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슌] 숨바꼭질
폐허가 된 도시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까지나 몸을 숨길 수 있었다. 뼈대만 남은 건물, 군데군데 폭격의 흔적이 선명한 잔해 더미. 보통은 그 앙상한 풍경이 생존자의 흔적을 바로 노출시키리라 생각하겠지만, 잔해인 체 섞여들기만 하면 그만큼 안전한 은신처도 없었다. 적에게 포착되는 것보다는 찢기고 갈라진 건물이 무너져 인간을 덮치는 일을 걱정해야 할 것이다. 기지로 돌아오기 전 폐건물을 군데군데 훑곤 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숨바꼭질이라도 하듯 무너진 곳마다 다니는 건 너의 습관이다. 위험할지도 모른단 말을 한 번도 제대로 듣지 않는 너는 지독하리만큼 폐허를 뒤지곤 한다. 너는 언제나 술래였고, 네가 찾는 이는 지옥이 된 도시 어디에도 없다. 알고 있으면서도, 어쩌면 알고 있기에 너는 필사적이다. 언젠가는 그 끔찍한 숨바꼭질이 끝날 거라 믿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실종된 누이를 찾아내는 것으로. 혹은, 아마도 적에게 넘어갔을 누이를 구해오는 것으로.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도 너는 숨바꼭질을 좋아하지 않았다. 시시해서, 혹은 시간을 들여 ‘사람을 찾는’ 게 싫어서가 아니었다. 숨바꼭질이라는 놀이를 두려워했던 것이다. 평소의 네 모습은 사소한 일에 두려움을 품기는커녕 불길에 먼저 뛰어드는 사람이었으니, 만일 주변에 그 이야기를 흘렸어도 아무도 믿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어려서부터 함께 자라온 누이가 증언했다면 믿을 수밖에 없다. 침략군이 밀려들기 몇 개월 전, 너의 누이는 ‘오빠의 비밀’을 가볍게 흘렸다.
[있잖아, 사실 오빠는 숨바꼭질을 무서워해.]
[무서워한다고?]
[안 믿긴다는 눈치네. 진짜야.]
생각하니 새삼 우스운 듯, 너의 누이는 오빠를 닮은 얼굴에 웃음을 걸쳤다.
[내가 열 살 때였던가, 열한 살이었던가. 오빠랑 숨바꼭질을 한 적이 있었어. 그 전까지 숨바꼭질을 하면 다들 날 너무 쉽게 찾아내서, 그 날은 술래를 골려먹고 싶어졌지. 옷장에 들어갔고, 몇 시간씩이나 버틴 끝에 잠이 들었어.]
[……슌이 찾았어?]
[물론. 난리가 났었지만. 나를 안고 나온 오빠는 울진 않았는데, 그렇게 겁먹은 얼굴은 처음이었어. 화를 내는 대신 몇 번이나 똑같은 말을 하더라고. 없어지면 안 돼. 루리. 숨더라도 없어지면 안 돼. 내가 찾을 수 있는 곳까지만 가는 거야.]
남매의 세계엔 오래도록 둘뿐이었다. 어려서부터 너는 나이 차이가 크지 않은 동생의 보호자여야만 했다. 놀이라 해도, 그때 이미 열서너 살의 나이었어도, 그 날의 일은 너에게 큰 공포로 남았을 것이 뻔했다. 그 후론 숨바꼭질 얘기는 쉽게 꺼낼 수 없었어. 오빠가 바로 그때처럼 겁먹은 얼굴이 되기에. 오빠는 그 날 이후로 잔소리가 많아진 것 같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너의 누이는 옛 이야기를 마쳤다.
숨바꼭질이 놀이가 되려면 몇 가지 약속이 필요하다. 술래는 참여자를 모두 찾아내야 하고, 나머지 참여자는 술래가 찾을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 술래가 잡을 수 없는 곳으로 숨어버리면, 더 이상 놀이일 수 없다. 너의 삶은 누이가 이 도시에서 완전히 증발한 후 끝나지 않는 숨바꼭질로 바뀌었다. 그것은 놀이인 적 없었던, 고통스러운 벌이다. 너의 노력만으로 헤어나지 못하는 비극이다. 광인처럼 잔해를 뒤지며 누이의 흔적을 찾아도, 마주할 수 있는 것은 절망뿐.
그것을 알기에 언젠가부터 너의 시야에서 자주 사라지게 되었다. 네가 돌아올 때쯤이면 슬그머니 숨어서, 너에게 또 다른 숨바꼭질을 시키는 것이다. 그 아래엔 얄팍한 욕망이 깔려있으나 네게 고백할 일은 없을 것이다.
누이를 찾는 네 모습이 술래에 가깝다고 생각한 어느 날, 이전에 들었던 너의 공포가 머리를 스쳤다. 돌아오지 않는 동료가 있으면 몇 시간을 들여서라도 찾아오던 네 모습도 눈앞에 그려졌다. 희한하게도 그 순간 너의 강박이 마음에 들었다. 네가 찾아내는 대상에 묘한 질투마저 생겼다. 생존자들 중 가장 강한 축에 들었던 네가, 유일하게 약해지는 때가 바로 술래가 될 때라는 점 때문인지.
시야에서 사라지는 사람이 있다면, 너는 반드시 찾게 된다. 상대가 정말로 위험한 곳을 헤매는 것인지 일부러 몸을 숨긴 것인지는 너의 고려 사항이 아니다. 너는 언제나 술래였고, 네가 찾게 되는 사람 중 하나는 벌써 몇 번이고 고의로 너를 불안에 떨어트리고 있다. 물론, 너는 그 심술궂은 참여자를 끝까지 찾아낼 것이다. 몇 번이고 저를 애태우는 것에 원망 한 번 품지 않고서, 찾아내었다는 것에 들뜰 것이 뻔하다.
숨바꼭질의 법칙을 지켜주었으니까.
무너질 것만 같은 벽에 기대, 귀만 열어두고 있다. 보통 사람보다 거칠고 급한 너의 발소리가 귓속을 파고드는 순간만을 기다리며. 너는 어떤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까. 얼굴에 드리운 두려움은 얼마나 짙을까. 네 약함을 상상하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평소의 네가, 꺾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하기에 더욱. 무장한 적을 섬멸하고 모두의 울타리가 되어주는 너는 아군의 부재에 아이만큼 약해진다. 유일무이한 친우를 찾아야 할 때는 거의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상상했을 때 너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숨바꼭질의 끝이 보이자, ‘나 여기에 있어.’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네 습성을 알기에 품는 심술이다. 그러나 너에게 보다 큰 감격을 안겨주고 싶어, 침묵을 지킨다. 과연 오래지 않아 너는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다. 금빛 눈에 기쁨이 어린다.
“찾았잖아. 유토.”
네 목소리가 안도감으로 부드러워지는 걸 느낄 때, 야릇한 희열이 발끝에서부터 올라온다.
“미안. 기지에 돌아가려다 잠깐…….”
오래 찾아다녔어? 순진한 체 눈을 굴리며 묻는다. 숨바꼭질을 꽤 오래 끌었지만, 네가 투정을 부릴 리 없다는 걸 안다. 유일무이한 친우라면 상대의 패턴쯤 속속들이 아는 게 당연하다. 너는 안도감에 취해 상대의 속내를 전혀 짐작하지 못하겠지만. 아니, 괜찮아. 무사한 걸 확인했으니 됐어. 예상대로 너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제법 걱정해주는구나.”
“당연하지. 아카데미아 놈들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데.”
“언제나 네게 돌아갔잖아.”
나는 사라지지 않아. 덧붙인 말에 네 얼굴에 희미한 웃음이 걸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위험하니까, 정탐할 때 아니면 무조건 기지에 있어.”
너도 위험하면서. 같은 말을 삼키고서 고개를 끄덕인다. 어린아이를 대하듯 머리를 쓰다듬는 것도 피하지 않는다. 이렇게 해야만 너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너는 네가 보호할 수 있는 것만을 사랑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