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사장슌] 허기진 짐승

현소야 2016. 3. 25. 19:49

 

언젠가부터 부대에 괴담이 퍼지기 시작했다. 부대 주변을 맴도는 괴물이 전사들이 쓰러트린 적군의 시신을 파헤쳐 게걸스레 먹어치운다는 이야기. 단순히 기분 나쁜 이야기로 그쳤으면 좋았으련만, 실제로 주변에서 가끔 짐승이 물어뜯은 듯 처참하게 뜯겨나간 시신이 발견되었기에 소문은 금세 세를 키워갔다. 하필 희생자가 쓰러진 적군으로 고정되어 있다는 것 때문에 과거 적군에게 짓밟혔다는 망국의 유령이 복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말까지 돌게 되었다.

전사들 사이에 퍼지던 불길한 이야기는 잡다한 설정까지 붙으며 날이 갈수록 커져갔고 부대 전체를 뒤숭숭하게 만들었다. 적군의 주검을 파헤치던 괴물이 점차 인육의 맛을 알게 되어 살아있는 아군마저 노리게 되리라는 말까지 퍼졌을 때, 잠자코 보고만 있던 지휘관이 나섰다.

그런 터무니없는 이야기까지 나돌 정도로 정신이 흐트러졌나?”

보랏빛 눈에 불쾌가 드리워졌다. 고작 소문 따위에 부대가 뒤숭숭한 것이 불만스러운 모양이었다. 언제나 침착함을 잃지 않는 자답게 그는 괴담을 허황된 이야기로 치부하고 있었다.

주검이 발견되지 않았습니까. 괜히 말이 퍼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둔지 근처에 산짐승이 있다는 건 알고 있을 텐데.”

짐승의 짓이란 말씀이십니까?”

그럼 짐승 외에 누가 그런 짓을 한단 말이지? 공포란 미지에서 나오는 법. 자네들은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에 대해 멋대로 설정을 붙이고 두려워하고 있는 거야.”

젊은 지휘관의 목소리는 냉랭했고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에게선 두려움은커녕 한 가닥 불안마저도 비치지 않았다. 확신이 따르는 듯한 그의 말에 조금 전까지 괴담에 대해 수군거리던 전사들도 조금 수그러들었다. 생각해보면, 대단찮은 것에 공연히 말을 키워왔던 것 같기도 했다. 그들이 두려워한 대부분의 것은 최초의 증거에서 가지를 뻗어나가며 실제를 부풀린 추측에 지나지 않았다.

앞으로 또 이런 말이 돌면 주모자를 찾아내 사기를 꺾고 군사의 정신을 어지럽힌 죄를 묻도록 하지.”

나직한 경고와 함께 지휘관이 모습을 감추자 한동안 전사들을 두려움에 몰아넣었던 괴담에 대한 말들이 일시에 걷혔다. 모여든 이들은 눈치를 살피는 듯 서로를 힐끔거리다 이내 제자리로 돌아갔다. 막사로 돌아온 지휘관은 피곤한 듯 눈을 감았다. 사실 짐작 가는 곳이 있었다. 괴담에 대해서라면 전사들보다 오히려 그가 더 상세하게 알고 있을 것이다. 다른 먹잇감을 내버려두고 적군의 시신만 골라 파헤칠 짐승이라면 그가 아는 선에선 단 하나밖에 없었다.

누구의 소행인지 거의 확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는 자신의 짐작이 혹 틀리지 않았는지 확인하기로 했다. 제아무리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짐승이라도 낮에 함부로 먹이를 찾아 어슬렁대진 않을 것이다. 짐승을 만나기 위해서는 어둠이 내리깔릴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지휘관은 늦은 밤부터 몰래 짐승을 기다렸으나 경계가 깊은 것인지, 신중하게 움직이는 것인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기다림이 끝난 건 새벽에 접어들어서였다.

그것은 살금살금 움직이더니 적의 시신을 옮겼다. 오래지 않아 고요한 새벽에 살갗을 물어뜯고 뼈를 추리는 무시무시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짐승을 놓치지 않도록 먼 곳에서부터 조금씩 거리를 좁히며 지휘관은 기척을 내지 않도록 주의했다.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지휘관은 제 짐작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키울 수 있었다. 적군의 목에 얼굴을 파묻다시피 하고서 조급하게 물어뜯는 짐승의 뒷모습은, 분명 제가 아는 것이었다.

식사는 흡족한가?”

날아든 말에 짐승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바로 지휘관을 돌아보았다. 맹금을 연상시키는 금빛 눈이 번득였다.

방해하진 않아.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지.”

사실 그것은 짐승이라 말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었다. 짐승처럼 시체를 먹어치우긴 하나 인간의 모습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자신의 먹이를 내려놓지 못하는 그것은, 이제 막 피어날 나이의 청년이었다. 다만 눈에 비치는 괴상한 욕망과 몸을 뚫고 나온 날개는 그가 평범한 인간이 아님을 짐작케 했다.

우리 군사들이 꽤 불안해하더군. 시체를 뜯는 괴물이 있다고.”

그래서 나를 찾으셨다?”

이곳에서 그런 짓을 할 자라면 너밖에 없지 않나? 셰이.”

그래서 식사를 금지하려는 건 아니겠지?”

금지하면 하지 않을 생각인가?”

그러자 짐승은 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나 시선은 사내에게 꽂히지 않았다. 냉정한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사내의 존재에도 그의 관심은 자꾸만 사내가 아닌 먹다 남겨둔 먹이에로 향하고 있었다.

물론 네가 주의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뒤처리가 완벽하지 못해. 자꾸만 네가 남긴 걸 찾아낸단 말이지.”

공들여 숨겨둔 걸 파헤치는 쪽이 나빠.”

감상은 그것뿐인가? 들키면 곤란한 쪽은 내가 아니라 너라는 걸 잘 알고 있을 텐데.”

가라앉은 목소리에 짐승은 고개를 홰홰 내저으며 먹이를 내려놓았다. 상대의 나직한 목소리에 은근한 위협이 깔려있음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자신을 바라보는 사내의 눈에, 그의 단정한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방해하지 않는다 한 주제에 벌써 방해다.”

식사를 포기한다니, 너답지 않군.”

입맛이 떨어졌으니까.”

짐승은 말을 마치자마자 거짓말처럼 먹이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조금 전까지 탐하던 것이 한순간에 하잘것없는 것으로 변모한 양. 사내는 짐승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먹다 남은 먹이를 파묻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가 훈련시킨 뒤처리였다. 사내는 아무리 구슬려도 짐승이 결국 적의 주검에 손을 대리란 걸 알고 있었기에 식사 자체를 막기보다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처리하는 법을 가르쳤다. 들키면 행여 식사 자체가 어려워질까 싶어 처리에 공을 들이는 짐승이었기에 요즈음 몇 번 전사들에게 식사의 흔적을 들켰다는 것은 그에게도 꽤 불만스러운 일일 것이다.

사내가 괴담의 주인공을 단숨에 예측한 것은, 그 습성을 꿰고 있는 것은 짐승이 그의 뜻대로 싸워주는 무기였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짐승은 그의 부대에 있었다. 낮에는 날개를 접고 짐승의 속성을 전부 감추었기 때문에 그를 데려온 사내를 제외하곤 아무도 그의 정체를 몰랐다. 감추어둔 본질 때문인지 사람들은 그의 단정한 얼굴에서 묘한 이질감을 읽어냈으나 그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사람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선 짐승은 자신의 본질을 마음껏 드러냈다. 전사로서 전장에 나가긴 했지만, 그가 행하는 것은 전투라기보다 사냥에 가까웠다. 포식자가 사냥터를 누비며 약한 사냥감의 목을 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낱 인간에 불과한 적군은 날카로운 발톱으로 무장한 포식자에게 힘없이 찢겼다. 사내가 굳이 짐승을 자신의 전사로 쓰는 건, 바로 그 무서운 능력 때문이었다.

영민한 사내는 충동을 감춘 짐승을 제 뜻대로 통제할 수 있었다. 짐승은 지휘관 앞에서 굳이 발톱을 감추지도, 완전히 복종하지도 않았으나 적어도 지휘관의 목을 물지는 않았다. 그 정도의 판단은 따르는 짐승이었고, 그 정도로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사내였기에. 짐승이 물어뜯는 것은 어디까지나 사냥터의 사냥감뿐이어야 했다. 동료의 이름으로 함께 움직이는 전사도, 자신을 부리는 지휘관도 물어선 안 되었다.

짐승 치고는 제법 말이 통하는 편인 청년이었지만 이상하게도 하나, 아무리 노력해도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바로 식사였다. 사람들 틈에 섞여들어 싸우는 만큼, 식사는 분명히 부대에서 제공하고 있었다. 평범한 인간의 식사는 몸에서 받아주지 못해 식단은 야생의 맹수처럼 생고기로 제한되어 있긴 했으나, 짐승은 남김없이 잘 먹어치웠다. 멀쩡하게 제공되는 음식을 다 먹고도 굳이 인간의 주검을 탐하는 것은 괴상한 습성이었다.

며칠에 한 번, 짐승은 막사를 몰래 빠져나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적군의 주검을 빼돌렸다.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곳에서 짐승은 머리를 파묻고 주검을 마구 먹어치웠다. 전사들이 발견한 처참한 시신은 짐승이 한바탕 먹어치운 후의 주검이었다. 짐승이 노리는 곳은 목과 가슴. 뼈가 드러날 정도로 물어뜯긴 시신은 목이나 가슴이 휑해진 채 땅에 묻혔다. 매우 고약한 식사였다. 식사를 마치면 짐승은 입에 묻은 것을 닦아내고 본모습을 숨긴 채 얌전히 막사로 돌아갔다.

살아있는 먹이도 아니고 부패해가는 시체를 노리는 습성이 납득이 가지 않아, 언젠가 사내는 짐승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왜 굳이 시신을 먹어치우느냐고. 짐승은 금빛 눈을 깜빡이더니 짧게 답했다.

배가 고프니까.”

식사는 부대에서 제공해주지 않나?”

아카데미아 놈들의 시신을 보면 언제든 허기에 시달리게 돼.”

그런 주제에 먹어치우는 건 많지 않군.”

먹잇감을 어떻게 먹어치우느냐는 내 자유지.”

먹이. 짐승은 언제나 적군을 그렇게 칭했다. 그에게 적군은 반드시 죽여야 할 적이 아니라 포식자로서 노리는 먹잇감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인간의 사상을 가지고 있으리라곤 기대도 하지 않았을뿐더러 먹이라는 표현이 너무나도 짐승에 어울려 사내는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따지고 보면, 사내가 짐승을 구슬려 전장으로 데려올 수 있었던 것도 짐승이 적을 먹이로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내가 그를 데려오기 전부터 그는 세상을 떠도는 적군을 사냥하곤 했다.

사내가 세상을 억압하는 적을 섬멸하려고 마음먹고서 자신의 전사를 키우고 있을 무렵이었다. 사내가 군림하는 땅의 한쪽에서 막 땅을 밟은 적의 전사들이 매일 자취를 감추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세상을 잠식하려던 음모를 꾸미던 이들이, 그만큼 강한 힘으로 무장한 이들이 이상하게도 그곳에선 활개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이 수상쩍어 조사하던 사내는 사람의 출입이 금지된 어느 굴 근처에 적의 제복 따위의 흔적이 남겨져 있음을 알아챘다. 무언가, 있다. 그렇게 판단한 사내는 아무도 파헤친 적 없다는 굴에 들어섰다.

그리고 그곳에서, 인간의 모습을 두른 괴물과 처음 만나게 되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먹이를 먹어치우던 짐승은 낯선 이의 기척에 반사적으로 굴 입구를 보았다. 번득이는 금빛 눈은 당장이라도 침입자를 찢어버릴 듯 했으나, 짐승은 흘깃 사내를 보고선 다시 먹이로 시선을 돌렸다. 사내는 가만히 식사가 끝나길 기다렸고, 식사를 끝낸 짐승이 흔적을 아무렇게나 던질 때서야 짐승에게로 다가섰다.

먹이가 아니면 관심 없어. 꺼져.”

짐승은 사내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말했다. 거대한 날개가 등을 뚫고 나왔다는 점이나 조금 전까지 죽은 인간을 먹었다는 점만 아니었다면 사내는 그것이 인간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먹이라면, 아카데미아 전사를 말하는 것인지?”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사내는 물었다.

그래. 넌 아카데미아 놈이 아니니 방해하지 말고 나가.”

흥미롭군. 우선 먹이가 인간 중에서도 아카데미아 전사로 한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단숨에 내가 아카데미아 출신이 아니란 걸 알아챘다는 점에서.”

같은 인간이라도 풍기는 냄새가 다르니까.”

짐승은 모든 것을 지켜보고도 두려움 하나 비추지 않는 인간이 흥미로웠는지 사내에게로 몸을 내밀어 금빛 눈으로 그를 낱낱이 훑었다.

아카데미아 놈들에게선 맛있는 냄새가 나.”

그래서 사냥을 거듭해온 건가. 여긴 아카데미아의 본거지는 아닐 텐데, 먹이가 부족하진 않았나?”

부족해.”

짐승의 흰 얼굴에 문득 불만이 비쳤다.

식사가 날이 갈수록 뜸해지고 있지.”

먹이가 가득한 사냥터가 있다면, 관심이 있나?”

넌지시 던진 말에 짐승의 눈이 빛나는 것을 사내는 보았다. 짐승에겐 짐승의 시각에서 접근해야 하는 법이다. 짐승은 입맛을 다시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먼 곳이지만 데려가줄 수 있다. 나도 그쪽에 용무가 있어서 말이야. 어때?”

짐승은 그를 따라나섰고 오래지 않아 사내가 약속한 사냥터로 올 수 있었다. 적이 들끓는 전장이었다. 그 후 짐승은 사내의 전사로서 싸우게 되었다. 겉으론 사내가 짐승을 구슬려 사용하는 것에 불과했으나 파헤치면 두 사람 모두에게 이득인 선택이었다. 사내는 적을 무참하게 찢어발기는 우수한 무기를 손에 넣었고 짐승은 먹잇감을 마음껏 사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쓰러진 전사들을 몰래 먹어치웠다.

그렇게 시작된 관계였다. 그리고 그렇게 지속될 수밖에 없는 관계였다. 약속한 것이 있기에 사내는 짐승의 식사를 묵인했다. 막으려 한다 해도 본능으로 새겨진 것을 완벽히 막을 수 있을 리도 없었다. 그것이 짐승의 식사가 계속되어온 이유였고 괴담이 퍼질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었다. 다만 자신의 군사들이 다시 불안에 잠기는 걸 바라지 않았으므로, 지휘관은 짐승에게 나긋하게 속삭였다.

네 식사를 납득할 수 있는 건 나뿐이다.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해.”

그러니 잘 숨기란 뜻인가?”

짐승이 낄낄댔다. 사내의 본심을 읽어낸 것처럼.

웃기는군. 납득하는 게 아니라 묵인해줄 뿐인 것 아닌가?”

짐승의 본성을 가지고 짐승의 특성을 보이는 주제에 그것은 때로 놀라울 정도로 인간을 명확하게 읽어내곤 했다.

걱정 마. 더는 들키지 않아. 식사가 막히면 내가 곤란해지니까.”

짐승은 돌아서더니, 지휘관은 돌아보지도 않고 막사로 향했다. 인간의 세상으로 접어들기 위해 날개를 접은 짐승의 뒷모습은 조금 전까지 시신을 파헤치던 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인간을 닮아있었다.

 

*

 

짐승의 기억은 대부분 비어있었다. 애써 파헤쳐도 거슬러오를 수 있는 선엔 한계가 있었다. 왜 그러한지는, 그 자신도 몰랐다. 그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최근, 그것도 사냥을 시작할 무렵의 단편적인 기억에 불과했다. 그 외의 모든 것이 공백이었다. 자신이 누구인지부터 어디에서 왔고 무엇을 위해 움직였는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기억이 빠진 부분에 듬성듬성 들어찬 것은 채울 수 없는 허기와 사냥에 대한 욕망이었다. 그래서 그는 먹이를 보면 입맛을 다시며 사냥하고, 또 사냥하길 반복했다. 무참하게 찢긴 적은 목을 타고 내려와 그의 양분이 되었다. 보이는 적이라곤 전부 사냥해 마구 삼켰음에도 그를 잠식하는 허기는 도무지 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비어버린 기억만큼 내부가 공허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허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때는 잠이 들 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른 것이 그를 괴롭혔다. 매일같이 꾸는 꿈. 처음부터 꿈속의 행동에 기시감이 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어쩌면 그것은 깊은 곳에 잠들어있던 그의 기억일지도 모른다. 다만 행복한 모습은 아니었다. 꿈속에서 그는 절망에 잠긴 채 팔에 무언가를 주사하고 있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은 오래지 않아 주사기를 떨어트리고 그는 속이 타는 듯한 고통과 함께 쓰러졌다.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그 다음부터는 암흑 속에서 몸이 뒤틀리고 부서지는 듯한 격통의 연속이었다. 모든 것의 끝에 눈이 떠지고, 창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은.

짐승은 얼굴을 찡그리며 눈을 떴다. 반복되는 꿈 때문이었다. 꿈속의 자신은 날개도 펼치지 못하고 적을 물어뜯지도 못하는 무력한 자에 불과했다. 자신과 함께 싸우는 동료들이나 다름없는, 평범한 인간의 모습. 그러나 고통의 끝에 눈을 떴을 땐 지금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새롭게 태어난 것처럼. 지나치게 생생한 꿈속의 모든 것이 짐승은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만일 모든 것이 자신의 기억이라면. 본래 무력한 인간이었다가 우연히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이라면. 자신의 정체는.

인간의 모습을 지닌 괴물에 대한 호기심 때문인지 지휘관은 언젠가 그의 몸을 조사한 적이 있었다. 그 끝에 내린 결론은 괴상했다. 인간과 괴물의 경계에 있다는 것. 짐승은 납득이 가지 않아 무슨 뜻이냐 캐물었으나 그는 상세히 답해주길 피했다. 결국 그의 정체에 대해서는 그 역시 제대로 알지 못했다. 파헤칠 수 없는 것에 대한 의문이 불쾌로 바뀔 때면, 짐승은 그걸 잊기 위해서라도 사냥에 몰두했다.

꺼리는 꿈을 꾼 탓인지 전장에서의 짐승은 다른 날보다 훨씬 사나웠다. 지휘관의 시선은 금방이라도 제 본성을 드러낼 것만 같은 짐승에게로 몇 번이고 향했다. 사람들 앞에 정체를 드러내면 곤란하다는 것쯤은 아는 짐승이었지만, 결국은 짐승이기에 지휘관은 완전히 안심할 수 없었다. 어느 순간, 통제할 수 없게 되면 그는 날개를 펼치고 괴물의 본모습을 비추게 될지도 모른다. 괴담 따위로도 뒤숭숭해진 적 있는 부대에, 그것은 치명적일 터.

다행히도 짐승은 아슬아슬하게 충동을 억제하고 본성을 감추었다. 한껏 날카로워진 중에도 이성은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이성. 짐승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에 지휘관은 멈칫했다. 그가 평범한 괴물이었다면 그만한 이성은 없었을 것이다. 그가 무엇이 자신에게 이득이 되고 손해가 될지 셈할 이성을 가진 건 그가 인간과 괴물의 경계에 선 자이기 때문이었다.

과거 사내는 짐승의 정체가 궁금해 낱낱이 조사해본 적이 있었다. 기억조차 온전히 남아있지 않다는 짐승에게서 정보를 얻는 것은 무리였으므로 검진하고 연구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모든 수단을 이용해 얻어낸 결과는, 그가 변이한 인간이라는 것이었다. 본디 인간이었으나 어떠한 바이러스에 감염되며 내부 구조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했다. 그를 뒤바꾼 것이 어떤 바이러스이며 어떠한 경로로 그것에 감염되었는지까지는 밝혀낼 수 없었다.

다만 하나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가 감염된 것이 망국의 연구소에서 발견된 치명적인 바이러스와 같다는 것이었다. , 그는 본래 그곳의 사람이었으며 어떠한 이유로 바이러스에 감염되며 변이했다는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거기에 짐승이 드문드문 보이는 공격패턴 또한 망국의 것이라는 점은 사내를 묘한 감정에 휩싸이게 했다. 그렇게 된다면 그는 생명이라곤 남기지 않았다는 망국의 유일한 생존자일 수도 있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다다랐을 때 사내는 문득, 짐승이 먹잇감을 적의 전사로 한정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가 삼키는 적은, 과거 그의 나라를 무너뜨린 원흉이었다. 어쩌면 짐승은 그들에 대한 적개심이 본능으로 새겨진 채 변이하여 그들에게 식욕을 품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변이하면서 그가 갖게 된 능력은 인간을 가볍게 뛰어넘는 힘이었다. 인간의 이성에다 맹수의 힘이 결합되니 그는 무시무시한 포식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 전까지 무력하게 적에게 짓밟히던 자가 귀신같이 적의 특징을 알아채고 식욕이 든다는 이유로 적을 사냥하게 되었다, . 무서운 일이었다. 인식하지도 못하는 중에 그는 모든 것을 앗아간 적에게 최고의 복수를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짐승이 무의식적으로나마 자신의 고향에 대한 기억을 갖고 복수심을 품고서 움직이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사내는 몇 번 그와 관련된 키워드를 던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짐승은 거의 반응하지 않았다. 질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양 멀뚱멀뚱 그를 볼 뿐이었다. 감염에도 살아남으며 변이하는 과정에, 소중한 것에 대한 기억조차 거의 날아간 모양이었다. 다만 그의 머릿속에 강하게 새겨진 것이 무엇인지는 확인할 수 있었다.

가야 해.”

사냥이 마무리되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의 답이었다. 불완전한 답에, 사내는 재차 물었다.

어디로?”

몰라. 하지만 돌아가야 해.”

목적지도 모르면서 가겠다는 건가.”

돌아갈 수 있을 거다. 그때가 되면, 분명.”

짐승의 목소리에는 슬프게도 확신이 배어있었다. 그것이 근거 없는 자신인지, 아니면 목적지가 몸에 새겨져 그의 말대로 닿을 수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사내는 그가 돌아가려 하는 곳이 아마도 고향이리라 생각했다. 적에 대한 적개심이 식욕의 이름으로 변형되어 강하게 남았다면, 어쩌면 그것도.

돌아가서 무엇을 할 생각이지?”

루리. 루리를 만나야 해.”

루리가 누구?”

짐승은 대답하기 위해 한참 머리를 굴리는 듯했지만 결국 포기하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뜻이리라.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해 사내가 지어준 이름을 쓰는 처지임을 생각하면, 이름을 기억해낸 것만으로도 용했다.

내가 만나야 할 사람이란 건 분명해.”

인간으로서 죽고 짐승으로 새로이 태어나는 과정에서 그는 살아남는 대가로 많은 것을 잃은 것이 분명했다. 기억도, 목적도, 자신도. 그럼에도 그는 본능으로 복수를 이어갔고 가장 소중한 것만은 붙잡고 있었다. 그 처절함이 사내는 경이로웠다. 지금껏 보아온 어떤 인간도 그토록 처절하게 생존하는 경우는 없었다. 짐승의 삶은 뒤엉키고 비틀린 삶이었으나 사내는 그것을 투쟁으로 칭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적을 찢으며 계속 전진하던 짐승은 갑자기 모습을 감추더니 그대로 사라졌다. 전투가 끝나고 적이 퇴각할 때까지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 동료가 걱정되었는지 전사들이 나섰으나 그를 찾아내지 못했다. 지휘관은 문득 전장에 나설 때부터 짐승의 눈에 드리워졌던 것을 떠올렸다. 불쾌. 그런 날 그는 가장 사납고 가장 위험했다. 사내는 당혹스러워하는 전사들을 잠재우고 스스로 짐승을 찾아 나섰다. 짐승에 대해 잘 아는 그라면 타인이 살피지 못한 곳까지 파악할 수 있었다.

짐작한 대로 짐승은 사람들이 쉽게 찾아내지도, 닿지도 못할 곳에서 날뛰고 있었다. 거대한 날개를 펼치고 광기가 깃든 눈으로 미처 도망치지 못한 적을 도륙하며. 사내의 눈앞에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짐승이었다. 그의 전투방식이란 본래부터 사냥에 가깝지만 본모습을 드러낸 지금은 그것을 넘어서 사냥 그 자체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짐승의 날카로운 발톱이 사냥감을 할퀴는가 싶더니 처참하게 찢긴 몸이 떨어졌다. 지켜보던 사내의 얼굴에, 희생자의 피가 튀었다. 무심하게 피를 닦아내며 사내는 사냥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마침내 모든 것이 끝났을 때 짐승의 눈에서 광기가 걷혔다.

무슨 일로?”

목소리엔 채 풀어내지 못한 열기가 배어있으나, 지휘관을 보는 눈에 적의는 없다.

회수하러 왔다.”

성격이 급하군.”

지금까지 네 사냥을 기다려줬어. 충분하지 않나?”

아니. 아직 멀었어.”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채로 짐승은 웃었다.

먹이가 그득한데 돌아가는 건 아쉽다고.”

식사는 최근에 하지 않았나?”

방해받았지.”

사내는 다 먹어치우지도 않고 묻어버린 주검을 떠올렸다. 먹이에 대한 집착이 강한 그답지 않은 행동이어서 내심 놀랐던 기억이 있었다. 미진했던 식사를 마저 하겠다는 것일까. 혹은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 식욕이 폭발한 것일까.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으나 참혹하게 찢긴 주검을 드는 짐승의 뺨은 상기되어 있었다.

말리진 않겠다. 여기라면 아무도 오지 않겠지. 좋지 않을 말이 나올 가능성도…….”

상관없어.”

사내의 말을 자르며 짐승은 먹이를 깨물었다. 살이 찢기고 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눈앞에서 주검이 분해되었다.

혹시라도 흔적이 남는 게 걱정된다면 전부 먹어버리면 그만이잖아?”

처음에는 기분 나쁜 꿈을 몰아내기 위해 날뛰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본성의 고삐가 풀리며 짐승은 충동을 억제할 수 없게 되었다. 절대적인 허기가 그를 지배했고 본능적인 식욕이 그를 감쌌다. 그는 인간으로 출발했지만 짐승의 본능으로 움직이는 사람이라 사내 같은 통제장치가 가동하지 않으면 때로 폭주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때보다도 흥분한 짐승을 마주한 순간, 사내는 고민했다. 짐승을 강제로 인간으로 바꿀 것인지, 아니면 모처럼 풀려난 본성이 날뛰도록 내버려둘 것인지. 짐승의 본능이 얼마나 처절한 것인지를 알기에, 사내는 결국 그의 행동을 묵인하기로 했다.

나는, 언제나 배가 고파.”

짐승의 들뜬 목소리와 함께 갈가리 찢긴 주검이 차례로 그의 입으로 쏟아졌다. 주검이 어지러이 널브러진 곳이 살해의 흔적조차 없이 말끔해질 때까지, 짐승은 식사를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