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동명이인)중심] 환영의 이름
소년은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 이름이 누구에게서 물려받은 것인지 짐작할 수 있기에 그랬다. 부모 중 누가 지었는지 명확하지 않은 이름이었지만 분명히 어머니 쪽에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유토. 소년은 어머니가 ‘유일무이한 친우’라 생각한 사람이 그렇게 불렸음을 안다. 그 사람이 소년기에 실종되었다는 것도. 말이야 실종이었지만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도. 때문에 그 사람은 소년의 모습으로, 어머니의 기억 속에 박제되었다는 것도.
그렇다면 출처가 명확한 자신의 이름은, 결국 망령의 이름이 아닌가. 소년은 어머니의 과거 기록에서 ‘유토’를 찾아낸 것을 후회했다. 그를 찾지 않았다면, 자신의 이름에 아무런 감정도 없었을 것이다.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의 유물을 자신의 이름으로 꺼내는 데 거리낌이 없었을 것이다. 그를 찾아냄으로써 소년은 알 필요 없는 것을 너무 많이 알았다. 이를테면, 자신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어머니의 지인이 처연한 웃음을 지은 이유 같은 것.
물론 아무리 그 사람의 흔적을 뒤져도, 자신과 닮은 부분을 찾아낼 수 없는 소년이었다. 그와는 피가 섞이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사라진 사람이니, 영향을 받을 정도로 함께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아무런 접점도 없는 사람의 이름을 짊어졌다는 점이 소년은 특히 불쾌했다. 아직 풀리지 않은 감정이 남은 사람을, 그와 무관한 아이를 통해 이름이나마 되살린 것 같아서.
어차피 그에 대해 알게 될 것이었다면 좀 더 일찍 아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소년이 열 살이 되던 해 죽었다. 소년이 ‘유토’를 알게 된 것은 열두 살 때였다. 이제 와선 왜 하필 그에게서 자신의 이름을 따왔느냐고 물을 수도 없다. 의문과 불쾌가 뒤섞인 복잡한 마음을 그저 안고 살 수밖에.
어머니를 아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가 정말로, 돌아올 수 없게 된 사람에 대한 그리움으로 아들에게 그 이름을 붙여줬다고 해도 소년은 어머니를 원망할 생각은 없었다. 어머니의 이른 죽음은 결국 전쟁 후유증 때문이었다. 십대에 전장에 내몰려 싸우다 모든 걸 잃은 사람이 바로 어머니였다. 하나뿐인 동생도, 친우도 전쟁의 끝에 사라졌다. 전쟁은 끝냈지만 고향은 이미 폐허였다. 자신을 갉아먹으며 싸운 대가로 몸은 일찍부터 망가졌다. 그렇게 지친 사람이, 잃은 것에 대한 미련을 오래 가져간다고 누가 비난할 수 있겠는가. 전쟁을 모르는 소년조차 어머니를 연민했다.
어떤 의사도 어머니에게서 특별한 병을 찾아내지 못했으나 어머니는 분명히 아팠다고, 아버지는 이야기했다. 끔찍한 기억만이 남은 고향을 버리고 타지에 정착한 어머니는 그럼에도 전쟁의 기억에 괴로워했다. 어머니를 지배한 그 처참한 재앙이 결국 어머니를 말려갔다. 황폐해진 정신은 약해진 몸을 더욱 망가뜨렸다. 망가진 몸은 다시 정신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처참한 연쇄의 끝은 죽음이었다. 도피하듯 택한 결혼도, 자신을 사랑하는 가정도 어머니를 구해주진 못했다.
가끔 슌이 열일곱 살을 계속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언젠가 엿들은, 아버지의 통화 내용이었다.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침울했다.
[전장에서 싸우던 시기인 동시에, 슌이 사랑하던 두 사람이 살아있었던 때 말이야.]
[현재를 살지 못한다?]
[나는 그렇게 느껴.]
[어차피 그때는 돌아오지 않잖아. 두 사람도.]
[그래서 나아질 거라 생각했지. 유토, 아니 그쪽 말고, 내 아들. 그 애도, 나도 있으니까. 나는 슌을 여기 붙잡아둘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버지는 전화기를 든 채 한참 침묵했다. 소년은 아버지의 입이 열릴 때까지 숨을 죽이고 있었다.
[돌아오지 않으니까 그때에 머물러 있을지도 모르지. 그 시간 속에서 두 사람은 영원해. 열네 살의 모습으로나마.]
[전쟁이 끝나지 않은 때라면 본인에게 가장 가혹했던 시간이기도 한데도?]
[어차피 전쟁의 기억에선 벗어날 수 없으니까, 그나마 사랑하는 사람이 있던 때. 일까. 하지만 그 시간은 슌을 구해줄 수 없지. 우리는 줄곧 노력해왔어. 슌은 현재를 살아가려고, 나는 슌이 잘 적응할 수 있게 하려고. 하지만 둘 다, 실패한 거야. 그럼에도 나는 그들을 앞설 수 없고, 슌은 어쩔 수 없이 과거를 사랑해.]
[네가 부족했던 건 아냐. 슌도 시간이 지나며 많이 나아졌고. 네 말대로 둘 다 노력하고 있잖아, 그러니까.]
[그런데 왜 아직도. 나는 왜 아직도 슌을 그 시간에서 데려오지 못해.]
거기서 소년은 슬금슬금 움직여 방으로 돌아갔다. 아버지의 말을 더 듣고 있기 힘들었다. 마디마디 괴로움이 박힌 것 같아서였다. 문을 닫고도 한동안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감정이 타오르는지, 드문드문 크게 떨리기도 했다. 한참이나 지나 자리를 비웠던 어머니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웃으며 아내를 맞았다.
가족의 삶은 그런 식이었다. 어머니는 노력했고 아버지도 노력했다.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도 없는 가정이었으나 어딘가 곪은 곳이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서로 앞에서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이 없었다. 숨기거나, 외면하거나, 혼자 괴로워했다. 혹 꺼내더라도 타인에게 호소하는 정도였다. 어머니가 죽기 직전까지도 아버지는 나머지 둘 앞에서 ‘문제’를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어머니가 죽은 후에는 아예 타인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어머니와 함께 묻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어머니의 과거와, 그로 인한 고통, 그것이 해소되지 않아 생긴 그림자.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걸 꺼내지 않으려 끝까지 노력했다면, 명확히 알지 못하는 소년 또한 그래야 했다. 아들과 단둘이 있을 때면 아버지는 어머니가 가엾다고 했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불쌍한 사람이라고 했다. 소년은 둘 다 가엾게 느껴졌기에 둘을 위해 침묵하기로 했다. 자신의 이름이 불편하다고 해도 모두의 앞에서 이름의 본래 주인을 들먹이는 것은 두 사람이 묻어둔 것을 파헤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소년은, 누구의 것인지 분명한 이름을 안고 살아왔다. 이름의 출처를 짐작하는 사람과 만날 때마다 마주하는 꺼림칙한 반응을 모르는 체 넘기면서였다. ‘유토’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어머니를 알던 사람이 보이는 반응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차마 말은 하지 못하는 것인지 어색하게 웃는 것이었다. 그 뒤에 숨겨진 감정이 뭔지, 소년은 모르지 않았다. 나머지 하나는 이런 식이었다.
[그럼 네 여동생이 태어나면, 그 애는 루리일까?]
어머니가 어떻게든 전쟁에서 구하려 싸웠던 사람은 둘. 하나는 유일무이한 친우라고 표현한 소년, 유토. 다른 하나는 어머니의 하나뿐인 동생, 루리. 전쟁의 끝에 실종된 것은 친우뿐만이 아니었다. 동생마저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소년이 제 이름을 말했을 때 돌아오는 말은 바로 그 사라진 동생을 들먹이는 것이었다.
‘유토’의 이름을 재현하려 한다면, ‘루리’도 재현할 생각이냐고.
어머니가 그런 말을 들었다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이름의 출처를 알고부터, 소년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친우 이상으로 사랑했을 가족을 그렇게 들먹이는 걸 들었다면. 괴로웠을까? 비참했을까? 화를 냈을까? 물론 전부 무의미한 생각이었다. 어머니는 이미 죽었고, 죽기 전까지 소년은 그 말의 의미를 해석할 수 없었으므로. 태어나지도 않은 동생에 대해 멋대로 생각하는 것도 무의미한 건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소년은 그 꺼림칙한 말을 웃어 넘겼다. 현재의 사람으로서, ‘유토’나 ‘루리’ 같은, 과거의 사람 따위 모르는 체.
물론 소년 역시 모르고 싶었다. 자신에게 일부러 감춰왔을 부모님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살고 싶었다. 소년에게 과거의 두 사람은 단절된 인간에 불과했다. 과거가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그 과거에 있었던 사람뿐이다. 그들과 소년 사이에 어머니라는 접점이 있다 해도, 겪은 적 없는 인간에 얽매일 이유가 없었다. 소년은 이미 사라진 인간을 굳이 세상에 묶어두고 싶지 않았다. 과거는 과거로서 사멸하는 게 옳았다.
어차피 그들은 점차 지워질 것이다. 과거로 남은 사람이란 그럴 수밖에 없다. 기억하는 모두에게 마지막 모습만 전시되다 서서히 흐려질 뿐. 소년은 그들과 관계없는 삶을 계속 살아갈 것이고, 그들은 어느 순간 이름마저 흩어지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의도적으로 그들에 대한 관심을 줄이던 소년에게 어느 날 생각지 못한 것이 찾아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던 소년은 여느 때와 같은 풍경 속 너무도 이질적인 것을 발견했다. 그 순간 소년은 정지했다.
지워졌던 사람들이 서 있었다.
*
소년의 금빛 눈에 두 사람이 새겨졌다. 어디로 갈지 모르고 헤매는 모습이 언뜻 봐도 이방인 같다. 소년이 지켜보는 동안 그들은, 십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녀는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무언가 계속 물었다. 어느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도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혹시 이곳에, ‘쿠로사키 슌’이라는 사람이 있나요. 그들이 꺼내는 것은 어머니의 이름이었다. 몇 년 전에 죽어, 이제는 세상에 없는 사람.
두 사람이 소년의 어머니를 찾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들에게 그녀는, 소년에게 어머니가 그러했듯 소중한 사람이었으니까. 한쪽은 그녀의 친우고 다른 한쪽은 그녀의 동생이다. 소년은 그들의 말을 듣기 전부터 이미 둘의 정체를 눈치챘다. 어머니가 간직하던 사진 속에서 그들을 본 적이 있었기에. 다만 그것은 이십여 년 전의 사진. 두 사람은 지금 십대 중반이 아닌 성인이어야 했다. 이십여 년이나 자취를 감췄던 그들은 실종 당시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저기, 하나만 물어도 될까요.”
어느새 소년은 자기 앞에 선 둘을 볼 수 있었다. 계속 같은 자리에 붙박여 있었더니, 자신에게까지 찾아온 모양이었다. 말을 꺼낸 것은 여자 쪽. 곁에 선 남자 쪽은 굳은 얼굴로 주먹을 쥐고 있었다.
“말씀하세요.”
“여기, 쿠로사키 슌이라는 사람이 있나요?”
짐작했던 대로의 질문이었다. 소년은 그 기막힌 질문에 바로 답해주는 대신 물었다.
“무슨 관계죠?”
“아, 아시는 모양이네요. 저는 그 사람의 동생이에요.”
“슌은 아마 이곳에 있을 거다, 생각하고 왔지만 여기는 이상하게 너무 많이 바뀌어서 찾는 것도 자신이 없군요.”
“바뀔 만도 했죠. 지금이 몇 년인지 아세요?”
두 사람은 눈을 둥그렇게 뜬다. 질문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리라. 소년은 여자 쪽이 입을 열 때까지 여유롭게 기다렸다.
“XXXX년 아닌가요?”
소년은 답 대신 자신의 휴대폰에 찍힌 날짜를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불신이 비쳤던 얼굴이 모든 기기에 같은 숫자가 찍힌 것을 알고는 일그러졌다. 그들이 기억하던 시간과 현재에는 이십 년 가량의 간극이 있다.
“무슨 의미인지 알겠어요? 당신들이 아는 쿠로사키 슌은, 그만큼 나이를 먹었다는 것.”
“그래도 상관없어요. 슌을 아는 것 같으니, 만나게 해줘요.”
“아는 건 맞지만.”
소년은 돌아서서 나아갔다. 두 사람이 머뭇거리면서 뒤따라오는 걸 느끼고, 소년은 즐거이 말을 이었다.
“안내해줄게요. 그 사람이 살았던 곳.”
사는 곳이 아닌 살았던 곳이라는 과거형인 이유를 두 사람은 아마 모를 것이다. 이십여 년을 지워진 그들은 기억과 현실 사이의 충격적인 공백과 소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정신이 쏠려 있을 테니까. 소년은 그들을 안내하며 어머니가 남긴 기록을 생각했다. 건조한 문장으로 담아낸 것은 돌아오지 않는 이들에 대한 괴로운 감정이었다. 어머니가 죽을 때까지 괴로워하게 만든 사람들이 여기에 있다. 이제 와서 어머니를 찾고 있다.
어머니라면 그 사실에 감격했을 것이다. 그들의 부재에 그렇게나 괴로워하고도, 돌아왔다는 것만으로 행복해져 둘을 끌어안을 것이다. 그러나 소년은 달랐다. 소년에게 그들은, 굳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자들이었다. 어머니의 고통스러운 과거를 상징하며, 내내 어머니를 괴롭혔고, 때문에 자신이 일부러 외면하고 있던 자들. 그런데도 그들을 안내하는 이유는 그들 또한 충격에 빠지는 것을 보고 싶어서일 뿐.
악의를 숨긴 채 집에 도착한 소년은 문을 열면서 아버지에게 외쳤다.
“사람을 데리고 왔어요.”
“드문 일이구나. 친구?”
“아뇨. 이모랑 어머니 친구.”
그때 소년의 입에 걸린 웃음을 본 건 아마 아버지가 전부였으리라. 소년을 뒤따라온 두 사람은 그대로 얼어붙었으니까. 아버지는 두 사람을 보고도 믿기지 않는지 아들에게 확인을 요구했다.
“다시 말해봐, 유토.”
“이모랑, 어머니 친구요. 쿠로사키 루리와 유토.”
“잠깐만, 그러니까.”
그제야 남자 쪽이 입을 열었다. 소년에게 이름을 물려준 ‘유토’가.
“시간이 한참 지났다 했잖아요. 쿠로사키 슌이 결혼을 하고 그 아이가 당신들 나이를 넘었다 해도 놀랄 건 없지 않나?”
흘러나온 목소리는 소년이 의도한 것보다도 심술궂었다. 그래도 이야기하는 것은 전부 사실이었다. 소년은 그들이 이십여 년을 멈춰있었던 탓에 그들의 나이를 이미 넘어섰다. 열여섯 살이 된 자신이, 열네 살로 남은 어머니의 친우와 이야기하는 건 제법 괴상한 풍경이었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그쪽의 이름을 붙여줬다고 해도.”
아버지도 소년의 말에 당혹스러움을 숨기지 못했다. 실수로라도 꺼낸 적 없는 것을 아들이 알고 있었으리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슌은?”
긴 침묵 속에서 입을 연 것은 ‘유토’ 쪽이었다.
“아, 어머니는.”
“너는 들어가 있어. 내가 이야기할 테니까.”
거기서 말을 자른 아버지는 소년의 방을 가리켰고, 이미 목적을 어느 정도 이룬 소년은 별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어차피 누구에게 들으나 그들에게 충격적인 내용인 것은 같았다. 문을 닫아도 바깥의 소리는 잘 들어오는 방이라, 세 사람의 대화를 듣는 데도 문제가 없었다.
[슌은 저 애가 열 살 되던 해 죽었어요. 이미 몇 년 전이죠.]
[죽어요?]
[전쟁이 끝나고는 내내 몸이 안 좋았어요. 그렇다 해도 너무 일찍 죽었지만.]
[슌이, 죽어?]
[그래. 당신들이 돌아올 수 있다는 것도 모르고 죽었고, 돌아온 당신들도 만날 수 없다고.]
아버지의 목소리는 여느 때와 달리 날카로웠다. 울분이 날을 벼린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죽기 전까지 슌의 삶엔 당신들이 있었어. 나는 슌이 당신들이 살아있었던 때를 포기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지. 현재를 살아가면서도, 나와 함께 살면서도, 아이가 태어났는데도.]
[……돌아오고 싶었어요. 내내. 남겨진 언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
[완전히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며 살아가는 건 아무리 슌이라도 너무 괴로울 테니까, 그렇게 생각해서 끝까지 세상에의 끈을 놓지 않고 돌아왔지만.]
너무 늦은 거예요. 아마 ‘유토’의 말에는 그 부분이 생략되어 있을 것이다. 그들이라고 이십 년 가량이나 세상에서 지워지고 싶었을 리 없다.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모두가 괴롭다.
[당신들을 탓하는 건 아니에요. 그게 왜 지금이었냐는 거지.]
그럼에도 아버지는 고통스럽다. 몇 년 더 빨라서, 최소한 어머니가 죽기 전이었다면 어머니는 끝까지 그들의 생각으로 괴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예 늦어서 그들에 대한 감정이 전부 걷혔을 때라면 지금보다 나았을 것이다. 아버지가 두 사람과 친분이 있었다면 두 사람의 복귀를 순수하게 기뻐할 수 있었겠지만, 그것도 아니다. ‘아내의 소중한 사람’에 불과한 그들은 유령 같은 처지로 얼마나 오랜 시간 그에게 존재를 주장해왔는지.
거기다 그들은 언제나 아버지의 약점을 건드리곤 했다. 아버지는 그들로 대표되는 아내의 과거를, 자신은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내가 슌에게 돌파구에 불과하더라도 괜찮았어. 슌이 나를 끝까지 사랑하지 않아도 좋았어. 그래도, 최소한……]
아버지는 힘겹게 말을 이었다. 오랜 시간 쌓여 독이 된 감정이 이제야 터져 나온다.
[최소한, 슌을 구해내자고 생각했는데. 나는 언제나 당신들에게 패했어. 슌을 고통스러운 과거에서 데려오지 못했다고.]
[그래도 힘을 다해 언니의 삶을 지탱해준 거잖아요?]
[하지만, 내가 노력해봤자.]
[다들 슌을 보고 평범하겐 못 살 거라고 했어요. 너무 망가져 버렸다고. 전쟁이 끝나도 평화 속에 적응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그래도 이렇게 특별할 것 없이 살았다는 건, 이곳에서의 삶이 슌에게 나쁘지 않았던 거겠죠.]
아버지에게 패배감을 안겨주었던 자들이, 아버지에게 위로를 건네고 있었다. 자신들이 사라져 있던 동안 소중한 사람과 쭉 함께해준 사람에게, 아마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그들은 자신들의 부재 이래로 어머니가 어떻게 살았는지는 모르지만, 이전의 어머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가 노력해왔음을 이해하는 것이리라.
[아직도, 내가 슌을 제대로 도왔다면, 당신들의 일로 그렇게 괴로워하진 않았을 거란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요.]
그러나 한참이나 지나 아버지가 토해낸 것은 이미 곪을 대로 곪은 감정이었다. 아무래도 오랜 시간 꼬인 것을 쉽게 풀어낼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세 사람 모두 그 참담한 생각에 어떤 말도 더할 수 없었으므로, 이야기는 거기서 끊겼다.
*
“언니를, 많이 닮았네.”
어머니에게 다녀온 두 사람은 슬그머니 소년을 붙잡아 말을 걸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들이라는 것이 어쩔 수 없는 미련을 안겨준 것이리라. 긴 공백 동안, 그들이 돌아가려고 했던 사람은 죽었다. 세상에 남은 것은 그 사람에 대한 기억과 많지 않은 기록, 그리고 그녀와 함께한 사람들 뿐. 그 중에서도 두 사람에게 가장 애틋하게 다가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혈육일 것이다. 그녀에게 많은 것을 물려받았을, 하나뿐인 자식.
“지루할 정도로 들은 말이네요.”
소년은 심드렁하게 답했다.
“특히 눈이 닮았다. 그런 말을 할 생각이에요?”
“그래. 맞아. 눈을 보고 있으면 정말로 슌이 생각나거든.”
“자식은 부모를 닮아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주 소년에게, 할 필요 없는 말을 했다.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 어머니가 일부러 꺼내지 않았던 것들. 소년을 보면 어머니가 생각난다며. 결국 그들이 꺼내는 것은 소년에겐 의미도 없고 생소할 뿐인 옛 이야기에 불과했다. 소년에게서 소년이 아닌, 자신들이 아는 사람을 찾아낸 탓이다.
“그래봤자 별개의 사람이지만.”
“언니를 바라는 건 아냐. 환경도 경험도 다른데.”
그렇게 말하긴 해도 소년은 ‘이모’의 눈에서 온갖 감정을 읽어낼 수밖에 없었다. 어릴 때부터 생각했지만, 소년은 어머니를 너무 많이 닮았다.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 어머니의 흔적을 찾겠다는 두 사람이 아버지의 제안으로 며칠 집에서 머무르는 동안, 소년은 자꾸만 자신에게 쏟아지는 둘의 시선을 느꼈다.
그들의 시선에는 때로 그리움이 담긴 것 같고, 때로는 후회가 비치는 것 같았으며, 가끔은 본인들도 눈치채지 못할 기대가 드리워지기도 했다. 그들은 저도 모르게 죽은 사람을 생각하고 있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서, 그것도 이미 한 세대 아래의 인간에게서. 얼마 전까지 과거의 시간대에 멈춰있던 사람이 바로 현재를 생각하는 것은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그들이 찾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데. 누구도 그 대체가 될 수 없는데.
그래도 곧 돌아갈 것이다. 소중한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그러면 그들도 천천히 현재에 적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기억하던 시대와는 완전히 달라진, 오늘에 살아야 할 테니까. 아무리 과거의 흔적을 쫓은들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그들이 그리워하는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소년은 그들에게 ‘소중한 사람의 아들’로서는 몰라도 ‘죽은 사람을 비춰볼 수 있는 것’이 되고 싶지는 않았으므로, 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때만을 기다렸다.
두 사람이 돌아가겠다고 한 지 보름쯤 되었을 때였다. 소년은 집 근처에서, 두 사람과 다시 마주쳤다. ‘유토’는 만나자마자 소년에게 간식을 한 아름 안겨주었다.
“여기 계속 있는 거예요?”
“아. 전쟁 피해자 지원으로 생활에 문제가 없게 되었거든. 살 곳도 구했고.”
“하트랜드론 돌아가지 않으려고요?”
분명히, 끝날 것이라 생각했다. 그들이 돌아가서 저들 나름대로 살아갈 것이라 생각했는데. 소년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비쳤는지, ‘이모’가 웃으며 설명했다.
“언니도 없는데, 그동안 너무 낯설게 변했을 곳에 굳이 갈 이유는 없잖아.”
“어머니와 비슷하네요.”
“뭐가?”
“고향으로 가지 않고 여기 마이아미에서 살기로 한 게, 두 사람이 없는데 굳이 괴로운 곳에 갈 필요가 없어서였대요.”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고, 소년은 생각했다. 전쟁 직후의 고향은 처참한 모습이었을 테니 그런 곳에서 살아봤자 더 비참해지기만 했을 것이다. 그나마 어머니가 안정을 찾고 생활할 수 있었던 것도, 폐허가 아닌 평화로운 이 도시에서 지냈기 때문이리라. 물론 지금 어머니의 고향은, 두 사람이서 가기로 했던 곳은 복구 작업이 끝나 사는 데 불편이 없을 것이다. 그들이 그곳에 가기를 포기한 것은 결국 그들이 찾던 것이 영영 없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냥 근처에 온 거죠?”
“찾아온 거면, 안 돼?”
“그쪽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아요.”
소년은 받은 것을 대충 챙겨 집으로 돌아가려다 멈칫했다. 두 사람이 가져온 건 어머니가 좋아했던 것이었다. 이런 곳에까지. 소년은 얼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정말, 그쪽도 그때의 모습 그대로가 아니라 나이를 먹어서 돌아왔으면 나았을 텐데.”
“뭐가 다른데?”
“나이를 먹었으면, 그래도, 아. 그래도 어딘가에서 잘 살았구나. 그렇게 편하게 생각하고 넘길 수 있잖아요.”
“그래도 너는 우리를 좋아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건 어쩔 수 없고요.”
소년은 솔직하게 답했다. 어머니와 가까운 사람이었다는 이유로 자신의 감정마저 속이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사실, 좋아하지 않는다보단 껄끄럽다 쪽인 것 같거든요. 처음엔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어디가 껄끄러운데?”
“과거의 사람이잖아요. 나는 그 과거 같은 거 몰라요.”
어머니는 그들을 사랑했기에 그들이 있는 과거를 끝까지 사랑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과거를 알기 때문에, 어머니가 과거에 붙잡혀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도 그 과거를 질투했다. 그들은 과거의 사람이기에 자신들의 기억에 남은 과거를 찾아 헤맸다. 그러나 소년은? 그만은, 과거와 무관한 현재의 사람이었다. 기록을 통해 과거의 일을 확인하고, 조각난 과거를 어쩔 수 없이 듣게 되더라도 그 모든 것은 소년의 것이 아니었다.
겪지 않은 시간. 무관한 시간. 그런 낡은 것이 현재를 잠식하는 것은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과거의 사람들은 과거를 생각한다 해도, 현재의 사람이 과거를 살아갈 이유는 없다. 그런데 모두 그에게서 과거를 보고 있지 않은가. 과거에서 막 걸어 나온 두 사람은 아예 그에게서 과거를 기대하기까지 했다. 소년이 두 사람을 껄끄러워했던 것은 바로 그 지점이었다. 자신을 과거에 담근다는 것.
“그런데 그 과거 때문에 내게서 내가 아닌 것을 기대한다는 게 얼마나 이상한지 알아요?”
‘유토’라는, 죽은 것으로 되어있었던 사람의 이름. 죽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깃든 타인의 시선. 그것이 소년에게 어떻게 다가왔는지는 소년만이 안다.
“우리가 그랬어?”
“언제나요! 내가 누구의 아들인지 알고부턴, 언제나!”
“미안해. 사실은 아직도 실감이 나질 않아.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것도, 슌이 죽었다는 것도, 그리고.”
“그 아들이 이만큼 자랐다는 것도요?”
열여섯의 소년은 이십여 년 전에 이미 열넷이었던 두 사람보다 컸다. 두 사람이 멈춰있던 시간은 그렇게나 무거운 것이었다. 그 시간 동안 수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들만 빼고, 그 시대에 자라나던 사람들도 다 세상에 맞춰 달라졌다. 그 사이에 태어난 소년은 당연히 두 사람의 시대와는 무관했다.
“그쪽이 멈춰있었다고 시간이 흐르지 않은 건 아니잖아요. 존재하지도 않았던 내가 태어났고,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그때 청년이었던 아버지는 이제 저 나이가 됐어요.”
소년은 그간의 변화를 열거했다. 그들이 인지하지 못한 때 일어난 것들을.
“어머니가 건강 때문에 프로에서 은퇴한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고요.”
마지막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현재의 이야기여야 할 것이다. 이번에 소년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MCS에 출전하죠.”
“대회를 준비하느라 바쁘단 말이 그 얘기였구나. 네 아버지가 그래서 널 만나기 어려울 거라고 했거든.”
“그 말을 듣고도 찾아왔네요.”
“응원의 뜻으로 그걸 전해주려고 했어. 네가 없으면 전해달라고 부탁하면 될 테니까.”
‘유토’가 소년이 안은 것을 가리켰다. 역시 마음이 쓰였던 것일까. 소년은 복잡한 감정을 숨기며, 두 사람에게서 벗어나려는 듯 급히 인사를 던졌다.
“그래서 온 것인 줄은 몰랐네요. 고마워요. 이제 가볼게요.”
“보러 가도 되니? 대회.”
소년이 돌아서자마자 꽂힌 건 자신감 없는 목소리였다. 거절당할 거라고, 지레짐작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갑작스런 물음에 소년은 바로 답을 내주지 못하고 침묵을 지켰다.
“유토.”
“마음대로 해요.”
소년은 그대로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들어가버렸다. 마지막에 들은 것이 머리를 쟁쟁 울렸다. 두 사람에게 이름으로 불린 것은 처음이었다.
*
수많은 프로 지망생이 출전하는 대회는 그 명성에 걸맞게 수많은 사람들이 객석을 채우고 있었다. 오래 전에 소년의 어머니는 바로 이 대회의 배틀로얄에서 마지막까지 생존했던 전력이 있다. 그녀는 그로부터 오래지 않아 프로 자격을 따, 은퇴하기 전까지 이 경기장에서 몇 번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소년에게도 이곳은 제법 좋은 기억으로 얽힌 곳이어서, 소년이 자랑스레 내보일 수 있는 승리는 모두 여기서 쌓은 것이었다. 이제 올해의 대회만 제대로 마치면, 소년에게도 프로에 도전할 자격이 주어진다. 소년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머릿속으로 전략을 정리했다.
분위기나 방식만 놓고 본다면 어머니와 이것저것 겹치는 부분이 있었지만, 소년의 전술은 어머니와는 방향이 달랐다. 처음에는 소년의 것을 어머니의 계승이라고만 평가했던 사람들이 점점 소년만의 전술을 인정하게 되었다. 어머니와는 사상도 다르고 선호하는 것도 차이가 있다. 보고 자라온 것 때문에 갖는 어머니와의 유사성은, 개인의 차이마저 누를 정도로 절대적이진 않았다. 소년은 스스로 개척한 자신만의 영역을 좋아했다.
차례가 되어 무대에 오른 소년은, 객석에서 낯익은 얼굴을 찾아냈다.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의 배틀을 오래도록 지켜봤을, 어머니의 동생과 친우. 그들 앞에서 소년이 꺼내는 기계생물은 과거 어머니가 무대에 섰을 때를 연상시켰으리라. 어머니 역시 과거에 기계 새를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했으니까. 하지만 소년은 오랫동안 살아남아 단숨에 판을 뒤집는 어머니와 달리, 공격력을 극대화한 기계생물로 적을 초반부터 몰아세웠다.
바로 강력한 무기를 쥐는 리스크로 턴이 지날 때마다 공격력이 급격히 떨어지니, 빠르게 승부를 내야만 했다. 소년은 적을 압도하는 한편 함정으로 적의 대처를 무력화한다. 거듭되는 묵직한 공격은 적의 생명력을 무섭게 깎았다. 적을 위협하지 못할 정도로 공격력이 떨어지기 전에 소년은 적을 처리했다. 호쾌한 승리에 관객의 함성이 쏟아졌다.
1차전에서 압승을 거두고 무대를 내려온 소년은, 응원하러 온 이들에게 둘러싸였다. 친구들은 소년에게 2차전을 기대한다며 인사를 건넸다. 아버지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마지막, 소중한 사람의 아들을 보러 온 두 사람은.
소년은 두 사람 앞에 섰다. 소년에게 이름을 물려준 ‘유토’가 그를 끌어안았다. 그에게서 풀려나자 다음으로 ‘이모’가, 이십여 년을 자라지 못해 소년보다도 어린 소녀가 입을 열었다.
“잘해줬어. 유토.”
거기서 ‘이모’는 웃으며 덧붙였다.
“좋은 전술이야.”
그것은 소년만을 위한 칭찬이었다. 어머니를 꺼내지 않고, 어머니와의 공통점을 찾지도 않은, 보이는 것 그대로의 평가. 그녀의 붉은 눈에는 감격이 비쳤지만 그것은 언니에 대한 감정이 아니었다. 눈앞의 조카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그녀를 들뜨게 했을 뿐. 소년은 답하는 대신 가만히 ‘이모’를 안았다. 누구의 바람에도 떠밀리지 않은, 자의로 한 행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