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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슌] 조각3 (To. 훈님)

현소야 2015. 10. 30. 01:10

  

  세상을 잃은 날부터 그들은 언제나 극도로 날을 세우게 되었다. 그 누구도 신용하지 않았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을 놓지 못했다. 그들에게 모든 것은 적이거나 적으로 돌아설 수 있는 자로 구분될 뿐. 그들은 사냥감처럼 경계하고 포식자처럼 적을 노렸다. 깨어있을 때는 단단히 무장한 채 시선을 피해서 돌아다녔다. 낯선 세상에 녹아든 채, 적을 찾아서. 혹은 상황을 반전시킬 작은 가능성을 찾아서.

  고된 탐색이 끝나고 돌아오면 그들은 발길 닿지 않는 아지트에 몸을 숨긴 채 겨우 휴식을 취했다. 버려진 건물, 초라한 아지트. 사람이 찾아들 리 없는 그곳에서만은 편히 쉬어도 되련만 그들은 차마 그러지 못했다. 온몸을 내리누르는 피로에 필사적으로 저항하며 잠을 거부했다. 잠이라는 무방비상태에 놓이는 게 두려워서. 그들은 언제나 무장해야 했으므로.

  그렇게 늦은 시간에서야 겨우 잠이 들었던 어느 밤이었다. 소년은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깨어났다. 침입인가. 머리가 완전히 개이지 않은 중에서도 본능적으로 방어 태세를 취했지만 잠을 깨운 이는 함께해온 동료였다. 그 얼굴엔 괴상한 감정이 비치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공간을 공허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동료의 입이 열렸다.

  “그냥 확인하러 온 것뿐이야.”

  동료의 말에는 생략된 부분이 있었다. 부러 얼버무리는 것처럼.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침입이 있었나?”

  “그게 아니라.”

  말을 고르고 있었다.

  “네가 잘 있는가를 보러 온 거야.”

  “무슨 바보 같은.”

  말을 하려다 멈추었다. 상대의 얼굴에 비치는 것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계속 함께해왔지만 그런 얼굴을 본 적은 없었다. 극도의 두려움.

  “괜찮아?”

  얼어붙은 어깨에 손을 올렸다.

  “꿈을 꿨어.”

  어깨를 감싸 안정시키자 동료는 느릿하게 풀어놓기 시작했다.

  “꿈속에서, 모두가 사라졌어.”

  과거를 보고 있는 것일까. 동료의 시선은 저 먼 곳에 머물러 있었다.

  “차례차례, 아무렇지도 않게 지워졌어. 그러다 하나만 남았지.”

  가는 어깨가 떨고 있었다. 언제나 차갑게 식어있던 잿빛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언제나 의젓하던 동료 또한 결국 제 또래의 소년이라는 걸, 그는 새삼 깨달았다.

  “그 세상에서 결국 너 혼자만 남았던 거야!”

  터져 나온 것은 울음에 가까운 절규였다. 그제야 소년은 알 것 같았다. 동료가 두려움에 사로잡힌 이유를. 그 어둑한 밤에 갑자기 자신을 찾은 이유를.

  “혼자 두고 싶지 않았어. 그때 남겨진 네가 얼마나 비참한 얼굴이었는지 보았으니까. 네가 무너지는 걸 봤으니까, 그러니까.”

  “괜찮아.”

  힘주어 말했다. 그럼에도 잿빛 눈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일어날 리 없는 일이잖아. 네가 나를 혼자 두거나 내가 너를 혼자 두는 일이 생길 것 같아?”

  “그래도.”

  “그럴 거라면 애초에 혼자 왔겠지. 같이 온 이상 계속 함께다.”

  여전히 두려움을 씻지 못하는 동료를 잠재우느라 그 날은 그대로 지샌 것 같다. 그 날, 동료는 답지 않게 계속 소년의 존재를 확인하고 자꾸만 말을 걸었다. 무의미한 물음. 무의미한 응답. 무의미한 접촉. , 그것이 자신의 마지막 기회인 것처럼. 결과적으로 동료는 옳았다. 그의 꿈이 참혹한 예언이 된 것이다.

  답이 오지 않는 통신기에 통신을 시도하는 것은 그만두었다. 소년은 이제 동료가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걸 안다. 마지막으로 함께했던 이도 떠났으니 남은 것은 아무도 없다. 믿을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는 낯선 세상에, 그렇게 소년은 혼자 남겨졌다. 동료라 불리는 자들이 생겼음에도 그는 쉽게 그들을 허락하지 않았다. 잃어갈수록 경계는 깊어지는 법. 마지막 버팀목조차 잃은 그는 사납게 날을 세우며 스스로를 갉아먹어갔다.

  지칠 대로 지친 어느 날, 소년은 깨달았다.

  너는 이걸 걱정했던 것이구나. 너는 이걸 예견했기에 그렇게 불안해했구나.

  홀로 내뱉은 말은 허공을 때렸다가 흩어졌다. 답조차 돌아오지 않는 세상에서, 그는 지독하게도 혼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