을 발견할 때면 섬뜩해진다. 저것은 짐승의 욕망을 안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차라리 나았다. 그건 욕망의 깊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청년이 그를 통해 풀어내는 욕망의 성질 때문이기도 했다.

쿠로사키.”

늦어.”

펜을 빼앗아가는 청년에게 경고하듯 이름을 불렀는데, 돌아온 것은 뻔뻔한 답이었다. 사내는 말을 덧붙이는 대신 남은 일과 청년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오래 방치해두긴 했다. 아무리 일을 끝낼 때까지 기다리라고 일러두었다지만 얼마든 충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청년이 그동안 한 마디 말도 없었던 것이 용했다.

필요한 건 다 끝낸 것 알아. 일 욕심은 많아서 다른 것까지 오래 붙잡고 있으시겠지.”

그래서 이쯤에서 중단하고 가자?”

아카데미아 놈들을 처리해 네가 신경 쓸 일을 줄여준 것에 대한 포상으로 치자고.”

좋아.”

그렇게까지 나온다면 사내로서도 더 버틸 이유는 없다. 청년의 지적이 틀린 것은 아니었으므로 그의 뜻대로 따라주어도 되었다. 사내는 청년을 데리고 집무실 근처에 붙은 방으로 향했다. 사내가 일을 하다 잠깐 쉴 수 있도록 만든, 일종의 개인 휴게실이었다. 의욕적으로 온갖 일을 처리하는 젊은 사장에 대한 회사의 배려였지만 정작 언젠가부터 누구도 생각지 못했을 용도로 쓰이게 되었다. 사내가 잠깐 숨을 돌리는 사이 소파에서 기다리던 청년은 사내가 다가오자 바로 그의 손을 잡아채 자신에게로 끌어당긴다.

보통 때는 혀로도 통제할 수 있는 청년인데, 힘으로는 사내가 확실히 밀린다. 사내는 청년의 바람대로 힘없이 그에게 무너졌다. 청년은 금빛 눈 가득 열기를 담아 그를 올려다보았고.

그 다음은 정해져 있었다. 사내는 제 몸에 밀착한 타인의 신체에 침을 삼켰다. 직접적인 접촉을 막아주던 옷이 점점 벗겨지고, 이곳저곳 흉터가 박힌 청년의 몸이 드러났을 때. 사내는 언제나 자신을 감싸고 있던 이성을 한 꺼풀씩 벗겨냈다. 사내에게 무장과도 같았던 논리와 계산이 풀어지면, 남는 것은 천재 사장도 냉정한 통제자도 아닌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언제나 인간 이상의 뛰어난 존재로 비춰지는 사내인데, 청년은 그를 쉽게도 끌어내린다.

사내는 도발하듯 자신의 입술을 무는 청년이 도마 위에서 생생함을 과시하는 산 재료 같다고 생각했다. 청년은 언제나 이런 식이다. 상대를 잡아끌고, 자극시켜 자신에게 엉키게 한다. 그 뻔뻔스러운 당당함을 사내는 제가 봐주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론 자신이 그에 말리지 않는다고 확신하지도 못했다.

아니, 사실은 말려들고 있을 것이다. 청년의 조악한 본성은 얼마든 다른 사람을 휘감아 들 수 있었다. 그와는 반대 지점에 있다고 볼 수 있는 사내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카바.”

자신을 전시된 상품처럼 들여다보고만 있는 사내에게, 청년이 약간의 불만을 담아서 말했다.

나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마.”

사내는 답 대신 청년에게 몸을 묻었다. 그것이야말로 청년이 기다리던 것이었다. 더 이상의 삐걱거림 없이, 둘은 익숙하게 맞물렸다.

 

*

 

시작은 목을 무는 것이었다. 맹금의 이름을 가진 청년은 이름에 걸맞은 포식자의 습성이라도 있었던 것인지, 자신을 부른 사내의 목을 끌어안더니 그대로 이를 세웠다. 어린 짐승이 가볍게 갉는 정도가 아니다. 억센 힘으로 쉬지 않고 물어뜯는 것은 당혹감을 느끼기에 앞서 제법 고통스럽다. 억지로 떼어내면 위험할지 모른다는 생각과 어디로 튈지 모를 인간을 받아주어야 한다는 책임이 사내를 계속 버티게 했을 뿐이다. 정신없이 물어뜯던 청년이 겨우 떨어졌을 때서야 사내는 물었다. 도대체 무슨 장난이냐고.

[장난은 아냐, 충동이지.]

[무엇에 대한?]

[몰라. 무언가 욕구가 있는 것 같은데 뭔지 알 수가 없다. 정신을 차리니 물어뜯고 있었어. 아마 네게 무언가가.]

그렇게 말을 마치고 저도 막연한지 입을 꾹 닫은 채 생각에 빠진 청년이었다. 사내는 욕구와 충동이라는 단어를 입에서 굴리다가 청년을 부르는 것으로 그의 생각을 끊어냈다.

[풀어내게 해주지.]

[뭔지 감이 잡히기라도?]

[글쎄. 하지만 네게 해줄 수 있는 건 있다.]

그날 사내는 청년에게 충동이 치밀 때면 자신을 찾으라고 일렀다. 패스키를 줄 테니 필요할 때 찾으면 된다. 다만 일을 마칠 때까진 기다려라. 그러면 가장 강한 자극을 줄 것이다. 자극이라는 단어에 반응했는지 청년은 쉽게 그러겠노라고 답했다. 사내는 사내대로 청년을 일단 통제범위에 넣었다는 것에 만족했다.

인간에게는 여러 욕망이 있고, 원초적이고 강한 욕망이라고 성적인 것일 이유는 없다. 그런데도 방향을 그렇게 잡은 것은 어쩌면 청년에 대한 사내의 판단 때문일지도 모른다. 청년은 조악하고 제멋대로인 인간이라는 것. 욕망에 충실하고 쾌락에도 쉽게 젖을 것이다. 그런 인간을 달래는 데는 강한 쾌감이 좋다. 사내만의 생각이었으나 청년은 제법 잘 받아주었다. 탐욕스럽게 얽히는 짐승. 때로 사내는 자신에게 달라붙은 청년이 그렇게 비치곤 했다. 다만 청년은 사내와 얽힌 때까지도 그의 몸을 자꾸 물었다. 그것만으로는 제 충동을 풀어내기 부족하다는 듯이.

그래도, 사내와 얽힌 다음에는 얼마간은 차분해지는 청년이었다. 사내는 자신이 택한 길이 정답이리란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으나 청년이 근원 모를 욕망을 조금이라도 해소한다면 그것만으로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사내도, 청년에게 어울려주는 것에 한 움큼의 재미도 없다면 거짓이었다. 사납고 제멋대로인 짐승 같은 것이 자신에게 열중한다. 타인을 지독하게 경계해 단단한 껍질로 저를 감추는 청년이 풀어진다. 사내로서는 즐거운 일이었다.

청년의 몸은 살짝 마른 편이었으나 탄탄해 잘 만들어진 무기 같았다. 사내는 청년과 얽힐 때면 학자처럼 그의 몸을 훑고 제왕처럼 정복욕에 취했다. 사내는 그런 제 모습을 청년이 읽어내지 못하길 바랐다. 저 또한 책임만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청년에게서 취하는 것이 있음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맹금의 이름에 어울리는 금빛 눈은 무엇이든 날카롭게 담아냈으나, 다행히 청년 자신이 취했을 때까지 빛나지는 않는 듯했다. 사내의 흐트러진 모습을 포착하기만 한다면 빈정대고도 남을 인간인데 아직껏 청년은 사내를 걸고넘어진 적이 없다.

재미있어?”

다만 청년은 가끔 그런 질문을 던졌다. 안경을 벗은 채 보는 청년은 흐릿해 감정을 읽어내긴 어렵다.

그건 무슨 뜻이지?”

그쪽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는 시시한 일을 하나 싶어서.”

네 충동을 풀어주는 것 이상의 의미가 필요한가?”

그것 참 대단한 책임감이군.”

네가 보통의 인간이었다면 가만히 두었을 거야. 본인의 위험성에 대해 아는 것 같진 않다만.”

위험이라.”

청년은 거기서 웃었다. 눈앞의 모든 것이 희미하게 일렁였지만 사내는 상대의 입꼬리가 크게 올라가는 것은 언뜻 볼 수 있었다. 가벼운 웃음소리도 뒤따라온다.

어떤 점에서?”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지. 외부 변수로 인한 미스는 어쩔 수 없다 쳐도, 인간을 제대로 사용하려면 어느 정도는 예측 범위 내에서 움직여야 해. 하지만 너는 생각의 틀을 자꾸만 넘는 인간이고.”

그래서 엉뚱한 데로 튀기 전에 달래준다?”

사소한 어긋남이라도 방치했다가 나중에 삐걱거리면 곤란하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것은 사내가 청년을 면밀히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이유였고, 일어날 수도 있었던 많은 위험을 방지한 방어막이기도 했다. 지금 사내가 베푸는 호의도 처음 꺼내게 된 이유는 그것이었다. 어쩌다 다른 것까지 개입하고 말았을 뿐이다. 아마도 청년은 영영 모를, 사내 개인의 흥미와 감정이.

그렇다면 네가 보는 내 욕망의 근원은?”

알 수 없어.”

무엇인지도 모르고 받아준다고?”

방치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도대체 조심성이 있는 건지 무모한 건지.”

받아치려고 했으나 혀가 막혀 말을 만들어낼 수가 없다. 사내는 예고 없는 접촉에 반응하면서 청년의 습성을 떠올린다. 먹잇감을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물어뜯는다. 욕망이 향한 것은 만족할 때까지 탐한다. 청년에게 붙잡힌다는 것은 지칠 때까지 시달릴 수 있음을 뜻한다. 그런 것에게 스스로 목을 내어준 것이 바람직한 일인지 물으면 사내도 명확히 답할 수 없다. 그래도 사내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저것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이든, 나는 저것을 통제할 수 있다. 저것은 까다로울 뿐 길들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오만에 가까운 확신은 지금까지 깨어진 적 없었다.

이성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있는 만큼 방심은 하지 않지만, 그것이 모든 실패를 막아준다는 뜻은 아니었다. 사내는 타고나기를 우수한 인간이었고 너무 많은 성공을 거둬온 까닭에 실패에 대한 경계가 느슨했다. 거기에 자신의 선택에 대한 신뢰가 다소 과한 사내였다. 무모한 선택을 계속 가져가다 삐걱거릴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게 사내의 뿌리까지 파헤쳤을 리는 없건만, 청년은 사내를 놓아주자마자 뜻밖에 날카로운 말을 던졌다.

너는 이렇게 발산시키는 게 방지책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네가 잘못 짚었다면 오히려 위험해질지도.”

목소리에는 채 가시지 않은 열기가 묻어있었지만 담긴 내용은 한 번 생각해봄직한 것이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것을 자극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않나?”

그런 걱정은 특별히 하지 않아. 욕망이 이 이상뻗어나갈지도 의문이고.”

어떻게 튀든 감당하겠다면 관계없지만.”

청년도 깊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는지 말을 더 잇지 않고 다시 사내에게 덤벼들었다. 잠깐 사내의 머리를 어지럽혔던 청년의 말은 그것으로 간단히 흩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경고는 결국 사내에게 돌아오게 되었다.

균열이 생긴 것은 아주 사소한 순간에서였다. 사내가 청년의 욕망에 얽혀준 것도 몇 달째 된 어느 날. 뜯을 것이 있어서 칼을 꺼낸 것이 시작이었다. 한순간 어지럽다 싶더니 사내는 칼을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떨어트리고 말았다. 손가락이 베여 피가 흐르고 있었다. 피로에 짓눌린 채로 칼을 꺼낸 것이 잘못이었을까. 다치긴 했지만 다행히 상처는 깊지 않다. 잠깐 지혈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사내가 그런 생각으로 피를 닦아낼 것을 찾으려 할 때.

곁에 있던 청년이 사내의 손을 잡아채더니 피가 흐르는 손가락을 제 입으로 가져갔다. 손을 빼려고 해도 무서운 힘으로 잡고 있는 통에 어찌할 수가 없다. 사내가 얌전히 손을 붙들린 가운데 청년은 사내의 상처 난 손가락을 핥았다. 축축한 혀가 닿았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몇 번. 피를 남김없이 핥아낸 청년이 잠깐 행동을 멈췄을 때 사내는 보았다. 청년의 금빛 눈이 무섭게 번득이는 것을, 먹잇감을 포착했을 때 이상으로 희열에 휩싸인 것을.

이제 알았어, 아카바.”

무엇을. 이라고 하기도 전에 사내는 신음을 흘렸다. 청년의 이가 손가락의 살점을 물어뜯고 있었다. 포식자처럼. 놓아주는 일 없이. 순간 사내는 떠올렸다. ‘물어뜯는 것으로 처음 모습을 드러낸 청년의 욕망. 아무리 자극을 주어도 풀리지 않는, 욕망의 강렬함. 그리고 심지어 자극을 주는 동안에도 그를 물어뜯던 청년의 모습. 그 모든 것을 종합하면 하나의 의심을 하게 된다.

그가 시달려온 욕망은 어쩌면.

청년은 어느 시점에서 손가락을 놓아주었다. 눈은 계속 형형히 빛났지만 잔뜩 물어뜯은 손가락에는 흥미가 떨어진 것 같다. 대신 청년은 겨우 안도한 사내에게 덤벼들어 그를 쓰러트렸고, 그대로 목에 얼굴을 묻었다.

먹혀버린다 극한의 공포가 사내를 덮쳤다.

 

*

 

몸에 남은 잇자국은 성가셨다. 가리긴 했으나 어쩌다 드러나기만 하면 잇자국의 출처에 대한 귀찮은 질문이 날아들었으므로. 사내가 적당히 둘러대는 데도 한계가 있다. 키우던 동물 핑계를 대기도 어렵다. 물론 키우던 것이 물어뜯었다는 것은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키운다고 생각했던 것에게 물어뜯겼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리라. 청년이 자신의 욕망을 제대로 깨달은 이후로 그들의 관계는 완전히 반전되었으므로. 사내는 자신의 몸을 야무지게 물어뜯은 것을, 통제범위를 완전히 벗어난 청년을 응시한다. 함께 식사를 시작한 사내는 수저를 내려놓은 지 오래인데 청년은 아직도 식사에 열심이다.

청년은 상에 가득한 음식을 게걸스레 먹어치운다. 제 몫의 것을 먹어치우고도 새로 시킨 것이었다. 빠르게 비워지는 그릇을 보며 사내는 쉽게 잠재울 수 없는 청년의 허기를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들어앉은 영혼이 굶주려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식욕은 무섭도록 왕성하다. 그런 식욕을 타인에게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의 여과도 없이, 축소도 없이, 하필 사내에게.

부지런히 수저를 움직이던 청년의 눈이 사내를 비추었다. 그렇게나 먹어치우고도 여전히 굶주린 눈. 그것만으로 사내는 청년에게 물어뜯기는 상상에 빠진다. 무력하게 쓰러져, 목을 물리고, 그대로 움직임이 마비된 채, 먹혀서.

청년은 사내를 눈에 담으며 입맛을 다신다. 최상의 먹이를 아껴두며 탐하는 양. 저것은 얼마든 덤벼들 수 있다. 사내가 청년의 입에 들어가지 않는 건, 그릇에 담기지 않는 것은 그저 먹이를 확보해둔 채 만족을 느끼고 싶은 사냥꾼의 습성 탓이다.

남이 먹는 걸 구경하는 취미가 있는 줄은 몰랐는데.”

먼저 말을 걸어오는 청년에게, 사내는 엉뚱한 질문을 던진다.

언제부터였지?”

뭐가.”

나를 물어뜯고 싶었던 것. 실행한 때가 처음이 아니었지?”

막 음식을 입에 가져가려던 청년의 눈이 웃었다. 그것으로 사내는 자신의 의심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았다. 그의 욕망은 갑자기 피어난 것이 아니다. 내내 내부에 잠들어 있던 것이 그때 모습을 드러냈을 뿐.

글쎄,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네 말대로 시작이야 그 전부터였지.”

왜 그것이 하필 사내 앞에서 터져 나왔는지는 알 수 없다. 우연이었는지, 아니면 사내를 통해서 자극받고 만 것인지. 이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 욕망의 끝이 사내가 되어버렸다는 사실뿐이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언제까지 지속될지 아니겠어?”

그렇게 덧붙인 청년은 사내의 목에, 그가 한껏 물어뜯었던 자리에 시선을 걸쳤다.

어떻게 생각해?”

아마, 앞으로도 계속되겠지. ‘먹지못했으니까.”

사내를 눈앞에 두고 이야기하면서도 청년은 별로 말을 조심하는 기색이 없다. 포식자가 먹이 앞에서 욕망을 감출 이유는 없으므로. 그 날, 청년이 욕망의 정체를 깨달은 날. 사내는 그의 먹잇감으로 바뀌었다. 이제 사내가 청년을 돕는것이 아니라, 청년이 사내를 노리는관계가 된 셈이다. 사내는 일상 속에서 시시각각 청년의 욕망을 마주해야만 한다. 자신을 먹어치우고 싶다는 욕망을.

걱정할 것 없어, 아카바.”

자신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사내는 모른다. 겁에 질려 있었을까. 굳어있었을까. 아니면 포식자 앞에서 애써 당당했을까. 어느 쪽이든 청년에게는 우습게만 보일 것이다. 달래기라도 하려는 듯 평소보다 부드러워진 청년의 목소리에 사내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너는, 지금은 아니야.”

언젠가는 먹히고 만다. 지금은 아니라는 말에는 언제가 될지 모른다는 말이 숨겨져 있다. 아마 청년은 한동안 사내에게 손을 대지 않을 것이다. 언제까지 쫓길지 모른다는 불안으로 묶어서, 사내라는 먹이를 계속 시선이 닿는 곳에 둘 것이다. 언제든, 자신이 내킬 때 먹어치우기 위해서.

은근한 말을 던진 청년은 다시 식사에 열중했지만 사내의 시선은 청년의 식사가 끝날 때까지 그에게, 그가 수저를 가져가는 음식에 꽂혀있었다. 청년은 족쇄 없이 사내를 옭아맸다. 포식자에게 어울리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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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현소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