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겨울을 닮아있었다. 겨울처럼 싸늘하다기보다, 겨울만큼이나 황량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겨울의 생명이 쓸모없는 것을 전부 버리며 생존하듯이, 잎을 떨구고 잠에 빠져들어 양분을 최대한 움켜쥐듯이. 필요한 것 외엔 전부 소거된, 황량한 사람이었다. 필요만을 남긴 사람이라는 것은 뼈대만을 남긴 건물처럼 황량하고 기괴한 것이어서, 사람들은 대개 그녀에게서 몇 발짝 떨어진 채 쉬이 가까워지지 못했다.
누군가는 여자를 두고, 유령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누군가는 살아있는 주검 같다고 했다. 감상이야 전부 달랐지만 그 아래 자리한 것은 같았다.
그녀는 너무도 소름끼치는 사람이라는 것.
평화로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극한의 상황에 내몰린 자의 생존방식을 알지 못했다. 그것이 얼마나 처절하고 불행한 것인지, 결과적으로 사람을 얼마나 황폐하게 만드는지. 그것은 말 그대로 생존방식일 뿐이었다. 그 외의 다른 의미 따윈 없었다. 여자는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사람이라면 으레 가질 것들을 전부 내버렸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아니, 그것이야말로 최선이었다.
사내는 안경 너머로 몰래 여자를 살폈다. 맞은편에 앉은 여자는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제 무기를 점검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싸움은 적을 무너뜨리기 위한 수단 이전에 생존을 위한 발악이었다. 그 처절한 방식은, 살아남은 이들만이 이해할 수 있을 터. 사내는 여자의 처절함을 굳이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싸움에 대한 집착도, 자신의 세상을 짓밟은 적에 대한 증오도. 그것은 그녀가 떠안아야 할 그녀만의 불행인 것이다.
삶을 지배한 불행을 감내하며 여자는 연민을 버리고, 가책을 버리고, 마침내는 인간성도 버렸다. 그만큼 짙은 불행을, 자신이 이해할 수 있을 리 없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의 내부를 파고들면 그녀가 잎을 떨구고 생명을 몰아내게 만든 맹렬한 추위와 맞닥뜨릴 것 같았다. 그녀를 저만큼 황폐하게 만든 재앙에 짓눌릴 것만 같았다.
사내는 이곳 사람들이 그녀에게 다가서지 못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첫째가 필요한 것만을 남긴 그녀가 소름끼치기 때문이라면 둘째는 그녀의 삶을 잠식한 불행이 희생자를 노리는 양 넘실대는 탓이다. 그 지독한 것에 자신마저 전염될까 본능적으로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들의 판단은 옳았다. 그녀의 불행이 이곳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해도, 그녀가 평화로운 이 세상에 몸을 의탁하고 있다 해도 그녀의 삶을 잠식한 불행은 아직껏 그녀의 내부에서 활개치고 있었다. 뿌리내린 땅을 나날이 말려죽이며, 건재함을 과시하는 것이다.
불행은 그녀라는 땅에 뿌리내린 모든 것을 앙상하게 만들고는, 그들에게 가야 할 양분을 전부 가로채 생존하고 있는 것이다. 불행의 침략에 사라진 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녀처럼 살아남은 이들조차 불행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래서였다. 불행이 불러온 사나운 바람과 날카로운 추위는 시시각각 여자를 옥죈다. 여자는 모든 것을 움켜쥐고 말라가느니 최소한의 것만을 남기고 봄을 기다리기로 했으리라. 언제 찾아들지도 모를 봄을 위해 스스로 겨울이 되어 잎을 떨어트리고 웅크려 잠들었으리라.
바삐 움직이던 손가락이 멈췄다. 무기를 점검하는 것을 끝마친 것이다. 여자가 다음 싸움을 위해 어떤 무기를 준비했는지, 어떤 무기를 숨기고 있는지 사내는 모른다. 그러나 그 하나하나가 치명적이리라는 것은 안다. 그녀에게는 매순간이 마지막 기회일 테니. 따라서, 적을 단번에 짓밟아야 할 테니.
“뭘 그렇게 보고 있지?”
경계 가득한 날카로운 목소리에 사내는 안경을 고쳐 썼다. 그녀에게 시선을 너무 오래 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여자는 타인의 시선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당신 눈, 마음에 안 들어.”
해부하는 것 같단 말이지. 여자는 불쾌감을 숨기지 않고 쏘아붙였다. 피차 기대하는 것 없는 관계이기 때문일까. 그들은 차라리 솔직했다.
“그래서, 사람을 그렇게 뚫어지게 훑으면 뭐라도 보이나?”
“너에게서 무엇을 보았는지 궁금해?”
심술궂게 물었다. 만일 그녀가 그렇다고 한다면, 그녀에 대해 지금까지 내린 모든 판단을 남김없이 읊을 작정이었다. 자신이 얼마나 황폐한 사람이며 얼마나 처절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타인의 말로 새삼 깨닫게 하려고. 그러나 여자는 말이 없었다. 표정 없는 얼굴은 싸늘했다.
“궁금하지 않은 모양이군.”
“당신이 볼 것이라곤 뻔하니까.”
여자는 지극히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것도, 정말로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풍경이었겠지.”
“알고 있었나?”
“전부 버렸는데, 남은 게 있을 리가 없잖아.”
여자가 웃었다. 그것은 자조에 가까운 것이었다.
“사람들은 내게서 아무것도 보지 못해. 모든 것은 저곳에 버리고 왔으니까.”
“하트랜드에?”
여자는 굳이 답하지 않았지만, 사내는 답을 알 것 같았다.
“그런데도 용케 살아가는 건가.”
“살아남기만을 바란다면 그렇게 많은 건 필요 없지.”
여자는 자신의 무기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 아직껏 자신에게 따라붙는 불행을 생각한 것일까. 아니면 지금껏 거친 투쟁을 떠올린 것일까. 알 길은 없다.
“살아남는다면, 목적이 종료된다면, 버린 걸 되찾을 수 있나?”
사내는 이것이 궁금했다. 목적이 종료되고 불행으로부터 벗어난 그녀는, 살아남기 위해 버린 것을 되찾고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다시 싹을 틔우고 생명을 깨울 수 있을지.
“그럴 리가 없잖아.”
여자가 깔깔댔다. 마지막 희망조차 흩어버리며.
“내가 버려야 했던 건, 버린 순간 썩기 시작했지. 이제 와서 찾는다 해도, 이미 썩어 흩어진 지 오래일 거다.”
참혹한 이야기였으나, 여자의 목소리에는 별달리 감정이 묻어나오지 않았다. 슬픔도, 원망도, 분노도. 전부 내부에서 삭였기 때문이리라. 슬프게도 사내는 그 순간 그녀에게서 몇 발짝 떨어져 가까워지지 못하던 이들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너무 많은 것을 잃고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하고 너무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 처절하게 연명하고 있었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울 지경이었다.
“너무 힘들게 살아왔군.”
“그래서 동정해?”
여자는 짓궂게 물었다. 참으로 지독한 질문이었다.
“나는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선 함부로 동정하지 않아.”
불행을 경험하지 않은 이로서, 그녀의 삶은 끝내 이해하지 못할 테니 동정하는 일도 없으리라. 여자의 얼굴에 설핏 걸렸던 흥미가 무력하게 허물어졌다.
“그것 참 다행이네.”
여자는 무기를 쥔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들 사이에 더 할 말은 없었다. 처음부터 공동의 목적을 위해 출발한 관계. 이 이상 서로에 대해 파고들 이유는 없었다. 다시 본래의 위치로 돌아가 자신의 의무만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여자는 미련 없이 그의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멀어져가는 여자의 모습을 보며 사내는 결론지었다.
불행이 떠나더라도 그녀는 지금처럼 고목처럼 앙상하게 살아가리라고. 불행 이전의 삶으로는 결코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다시 싹을 틔우는 일은 없으리라고.
그녀는 영원히 황량한 겨울로 살아가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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