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포식자는 우리에 갇혀서도 야성을 쉬이 내려놓지 못하는 법이다. 부질없는 저항을 반복하여 발톱이 부러지고 부리가 뭉툭해지더라도. 날개가 짓이겨져 다시는 비상을 바랄 수 없을지라도. 그 하잘것없는 야성이 그들의 뼈에 새겨진 본능인 탓이다. 몸을 옥죄는 우리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을 알고 있다. 다시는 본래의 터전으로 돌아가지 못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도 본능에 따라 매순간 투쟁한다. 참으로 처절한 생존방식이 아닌지. 짐승을 가둬둔 우리로 향하며, 소년은 입매를 비튼다.
발소리를 죽였음에도, 우리에 갇힌 짐승은 귀신처럼 인기척을 느끼고 낮게 으르렁거렸다. 한때 포식자였다 해도 지금은 붙들린 신세. 가련한 약자에 지나지 않음에도 저렇듯 야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어둑한 우리에서 몸을 웅크린 채, 먹잇감을 위협하듯. 스위치를 누르자 우리에 달린 전등이 켜지며 일시에 공간이 밝아졌다. 어둠에 익숙해졌던 짐승이 반사적으로 눈을 크게 떴다.
“안녕, 잘 있었어?”
답이 돌아올 리 없는 인사를 던지며 소년은 친근하게 손을 내민다. 짐승의 금빛 눈이 소년을 꿰뚫었다. 아니, 눈앞의 그것을 짐승이라고 하기엔 위화감이 있었다. 낮게 으르렁거리던 것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 희고 가는 몸을 검은색으로 가린 청년이었다. 그를 감싼 모든 것이 검었다. 창백한 피부와 그 위를 덮은 검은색의 대조가 기묘한 미를 이룬다.
청년은 내민 손을 세게 물어뜯었다. 소년은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얼마간 그에게 손을 내어주었다. 관대한 주인이 기르던 것의 장난을 용납하듯.
“뭐, 말짱한 것 같네.”
청년에게서 손을 빼낸 소년이 가볍게 말했다. 푸른 눈에는 정복자로서의 여유가 비친다.
“내가 왜 너를 살려두고 있는지 알아?”
소년이 물었다. 청년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너는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창살에 바짝 붙은 청년의 녹색 머리카락을 소년은 가볍게 쓸었다.
“검은색은 망자의 색. 난 산 사람에겐 검은색을 씌우지 않아.”
청년의 금빛 눈이 일순 흔들렸으나, 그뿐. 손 안의 짐승을, 소년은 나긋하게 농락한다.
“살아가야 할 이유도, 살아가게 하던 이도 사라졌어. 삶의 목적인 사명이 꺾였으니 삶에 대한 미련도 없겠지. 그 모든 게 사라진 사람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야.”
한때 야생의 포식자였던 청년은 모든 것을 잃고 우리에 갇혔다. 살아갈 터전은 진즉에 잃었다. 함께하던 동족도 악랄한 정복자에게 전부 짓밟혔다. 마지막 투쟁조차 꺾였다. 그렇다면, 이제 포식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날개조차 제대로 펴지 못할 우리에서. 포식자로서의 생명은 끊어졌다. 이곳에서 목숨을 부지하는 것은, 정복자의 손에서 농락당하는 것은 포식자가 아닌 먹잇감일 뿐이다. 포식자였던 시절의 본능만이 남아 처절하게 으르렁거리는. 우리 속의 짐승은 그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죽은 사냥꾼이었다.
“이름이 아깝게 됐구나, 슌.”
본능만이 남은 포식자를, 아니, 먹이사슬의 최상부에서 추락한 가련한 사냥감을 정복자는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잊었던 과거의 이름에 짐승은 격렬하게 꿈틀댔다. 그러나 그뿐, 이내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양 몸을 말 뿐이다.
날이 갈수록 포식자의 발톱은 무뎌지고 부리는 뭉툭해질 것이다. 부질없이 날을 세우던 야성이 잦아드는 날도 마침내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그것은 마침내 완전히 생을 다하게 되리라. 마지막까지 간직하던 포식자로서의 본능조차 잃는 것이니.
“나는 네가 완전히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어. ”
그 날이 오면, 저것이 으르렁거리는 것조차 잊는 날이 온다면, 그가 본능에 근거한 부질없는 저항조차 잊게 된다면.
“나는 그 날이, 몹시 기대돼.”
우리 속의 짐승을 보며 소년은 천진하게 웃었다.
'03 > 1'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데니스+여슌] 말라붙은 독 (0) | 2020.03.31 |
---|---|
[소라+슌] 조각2 (0) | 2015.10.30 |
[ts슌] 조각1 (0) | 2015.10.30 |
[유토+슌] 조각3 (To. 훈님) (0) | 2015.10.30 |
[유토+슌] 조각2 (To. 블랑님) (0) | 2015.10.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