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슌ts] 각인

2015. 10. 30. 01:17 from 03/2

 

  사내는 여자의 어깨를 덮은 숄을 벗겨냈다. 의자에 앉은 여자는 사내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은 채 인형처럼 얌전히 몸을 맡길 뿐이었다. 몸을 감싸던 것이 사라지자 여자의 희고 가느다란 몸이 드러났다. 앙상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그 몸이야말로 사내가 사랑해마지않는 것. 여자의 창백한 피부도, 뼈대가 드러나는 앙상한 몸도 전부 그에겐 빛나는 것이었다. 그에게는 여자의 결핍마저 잘 빚어낸 예술품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등이 깊게 파인 드레스는 그의 선물. 타인에게 드러내지 않았던 곳을 여자는 사내에게만 허락하고 있었다. 사내는 여자가 이 세상에서 인정하는 유일한 인간이 자신임에 새삼 만족했다. 사내는 깨지기 쉬운 물품을 대하듯 여자의 등을 조심스레 만졌다. 그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여자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여자의 등에는 흰 피부와 대조되는 검은빛의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검은 뱀이 기어가는 듯 마구 뒤엉킨 문양이 흥미로워, 사내는 그대로 그에 입을 맞췄다. 피부를 간질이는 감각에 여자의 몸이 일순 크게 튀었다. 그 강렬한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내는 탐욕스레 그녀에게로 파고들었다. 평소의 단정함과 침착함 따위 여자의 숄과 함께 털어낸 것처럼. 사내의 행동이 멎었을 때, 여자는 돌아보지도 않고 차게 말했다.

  “그 남자의 아들인 당신이 여기에 키스하다니, 우습네.”

  “아카바 레오와 관련이 있나?”

  “그 남자가 앗아간 것과 관련이 있지.”

  “평화? 하트랜드? 너의 동료?”

  “전부 잃은 것이니 무엇이라도 관계없겠지.”

  사내는 여자의 몸에 꿈틀대는 문신을 손으로 쓸어보았다. 그녀는 이것을 새기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빼앗긴 것을 염두에 두었다면, 그녀는 잃은 것을 기억하고자 했을까? 그 소중한 것을 앗아간 이에 대한 증오심을 태웠을까? 복수심을 끝없이 각인시키려 다짐했을까? 사내는 자신이 여자에게 있어 완전한 타인이라는 것이 순간 불쾌했다. 여자가 제 몸에 고통과 함께 새겼을 것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조차 그는 알 길이 없다.

  단 하나 그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여자는 여전히 과거에 매여 있다는 것. 이미 잃은 것을 위해 새긴 문신이 그 증거가 되고 있지 않은가. 현재의 사람인 그와 함께하면서도, 그의 도시에서 살아가면서도 돌이킬 수 없는 것을 완전히 놓아주지 못한다. 그건 얼마나 피곤한 방식인지.

  사내는 자신이 여자에게 1순위가 될 수 없음을 안다. 그녀가 자신에게 1순위가 아니듯, 그녀 역시 그를 최우선으로 두고 있지 않았다. 그가 최우선으로 하는 것이 미래라면 그녀가 1순위로 두는 것은 과거. 그럼에도 사내는 슬며시 질투가 일었다. 아직껏 그녀의 삶을 지배하고 그녀를 결코 놓아주지 않는 것이 못 견디게 부러웠다.

  “머잖아 그와 맞설 거다. 그 끝에 네가 잃은 것을 되찾을 수 있겠지.”

  때문에 사내는 속살거린다. 여자를 잠시나마 과거에서 자신에게로 오롯이 돌리고픈 욕망에서. 그 뒤에는 누군가에 대한 증오가 자리하고 있었다. 여자의 삶을 과거에 고정시키고, 자신의 삶마저 뒤흔든 괴물에 대한.

  “그렇게 되면, 너 역시도.”

  “여기에서까지 지휘관 행세야? 시시하긴.”

  여자는 한껏 깔깔대더니, 갑자기 몸을 돌려 순식간에 사내에게로 무너졌다. 보랏빛 눈과 금빛 눈이 서로를 비추었다.

  “싸움은 내 몫이야. 당신은 이 순간에나 집중해.”

  여자는 사내에게 키스했다. 아찔한 열기가 그들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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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현소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