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슌] 특식

2016. 8. 23. 23:50 from 02

 

생명이 꺼진 주검은 짐짝처럼 옮겨져, 숨겨진 통로를 지나 작은 방으로 떨어졌다.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소년은 떨어진 주검에 다가서 짐승처럼 냄새를 맡는가 싶더니 이내 그 몸뚱이에 달려든다. 소년이 머리를 묻고 이를 세워 주검을 물어뜯자 시신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약품에 던진 고깃덩이처럼. 시신을 녹여가며 먹어치우는 소년 덕분에 오래지 않아 망자의 육신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뼈마저 온데간데없다. 먹을 수 있는 것은 전부 먹어치우고 먹을 수 없는 것은 부식시켜 처리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십 분 가량. 말끔하게 해치운 소년은 웃었다.

화면을 통해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던 사내는 손을 뻗어 화면 너머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는 시늉을 했다. 칭찬을 의미하는 행동에 들뜬 것일까. 소년의 금빛 눈이 한순간 빛났다. 좋아. 쿠로사키. 식사는 거기까지. 사내의 말이 떨어지자 소년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고 화면에서 사라졌다. 용무를 끝낸 사내는 미련 없이 화면을 껐다.

사내는 이 세상을 지배하는 두 축 중 하나. 젊은 나이에 정점에 오르기 위해서 사내는 많은 것을 움켜쥐고 많은 것을 버려야 했다. 좋은 바탕 위에서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자라난 사내라 해도, 옥좌로 나아가는 과정에는 걸림돌이 여럿 있었다. 그것은 대개 적의 사람이었다. 회유할 수 있는 자는 회유하고 협박해 말을 듣게 할 수 있는 자는 협박했으나, 그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는 자들은 제거하는 것이 나았다. 내 편으로 만들 수 없는 것은 흔적 없이 제거하고, 흔적 없이 치운다. 그리고 그들이 사라진 만큼 순조롭게 나아간다. 그것이 사내의 방식.

걸림돌을 제거하는 역은 사내가 비밀히 쓰는 사람들이 맡고 있다. 표면적으론 사내와 연결되어 있지 않으며 비밀히 움직이기 때문에 설령 문제가 생기더라도 사내에게 불똥이 튈 일은 없다. 다만 처리에 대해서는. 사내는 제거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처리임을 알고 있었다. 아무리 자신의 흔적은 남지 않는다 해도 제거한 것이 떡하니 세상에 공개되어서야 곤란했다. 소리 없이, 아무런 일도 없었던 양 처리해 귀찮은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사용하는 것이 바로 저 소년.

사내는 자기 사람들에게 소년이 이름 대신 시체 처리기라고 불리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쓰기 위해 키운 것은 아니었으나 언젠가부터 그렇게 쓰게 되었다. 실제로 소년보다 말끔하게 처리할 수 있는 자를 사내는 알지 못했다. 소년이 먹어치운 것은 어차피 곧 소화될 것이다. 본래의 모습은 흔적조차 없이 영영 사라지리라.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세상에서 말끔하게 지워진다. 만족스러운 처리법이다.

그러나 시체를 흔적 없이 먹어치우는 저것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행동은 평범한 인간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소년이었다. 사람들이 소년을 인간이 아닌 처리기로 취급하는 것도 어쩌면 소년을 정의할 이름을 찾지 못해서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키워온 사내조차도 정체는 알지 못한다. 아니, 파헤치려 하지도 않았다. 처음 만났던 때부터 그것은 이질적인 존재였다.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에서 건져왔다는 생물이니 어떤 괴상한 것이라 해도 놀랍지 않았다. 판명하기 어려운 것은 판명불가로 남겨두면 그만이었다. 미지의 생물의 정체가 무엇인지 따위는 사내의 관심사가 되지 못했다.

소년은 몇 년간 사내의 손에 자라며 완전히 사내를 따르게 되었다. 웬만한 요구는 전부 알아듣고 빠르게 해치우고 칭찬을 바라는 것처럼 그를 올려다보곤 했다. 어린 짐승을 키우는 것 같다고 사내는 소년의 머리카락을 쓸어주며 생각했다. 다만 소년은 결코 말을 하지 않는다. 이따금 소리를 낼 때가 있긴 했으나 그것은 짐승의 울음에 가까운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것에 불과했다. 그가 소년에게 바라는 것은 대화상대도 평범한 인간도 아니었으므로, 사내는 소년에게 말을 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정의하기도 파헤치기도 어려운 그 괴상한 것이 어떻게 그의 세상에 들어왔는가. 사내는 희미한 노크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를 찾을 사람이라면 여럿이지만 타이밍을 생각하면 지금 문 뒤에 숨은 자가 누구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사내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허락의 뜻을 표했고, 천천히 문이 열렸다. 들어선 것은 예상대로의 인물이었다. 바로 조금 전에 시체를 먹어치운 소년. 자리에서 일어나 팔을 벌리면, 소년은 기쁜 얼굴로 그 품에 뛰어든다.

묻었구나.”

사내의 긴 손가락이 소년의 입술을 쓸었다. 입가에 묻은 것을 닦아주는 손길은 동생을 돌보는 자상한 형 같기도 했다. 사람들이 그들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사내에게 소년은 단순한 도구는 아니었다. 몇 년간 키워와 정들인 생물이었고, 자신이 책임져야 할 존재이기도 했다.

소년은 죽은 땅에서 왔다. 전쟁으로 완전히 폐허가 되어 어떠한 생명도 뿌리내리기 어려워졌다 해서 붙은 이름이었다. 한때는 꽤 발전한 도시였던 그곳을 죽음으로 뒤덮은 것은, 사내가 적대하는 자였다. 세계를 잠식하려는 야망의 첫 타깃으로 침략해 점령한 것이다.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란 것은 알고 있었으나 사내는 그곳의 피해상황을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 수하를 보냈다. 수하가 돌아왔을 때는 그 손에 어린 소년을 하나 단 채였다. 폐허에서 건져낸 유일한 것이라고 했다. 제 몸엔 너무도 큰 남루한 코트를 거의 망토마냥 뒤집어쓴 소년은 호기심 많은 짐승처럼 눈을 굴렸다.

[하트랜드의 생존자인가?]

[글쎄요.]

수하는 난감하다는 얼굴이었다.

[저것을 생존자라고 말해도 될지.]

그가 소년을 발견했을 때, 소년은 시체를 먹고 있었다고 했다. 침략군이 휩쓸고 간 곳에서 식량을 찾는 것은 애초에 무리였을 것이다. 황폐한 도시에 넘치는 것이라곤 거리를 메운 주검뿐이었을 터. 살아남고 싶다는 열망이 어린 것이 시체에까지 손을 대도록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부패하는 시체에 몸을 묻은 채 소년은 시체를 분해하고 삼키길 반복했다. 그는 그 처참한 광경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다 퍼뜩 정신이 들어 소년을 시체에서 떼어냈다.

그러자 그것이 마구 소리를 지르며 덤벼들었다고 했다. 식사를 방해한 것에 불만을 품은 것이리라. 인간의 언어라기보다는 짐승의 울음에 가까운 것이 귀를 때렸다. 날카로운 울부짖음과 함께 그것의 손톱이 그의 외투를 찢고 살갗을 후벼팠다. 열린 입 속으로 보이는 이는 인간의 것이라기보다는 맹수의 것에 가까울 정도로 날카로웠고 커다랗게 뜬 눈은 괴상한 빛을 띠고 있었다. 둘은 한동안 씨름했지만 자그마한 아이에게 대체 무슨 힘이 깃든 것인지, 결국 포기하고 떨어져나간 것은 그였다. 그 후 그는 소년과 종종 마주쳤지만 못 본 체하고 넘어갔다. 접근하지만 않으면 소년도 먼저 달려들지는 않았다.

조사를 마치고 돌아가려고 할 때였다. 그는 우연히 소년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그때 무심코 소년에게 다가선 것이 잘못이었다. 그대로 지나쳤으면 알아서 생존했을 것을, 시체를 먹으며 연명하는 것에게 한순간의 연민으로 음식을 주고 만 것이다. 당연히 그것은 도시를 떠나려는 그에게 따라붙었다. 저지른 일이 있으므로 쫄래쫄래 따라오는 어린 것을 그는 차마 떨쳐내지 못했다. 그것을 데리고 복귀하는 수밖에.

[그래서 저것은.]

말을 던진 순간부터 사내는 자신의 말이 얼마나 바보 같은 것인지 깨달았다. 폐허 속에서 건질 수 있는 것은 전부 괴상한 것들이었다. 극한의 환경 속 겨우 살아남은 것들은 생존을 위해 모습을 바꾸고 성질을 바꾸곤 하였으므로. 저것이 인간인지, 인간을 모방한 괴물인지, 살아남기 위해 괴물로 변화한 인간인지 따지는 것은 무의미했다.

[인간이라기엔 짐승에 가깝고 짐승이라고 하기엔 인간을 닮았지요.]

사내는 소년에게 다가서 소년이 뒤집어쓴 남루한 코트를 벗겨냈다. 겉모습은 분명 인간의 것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추측한다면 나이는 10대 초반 즈음. 잡은 손으로 전해지는 체온도 평범했고 살갗의 감촉 또한 사내가 살아오며 만난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건강상태가 걱정되어 검진을 받게 했으나 소년의 신체에서 크게 인간과 다른 점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부패하는 시체를 먹으며 연명해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강도 양호한 편.

사내는 수하가 죽은 땅에서 건져온 것을 자신이 책임지기로 했다. 전쟁을 일으킨 침략자이자 그가 적대하는 자는 그의 아비. 전쟁의 피해자에 대해서는 아들인 자신이 끝까지 책임질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그가 기를 쓰고 정점에 오르려 한 것도 힘을 키워 아비에 맞서기 위해서였다. 그는 어릴 적부터 아비의 야망을 눈치채고, 아비가 세상을 잠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스스로 그 적이 되기로 결심한 사람이었다.

죽은 땅에서 발견된 생물이라곤 소년이 유일했다고 한다. 원래는 부모나 친구 같은 주변인이 있었을지도 모르나 그 시점에는 이미 죽었을 거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더라도, 말을 하지 않는 소년이었다. 소년 자신에 대한 정보도 주변인에 대한 이야기도 캐낼 수 없었다.

소년이 살던 곳의 언어로 몇 번이나 대화를 시도한 사내였지만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인가 싶어 시험 삼아 간단한 명령을 하자 이번에는 정확히 그에 맞는 행동을 보였다. 말은 알아듣지만 일부러 말을 하지 않는 것인지, 기능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말을 잃게 된 것인지, 사내로선 파악할 길이 없었다. 어떤 쪽이건, 소년 스스로가 말을 하지 않는다면야 사내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말은 알아들으니, 소년에게는 필요한 것만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대답을 기대하지 않으면 될 것이다. 사내는 그렇게 결론지었다.

[그래서 그것의 이름은 지으셨습니까?]

[아직. 인간이라기엔 수상쩍다고 하니 우선은 쿠로사키라 부르지.]

쿠로사키란 이름은 설화 속 괴물의 이름이었다. 인간으로 둔갑해 사람들에게 접근하고 천천히 먹어치우고 마는 괴물. 임시로 붙인 이름이라 잠깐 쓰고 말 생각이었는데 소년은 그만 완전히 자신의 이름으로 인식해버린 모양이었다. 사내가 쿠로사키라 부를 때면 소년은 쏜살같이 달려와 칭찬을 바라는 짐승처럼 눈을 반짝이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다른 이름을 지어주고 이제부터 그렇게 부르겠다고 말해도, 새 이름으로 부르면 입을 앙다물곤 어떤 명령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아이는 <쿠로사키>가 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 괴물의 이름을 가진 소년은 완전히 그의 것이 되었다. 좋은 환경에서 인간의 손에 자랐기 때문일까. 처음 만났을 때의 앙상함과 묘한 이질감은 이미 옛 이야기가 되었다. 이제 소년은 말끔한 옷을 입고 말끔한 모습으로 평범한 아이인 양 눈을 반짝인다. 다만 하나 평범한 사람과 다른 것이 있다면 성장이었다. 어떤 이유에선지 그것은 자라지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때 짐작한 나이가 대강 들어맞는다면, 인간으로선 성장기인 셈인데도 키가 크기는커녕 모습 하나 바뀌지 않았다. 사내만이 나이가 들어 키가 자라고 몸이 더욱 단단해졌을 뿐.

인간의 음식을 먹고, 인간의 환경에서, 인간의 손에 자라도 평범한 인간은 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어떤 생명도 살 수 없다고 선고받은 땅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것이 평범한 생물일 리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적응하며 바뀐 것이 이곳에서 평범한 인간으로 변하는 것도 무리한 일이다. 평범한 인간과는 어딘가 다를 수밖에 없는 존재라 해도, 전쟁 같은 것이 없는 세상에서 평화롭게 살아가길 바랐다. 그런 마음으로 공들여 키워온 품안의 어린 것이 어떻게 다시 시체를 먹게 되었던가.

그것은 과거 그가 함정에 빠지면서 시작된 일이었다. 그때 사내는 적대하는 세력의 주요인사가 협상을 제의해 그를 만나러 약속 장소로 향했다. 함정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했으나, 그를 기다리는 것은 짐작한 것보다도 악독한 것이었다. 협상을 하기로 한 자는 이미 무참하게 살해되어 주검으로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누군가 망자를 가장해 거짓으로 약속을 잡고 미리 숨을 끊어놓은 후 그를 불러들인 것이 분명했다. 그가 살해한 것처럼 꾸미기 위해서. 누명을 씌우기 위해 숨어있던 자는 사내가 데려온 수하가 발견해 처리했으나 두 구나 되는 시체를 치우는 것이 곤란했다.

그때 소년이 살그머니 나타났다. 내내 밖에 나가고 싶은 눈치여서 나오는 김에 데려와 근처에서 놀도록 풀어주었는데 조금 뛰어놀다 사내에게 돌아온 모양이었다. 소년은 사내의 굳은 얼굴을 올려다보고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를 바라보더니 괴물 같은 힘으로 두 사람을 문 밖으로 떠밀었다. 둘을 내쫓자마자 문이 단단히 잠겼고 안에서는 얼마간 무언가를 먹어치우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렸다. 마침내 소년이 문을 열고 나왔을 때, 방 안의 시체는 온데간데없었다.

다만, 소년의 입가에는 군데군데 살점이 묻어있었고 손에는 피가 말라붙은 채였다. 그것으로 사내는 소년이 문을 잠근 채 무슨 일을 했는지 바로 알아챘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던 수하가 오래지 않아 눈치챘는지 헛구역질을 했지만 사내는 온화한 얼굴로 소년에게 팔을 벌렸다. 소년은 그대로 그의 품에 뛰어들었다.

시체를 먹지 않으면 연명할 수 없을 지옥에선 이미 벗어났는데 저를 위해 굳이 이전의 삶으로 돌아갔던 것인가. 사내는 소년에게 감사한 한편 소년이 가여워 그 작은 몸을 가만히 안아주었다. 그것만으로 끝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후로도 소년의 처리는 계속 이어졌다. 죽음의 냄새라도 맡는 것일까. 사내가 고용한 자들이 사내의 걸림돌을 제거할 때마다 소년은 귀신같이 알아채고 그 뒤를 밟아 시체를 먹어치우고 마는 것이었다. 그것이 몇 번 반복되자, 결국 사용인도 사내에게 빈정거리듯 말했다.

[시체 처리기가 있지 않습니까.]

굳이 묻지 않아도, 그 끔찍한 이름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분명했다.

[예쁨받고 싶은 아이에게 칭찬받을 기회를 주시지요.]

어쩌면 소년은 시체를 먹어치우는 것이 사내를 도울 수 있는 길이라 인식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 날, 곤란에 빠진 사내를 구함으로써. 그래서 사내를 위해 움직이겠다 결심하고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말끔히 해치우는 것일까. 명령하지 않아도 부득부득 시체를 처리하고 돌아와 자랑스러운 듯 웃는 소년을, 사내는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강요하지 않은 행위를 스스로 하며 보람을 느낀다면 괜히 연민을 품어 중단하게 하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할 일을 마치고 돌아온 소년을 칭찬하고 감싸주는 게 나았다.

그래서 사내는 아예 시체를 처리할 공간을 만들고 위험인물을 제거하면 바로 소년을 그곳으로 보냈다. 소년의 도움을 인정한 셈이다. 그리고 화면을 통해서 소년이 처리를 마칠 때까지 지켜보고, 소년 역시 그의 시선을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소년의 특별한 식사는 그렇게 이어져왔다.

어린 짐승처럼 사내의 품에 얌전히 안겨 있던 소년이 어느 순간부터 몸을 떨었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사내는 안다. 시체를 먹어치우면서 본성이 자극된 것이다. 태어난 곳이 죽음에 잠식된 도시여서일까. 소년은 유독 죽은 것에 집착하는 습성이 있었다. 시체에 거부감이 없는 것도 그래서였을지도 모른다. 죽은 것을 손에 넣고 그 흔적을 속에 채우면 소년은 그것에 흥분해 얼마간 그와 비슷한 죽음의 흔적을 찾았다.

달갑잖은 자들이 세상에 많아 자주 해치울 때는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오래지 않아 또 다른 죽음을 만나게 될 것을 아는 소년이 스스로 흥분을 가라앉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내가 세력을 키우며 위험인물이 줄어들자 소년이 접하게 될 죽음도 줄었다. 이제 소년은 시체를 먹어치운 후엔 한동안 흥분해 몸을 떤다. 지금도 필사적으로 숨기려 하는 모양이었지만 소년을 끌어안고 있는 사내가 소년이 자극받은 것을 모를 리 없었다.

이럴 때 소년의 흥분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그는 알고 있었다. 사내는 자신에게 몸을 묻은 소년을 한 손으로 안고 다른 손으로 나이프를 꺼내든다. 날카로운 칼날이 살갗을 스치고 피가 쏟아지자 바로 반응이 돌아왔다. 소년은 사내의 품에서 고개를 들더니 피가 흐르는 사내의 손가락을 양손으로 움켜쥔다.

쿠로사키. 힘이 너무 센데.”

소년의 시선은 오롯이 그의 손가락에만 꽂혀있었다. 열기를 띤 소년의 눈은, 먹이를 포착한 맹금을 닮았다.

그렇게 조급해하지 않아도 되니까, 힘은 조금 빼고.”

감탄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를 흘리며 소년은 감격스레 사내의 손가락을 핥았다. 소년의 지독한 갈증을 풀어주는 것은 언제나 사내뿐이다. 흘러내리는 피를 남김없이 핥는 소년에게 사내의 차분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조금만 기다려. 쿠로사키.”

언젠가는 세상을 잠식하고 있는 적을 쓰러트릴 수 있을 것이다. 그를 끌어내려, 야망을 짓밟고, 세상을 그라는 괴물로부터 구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는 그를 무너뜨리기 위해 발밑을 파고 계략을 쓸 이유도 없어진다. 그렇게, 추잡한 수단을 내려놓고 세상을 지키는 것에만 오롯이 몰두하게 된다면.

곧 너를 해방시킬 테니까.”

그렇다면 자신뿐만 아니라 저것까지 자유로워질 것이다. 소년도 더 이상 주검을 삼키지 않고, 자신을 위해서 무리하는 일도 없이 평온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오래도록 따라붙은 죽음의 그림자를 서서히 떨쳐내고, 산 사람의 세상에서. 사내는 굶주린 소년을 달래며 적을 쓰러트리겠다는 다짐을 굳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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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현소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