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해꾼이 들이닥친 것은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늦은 저녁이었다. 여느 경영자처럼 업무에 바쁜 사내의 책상에 불쑥 커다란 손이 올라오더니 가져온 꾸러미를 풀어 거꾸로 들었다. 무언가 와르르 쏟아지는 소리에 고개를 들자 사내가 협력자로 대우하고 있는 청년의 얼굴이 보인다. 언제나 바쁜 처지라, 자신을 만나고 싶으면 자유롭게 들어오라고 패스키를 내주었더니 그걸 쓰고 들어온 것 같다. 청년이 멋대로 들어온 건 그걸 통해서였다 해도 키가 작동하는 소리는 났을 텐데 다가올 때까지 느끼지 못한 것을 보니 어지간히 일에 집중한 모양이었다.
“무슨 일로?”
키를 주어도 웬만해선 연락 없이는 자신을 찾는 일이 없는 청년이었다. 그런 그가 스스로 찾아왔다면 무언가 중대한 일이라도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사내였으나 청년은 답 없이 손가락으로 책상을 가리킬 뿐이었다. 사내는 다시 시선을 떨어트렸고, 책상 위에 청년이 쏟아낸 것이 무엇인지 비로소 알아챘다. 초콜릿.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초콜릿이었다. 조그마한 초콜릿 여러 개가 형형색색의 포장을 입은 채 자료가 그득한 그의 책상을 뒹굴고 있었다. 굳이 세지는 않았으나 열댓 개는 넘을 것 같았다. 두어 개 집어 살펴보았지만 무언가 특별한 점은 찾을 수 없었고 포장을 벗겨보아도 익히 아는 달콤한 냄새가 풍길 뿐. 결국, 의미를 알 수 없었던 사내는 청년에게 다시 물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무슨 의미지? 바라는 것이 있기라도?”
“먹어주었으면 해서.”
돌아온 답은 싱거웠다. 그 전까지 온갖 가능성을 생각한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질 정도로. 사내는 잠시 할 말을 잃고 청년을 응시했지만 청년은 어지러이 흩어진 초콜릿을 가지런히 정리해 사내에게 내밀 뿐이었다.
“그렇게 본다고 해서 답이 달라지는 건 아냐. 정말로 그것뿐이니까.”
“뜻밖이군.”
“초콜릿 하나로 무슨 생각을 그렇게 열심히 했는지 모르겠어. 너는 쓸데없이 생각이 많아.”
“네가 처음부터 바로 설명했다면 헤매지도 않았을 것 같지만.”
사내는 포장을 벗긴 초콜릿을 입에 넣었다. 단맛이 입에 번지며 일 때문에 쌓인 피로가 조금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단것을 일부러 찾을 정도로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가리는 것이 별로 없는 사내였고, 입에 넣는 순간 에너지가 빠르게 차오르는 느낌은 싫지 않았다. 사내는 그대로 두어 개를 더 까서 입에 넣었고 먹는 동안 또 다른 의문에 사로잡혔다. 왜 눈앞의 청년은 번거롭게 자신을 찾아와 초콜릿을 내주었는지. 청년은 그에게 친구라기보다 비즈니스 파트너에 가깝다. 보다 명확하게 말하면 언젠가 그와 함께 침략자에 맞설 전사였다. 세상 어딘가에서 침략전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그들은, 정예병을 결성해 침략군을 막기로 합의했다.
“이건 선물의 의미인가?”
“별로.”
“그렇다면 왜?”
“단것은 졸업해서. 처치곤란이니 넘기는 것뿐이다.”
“졸업이라니.”
사내의 입가에 드물게 웃음이 번졌다. 청년이 사용한 단어가 우스웠던 탓이다. 자신에 대해 최소한만 드러내려 하는 청년이라, 사내는 그가 밝히지 않은 것을 굳이 물은 적이 없었다. 때문에 사내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은 이름과 출신지, 사용하는 무기와 목적 정도에 불과했다. 나이는 처음부터 숨겼기에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사내가 짐작하기에 자신과 거의 비슷한 정도일 것이다. 많아봐야 성인이 되기 직전. 그런데 세상을 한참 산 어른이라도 되는 양 졸업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다. 이것은 평소에 ‘아이 취급’을 받는 것을 싫어하는 것의 연장선일까.
그렇게 생각하고 청년을 본 사내는 멈칫했다. 청년의 얼굴에 묘한 감정이 떠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무겁고 눅눅한 감정. 혹 기분을 상하게 했을까 걱정이 된 사내가 입을 열어 사과하려는 순간, 청년이 입을 뗐다.
“굳이 네게 가져온 건 먹어줄 사람이 마땅찮아서였다. 스쿨을 돌아다니던 중에 학생에게 받은 거라, 다른 학생들에게 아무렇게나 넘겨버리면 귀에 들어갈 테니까. 그건 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애초에 타인에게 넘기는 것부터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청년은 초콜릿을 집어 들어 한참 들여다보았다. 달콤한 냄새에 숨이 막혔다. 먼 곳에서 온 그가 이곳에 머무는 이유는 사내와 함께 전장에 나설 것을 생각해서였다. 그 과정에 사내가 경영하는 스쿨 학생들과 간간이 마주쳤을 뿐. 학생들과는 특별히 친분을 쌓지도 않은 그였으나 학생이 눈을 반짝이며 내민 것을 거절할 정도로 매정하지는 못했다. 그래서였다. 결국 곤란해질 게 분명한 초콜릿 꾸러미를 받아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 것은.
“먹으려고 노력했어. 세 개를 먹었다. 점점 속이 메슥거렸지만, 참고 두 개를 더 깠어. 그리고 다섯 개째에서 포기했지.”
“싫어한다면 무리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 마음은 받아준 셈이지 않나.”
“싫어하는 건 아냐. 그래서 바보같이 도전한 거다. 어차피 제대로 먹지 못할 것인데.”
“그렇다면?”
청년은 침을 삼켰다. 그 뒤에 흘러나와야 할 것은 자신만이 아는 과거의 이야기였다. 완전한 이방인인 그가 이곳의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던 이야기. 어디에서부터 풀어가야 할지 머리를 굴리던 청년은 한참이나 지나 답을 들려주었다.
“단것을 싫어한 적은 없었다. 오늘처럼 초콜릿을 받거나 누군가 입에 넣어주면 별 생각 없이 먹어치웠다. 찾아서 먹을 정도는 아니어도 주변의 녀석들이 좋아했으니까, 어울려 먹을 기회도 적지 않았다.”
청년은 폐허에서 왔다. 전쟁이 그의 세상을 휩쓸어 모든 것을 앗아간 탓이다. 그는 가진 것이라곤 무기와 몸뚱이밖에 없이 이 낯선 도시로 왔으니, 그가 말하는 것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의 이야기일 것이다. 행복했던 때를 회상해서인지, 청년의 날카로운 눈에 문득 그리움이 비쳤다.
“침략이 일어난 날, 루리와 함께 정신없이 달려 적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피해 밤을 보냈다. 시간이 지나도 적은 물러가지 않았고, 놈들이 부리는 몬스터가 밤낮없이 돌아다니는 탓에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짐작하기 어려웠다. 거기서 불안에 떨며 얼마나 있었을까. 루리가 지친 듯 무너졌다. 생각해보면 도망치던 때부터 우리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어. 에너지가 떨어지면 버티지 못한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고, 주머니에 초콜릿이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극한의 상황에서는 무엇이든 고마운 법이다. 고작 작은 초콜릿 몇 개에 지나지 않았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희망으로 비쳤다. 청년은 주머니 속에서 초콜릿을 꺼냈고, 동생에게 내밀었다.
“그래서 그걸 꺼내 루리에게 주었는데, 먹지도 않고 오빠는? 하고 묻는 거야. 급한 건 자기인데 말이야. 그래서 대충 둘러대고 급하게 먹였다. 일시적으로 에너지를 회복한 루리는 조금 나아진 얼굴로 웃었다. 오래지 않아 나도 어지러웠지만 더 이상의 행운은 없었다. 다행히도 곧 우리는 사람들에게 발견되었고 난민캠프로 향했지.”
사내는 새삼 자신과 청년의 세상이 얼마나 다른지 느꼈다.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 속 세상은 겪어본 적도 없고 상상한 적도 거의 없는 것인데, 그에게는 현실이었다. 한순간에 자신이 살던 세상이 붕괴하고 사람들이 쓰러지며 살아남기 위해서 싸워야 했던 과거. 그런 날을 보내온 청년이 완전히 낯선 세상에 와서 지금처럼 자신을 숨기며 방어적으로 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난민캠프는 둘만 있었던 때보단 사정이 나았지만 모든 게 부족한 건 매한가지였다. 아카데미아 놈들이 전부 쓸어버렸으니 그럴듯한 걸 찾기도 어려웠고, 찾으러 다니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가끔 운이 좋으면 망가진 가게에 있던 초콜릿이나 사탕 같은 것을 찾을 수 있었어. 그건 내 머릿속에서 아이들 몫이었다.”
“그 아이들에, 너는 포함되지 않았던 거지?”
“따지고 보면 나도 아이였지만 그때는 말이야, 어른들은 아이들을 지키겠다고 나섰다 쓰러져서, 나 정도면 나이가 많은 축에 들었거든. 그래서 어른 행세를 했지. 가져온 걸 나보다 고작 몇 살 어린 애들한테 내밀면서, 예전에 루리가 물었듯 ‘슌은?’ 하고 물어오면 먹지 않는다고 했어. 우릴 위해 양보하지 않아도 되는데. 라며 마음 약한 아이들이 조심스레 다시 내밀면, 멍청한 답을 돌려줬지. 바보. 나는 벌써 졸업했단 말이야.”
사내는 비로소 ‘졸업’의 의미를 깨달았다. 청년은 고개를 숙였다. 가라앉은 목소리가 사내에게 닿았다.
“단것은 진즉에 졸업했다고, 그렇게 얘기했던 거야.”
전장에서 아이들은 어른이 되기를 강요당한다. 아마 청년도 그랬을 것이다. 아이의 욕망도 선택지도 강제로 제거당한 채 어른인 체 무거운 것을 견뎌야만 했을 것이다. 그 결과로 청년은 꿈 대신 비정한 힘을 믿었고 아이가 아닌 어른으로서 세상을 마주하고 있었다.
“쿠로사키. 너는.”
“암시라는 건 말이야. 꽤 대단하더라고. 이곳에 오니 무엇이든 많았다. 음식도, 간식도 전부 넘쳐났지. 이곳에서라면 단것을 먹일 아이도 없고 내가 먹을 수 있는 단것도 넘쳐나는데, 하트랜드에서의 일이 생각나 간식으로 나온 초콜릿을 먹자 바로 입을 헹궈야 했어. 나는 단것을 먹지 않았던 것인데, 이젠 먹지 못하게 된 거야. 나는 그런 건 먹지 않는다고, 이미 졸업했다고 어른인 체 구는 동안에.”
우습게도 그랬다. 이전에 결코 싫어하지 않았던 단 냄새가 어느 순간부터 속을 휘저었다. 입에 퍼지는 단맛이 끔찍했다. 분명, 평화 속에서는 누이와 함께 아무런 이상 없이 즐겼던 것인데도. 그때부터는 아무리 바꾸려 해도 무리였다. 단것을 억지로 입에 넣어봐야 몇 개를 삼키고 이내 입을 헹구는 정도였다. 이번에도 다를 바 없어, 청년은 결국 선물로 받은 것을 거의 온전한 채로 사내에게 가져와야만 했다.
“이곳에서는 어른이 아니어도 된다. 쿠로사키.”
“알고 있어.”
“네가 짊어진 것들이 너를 강하게 만든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너를 죌 필요는 없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는 알 것 같은데.”
청년은 고개를 들어, 사내를 똑바로 보았다. 다시 본 청년의 얼굴에 침중함은 비치지 않는다. 표정을 숨기고 있는 동안 지워냈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비춘 적 없었는지, 사내는 모른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그에겐 고통스러웠다.
“너무 가까이 왔어. 그냥 평소대로 돌아가자고. 서로 신경 쓰지 않고 이용만 하는 관계로.”
또다시 청년은 선을 긋는다. 사내에게, 더 들여다보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 아래 ‘어차피 우리는 타인이다’라는 생각이 깔려있음을 사내도 모르지 않았지만.
“너는 조금 더 너를.”
놓아줄 필요가 있다. 사내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이곳에선 곧 그와 함께 싸우게 될 전사들이 실력을 키우고 있는데. 그곳에서처럼 당장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것은 아닌데. 전사들과 함께 떠날 때까지는,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휴식에 가까운 날을 보낼 수 있을 텐데. 여기에서까지 자신을 몰아세우며 무리하지 않아도 좋은데.
이곳은 너의 전장이 아닌데.
“간섭받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는 건 알 텐데.”
그러나 사내는 알고 있었다. 청년은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자신이 책임질 것이 있는 이상 어깨가 부서질 때까지 가득 짊어지고, 책임으로 목을 죌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래서 그는 청년의 거부에 굳이 말을 덧대지 않았다.
“갑자기 찾아와 일을 방해한 것 같군. 용무는 끝났으니 더 귀찮게 해선 안 되겠지.”
“방해는 되지 않았는데. 원한다면 조금 방해해도 상관없고.”
“오래 있고 싶지 않아. 다행히 초콜릿, 싫어하진 않는 것 같으니 부탁하지.”
조금 더 청년을 붙잡아두고 싶다는 사내의 마음을 잘라내고 청년은 사내에게서 멀어졌다. 사내는 책상에 얹힌 초콜릿을 만지작거리며, 청년이 문으로 향하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문을 열고 나가기 직전, 청년이 돌아보더니 말을 던졌다.
“나는, 먹을 수 있을 때까지 좀 걸릴 것 같아. 초콜릿.”
다음 순간 문이 스르륵 열리고, 청년이 사내의 공간에서 빠져나갔다. 조금 걸릴 것 같다, 라. 사내는 청년이 남긴 마지막 말을 속으로 되뇌었다. 먹을 수 있는 날이 오지 않는다고는 하지 않고, 조금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스스로 가능성을 잘라내지 않는다면 희망은 있다. 전쟁이 끝나 그가 짊어진 무거운 것을 전부 풀어내게 된다면. 제 나이대로 움직여도 괜찮은 평화가 온다면. 그래서 그가 어른 행세를 하지 않아도 된다면. 그러면 그도 예전처럼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거기까지 가기 위해선 청년은 앞으로도 계속 싸워야 하고 사내는 그를 마지막까지 인도하고 지휘해야 한다. 그러나 둘만의 길은 아니다. 사내는 머잖아 가능성을 보이는 자들을 뽑아 전사로서 청년과 함께 세울 것이다. 그 모두가 전쟁을 끝내고 청년에게 평화를 돌려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청년을 옥죄는 모든 것으로부터 그를 해방시키리라. 사내는 아직도 제법 남은 초콜릿의 포장을 벗겨 입에 넣었다. 단맛에서 오는 만족감이 속을 가득 채웠다. 언젠가 그도 다시 이런 걸 느낄 수 있게 된다면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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