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슌] 포식자와 사냥꾼
차가운 기계 몸을 가진 새가 화려한 미래도시를 날았다. 생물의 따스한 체온도, 보드라운 깃털도 없이 쇳덩이와 알고리즘으로 이루어진 기계 새가 진짜 새처럼 하늘을 부드럽게 맴돌고 있는 것이다. 사내는 기계 새가 청년의 손짓에 따라 도시에 폭격을 가하는 것을 보았다. 병기에 가까운 주제에 생물을 가장하는 괴상한 족속. 청년이 부리는 새는 그런 류의 것이었다. 그 딱딱한 동체에 생물의 일면 따위는 찾아볼 수도 없다. 생물의 감정도, 부드러운 감촉도, 그 무엇도 없다.
그것에 ‘매’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우스운 일이 아닐까. 자연의 생물을 흉내 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을. 그러나 맹금의 이름이 헛되지는 않았던 것인지 그것은 단숨에 적의 숨통을 끊어놓았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매섭게 몰아붙여서. 딴에 포식자라는 건가. 사내는 적을 쓰러뜨린 청년의 손에서 기계 새가 카드로 화하는 것을 보았다. 기계 새는 얌전히 주인의 손으로 돌아온다. 포식자의 사냥은 그렇게 끝났다.
사내는 새삼 청년의 이름을 떠올린다. <매>를 뜻하는 이름. 포식자가 부리는 맹금이라. 제법 흥미로운 테마가 아닌가. 청년은 제 이름처럼, 혹은 제가 부리는 기계생물처럼 언제나 사냥꾼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 상대를 무섭게 공격하여 패배시키는 것이다. 그의 공격엔 망설임이 없었으며 하나하나 치명적이었다. 그 적확하고 간결한 공격은 자연 속 포식자의 것처럼 우아하고 강력하다는 것을, 사내는 관찰을 통해 알았다.
사냥꾼은 힘없이 쓰러진 상대에게로 걸어갔다. 차가운 금빛 눈이 사냥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사내는 직감한다. 영혼을 봉인시켜 전투불능으로 만든다 ─ ‘복수’를 의미하는 무서운 행위를 청년이 거리끼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사내는 청년을 막는다.
“거기까지다.”
통신기를 통해 들린 목소리에, 사냥꾼이 멈칫했다.
“관중의 면전에서 그 이상의 행위는 금지한다. 그는 우리의 중요한 연구 자료가 될 거야. 아카데미아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서 말이지.”
청년은 사냥감에게서 돌아섰다. 파들거리는 저항을 무시하고서. 돌아서는 그의 얼굴은 지극히 싸늘하다. 사냥감을 내버려두는 것은 사냥감에 대한 동정이나 사냥꾼으로서의 우월감 때문이 아니다. 이 매서운 사냥꾼은 그저 더 나은 결과를 위해 행동을 보류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청년의 공격성과 격렬한 성정을 보고 불같은 인간이라고만 평하나 사내는 다르게 생각했다. 그는 신중하고 매서운 사냥꾼이라고. 그렇기에 이렇게 공격을 미루고 발톱을 감출 줄도 안다고.
사내는 청년의 그러한 신중함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안다. 사냥감으로서의 불운한 과거. 사냥감이었던 사냥꾼이라. 그는 그 자체로 아이러니다. 어느 날 들이닥친 침략자에게 사냥감으로 쫓기다 그들을 막기 위하여 스스로 사냥꾼이 된 경우였다. 부리와 발톱을 잘 벼린 채 치밀하게 사냥꾼에게 달려들어 오히려 그들을 사냥하게 된 것이다. 청년을 포함하여, 레지스탕스라는 자들은 대개 그렇게 사냥꾼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신중하다. 패배가 단순한 패배 이상을 의미하는 싸움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이들이 쫓기고 짓밟히며 사라지는 것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순한 사냥꾼이 아닌, 생존자였다. 타인을 해하기 위함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싸움을 시작한 이들이었다. 청년이 빼어난 사냥꾼이 된 것도 바로 그래서였다.
“아쉬운 모양이군.”
사내는 싸움을 끝내고 돌아온 청년을 보며 말했다. 마주앉은 청년은 애꿎은 꽃을 바스러뜨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포식자여서 적의 숨을 끊어놓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운 것이리라.
“이미 끝난 일이다.”
“현명한 판단이야.”
“최우선은 아카데미아니까. 저깟 잔챙이가 아니라.”
“그만한 보람이 있도록 잘 조사해보도록 하지.”
청년의 손에서 꽃잎이 산산이 부서졌다. 표출되지 않은 공격성, 난폭한 충동이 행동마다 조금씩 배어나오고 있었다. 그것을 알면서도 사내는 청년에게 그 모든 것을 풀어낼 기회를 주지 않는다. 아니, 틀어막는다는 편이 옳았다. 사내는 청년을 길들이는 중이었다. 매서운 포식자가 저를 위해 움직이게 하기 위해. 그 첫걸음이 그를 제어하는 것이었다.
청년은 사내의 목적을 위해 충실하게 움직여줘야 했다. 공동의 목적으로 함께하게 된 협력자라곤 하지만 사내는 자신과 청년을 동등한 위치에 두고 있지 않았다. 사내에게 청년은 사냥매와 같다. 그 자체로 뛰어난 포식자이지만, 스스로를 위해 사냥하는 것이 아니라 제 주인을 위해 먹잇감을 낚아채는 것이다. 지금껏 청년은 야생에서 사냥을 거듭해왔으나 사내는 야생의 매를 길들여 제 사냥매로 부릴 심산이었다.
그렇기에 사내는 청년의 공격성을 억누르며 시험해보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대부분의 경우 청년의 행동은 통제가능하다. 목적이 충동을 잠재우기 때문이다.
“그리고, 혹시 모르니 다시 말해두지. 내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이상 오늘처럼 멋대로 움직이려 하는 건 곤란해.”
“또 같은 말이군. ‘이 대회가 아카바 레오에 대항하기 위한 이벤트라는 걸 명심해라’고 할 셈인가.”
“알고 있다면 조심하도록. 네 만행을 용납하는 건 저번 일까지다.”
“LDS를 습격했던 것 말인가.”
청년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일그러진 웃음에서 사내는 비웃음을 읽어냈다. 사람들은 바로 이럴 때 청년을 두려워하게 된다고 한다. 그 조악한 성정, 뒤엉킨 면모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일 터다.
목적이 충동마저 잠재울 수 있을 정도로 목적에 몰두한다는 것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행할 수 있다는 것을 뜻했다. 청년이 그랬다. 그의 <사냥>은 적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적을 몰아세우기 위하여, 제 목표물을 유인하기 위하여 그는 무고한 시민을 몇 명이나 사냥했던가. 그러나 청년은 그 사실에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네 사냥터는, 여기는 아니다.”
청년의 사냥은 이곳에서 이뤄져서는 안 된다. 이 평화로운 세계를, 사내가 책임지는 세계를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 사내가 청년을 풀어주는 곳은 적의 본거지여야 했다. 사내는 청년을 통제하는 것에 책임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네 최종목적이 무엇인가를 잘 생각해라.”
“어련하시겠어.”
청년은 건성으로 답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목적을 잊지 않아. 그러니까 따르고 있는 거다. 아직까지는 네 방식이 옳으니까.”
그것뿐이다. 냉랭한 뒷말이 사내의 집무실을 갈랐다. 사내는 냉혹한 사냥꾼이 집무실을 빠져나가는 것을 보았다. 낡아빠진 코트로 감싼 가는 몸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
야생의 포식자를 길들이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강력하면 강력할수록 저항이 거세지고 경계가 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청년은 상당히 길들이기 까다로운 축에 들었다. 그 전까지 청년이 상대하던 적이 강대하고 악랄했기에 더욱 그랬다. 적이 선사한 참혹한 패배 때문에 지독한 불신과 경계를 두르게 되었으니. 공동의 목적으로 협력한다는 점에서 청년이 제 뜻대로 따르리라는 사내의 계산은 적중했으나, 타인에 대해 짙게 내리깔린 청년의 불신마저 걷어내는 것은 무리였다. 청년은 본능적으로 사내를 경계하고 그 손길을 떨쳐내고 있었다.
협력하되 굴복하지 않는다. 협력자인 사내에 대한 청년의 태도는 그렇게 정리할 수 있었다. 현명한 판단임은 분명했다.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해도 상대는 적의 아들이 아닌가. 적에게 철저하게 짓밟혀 뿌리부터 황폐해진 인간이 적의 혈육을 극도로 경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구나 상대가 바라는 것이 저를 길들여 멋대로 부리는 것이라면. 그런 이유로 야생의 매는 아직까지 주인을 따르지 않고 있었다.
웬만하면 포기해볼 법도 했지만 사내는 청년을 길들이는 것을 포기할 수 없었다. 첫째로는 청년의 재능이 탐났기 때문이었다. 사내만큼 능숙하지는 않았으나 청년은 분명 매서운 포식자였다. 그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은 상대를 단숨에 잡아채 숨통을 끊을 수 있었다. 그 빼어난 포식자를 길들여 원하는 대로 부릴 수 있게 되면 분명히 편리할 터였다. 지금처럼 아슬아슬한 계약관계가 아닌, 자신이 청년을 완전히 틀어쥐는 날이 온다면.
둘째로는 오기 때문이었다. 사내는 청년이 제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 자못 불쾌했다. 그 전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실패였기 때문이다. 사내는 처음부터 포식자로서 살아왔다. 누구에게도 진 적 없이 승리만을 거듭하며 원하는 것은 모두 손에 넣었던 것이다. 그에게 타인을 통제하고 압도하는 것 따위는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태생적으로 우수하고 영민한 인간이었던 사내에게 타인의 생각은 너무도 쉽게 읽혔으며 그것을 토대로 상대의 행동을 전부 예측할 수 있었기에.
그런데 이번만큼은 되지 않는다. 청년의 본능적이고 난폭한 행동 따위 무엇이든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의 날카로운 예측은 번번이 빗나가고 마는 것이다. 청년을 완벽히 통제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은 이 오만한 군주에게 오기를 불러 사내는 청년을 길들이는 것에 더욱 몰두하게 되었다.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대체 할 수 있는 게 뭐냐.”
청년은 팔짱을 낀 채 의자에 몸을 맡기며 불만을 던진다. 사내는 안경 너머로 흘깃 청년을 살폈다. 감정을 숨기는 것에 서툰 청년은 단정한 얼굴 가득 불만스러움을 담고 있었다. 적과 직접 싸우겠다는 뜻을 사내가 계속 묵살했기 때문이었다.
“기다리는 법을 배우지 못한 모양이군.”
“기다리라고? 언제까지? 당장 닥친 일이 아니라고 여유부리기는.”
“신중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을 텐데. 섣불리 건드렸다가 일이 커지면 어쩔 작정이지?”
“물러.”
청년은 입술을 짓씹으며 말했다. 사내는 그 말에서 눌러 삼킨 충동을 읽어낼 수 있었다.
“아카데미아가 너희 세계를 마냥 지켜보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물론 아냐. 하지만 지금은 그들이 직접적으로 침략할 명분이 없다.”
“명분?”
청년이 반문했다. 너무도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카데미아에게 명분 따위를? 제정신이냐, 아카바 레이지.”
“너는 아카바 레오가 어떤 인간인지 모르고 있지 않나. 그 남자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교묘하고 치밀하다.”
“그리고 제정신이 아니지. 마음만 먹으면 한 세계 따위 완전히 황폐화시키는 것쯤 일도 아니고.”
청년은 이제 더 이상 속내를 감추려하지 않는다. 사내는 자신을 노려보는 청년의 눈을 관찰한다. 분노와 증오가 뒤얽힌 금빛 눈. 당장이라도 사냥감을 물어뜯을 양 날카롭게 번득이는 포식자의 눈. 저것을 길들이려 그는 얼마나 노력했던가.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것에 괜한 심술이 일어 사내는 청년을 조롱한다.
“피해자의 입장을 생각하지 못한 점은 미안하다. 너희는 당장 복수를 하고 싶겠지. 그 남자의 아들인 나에게라도.”
“복수?”
청년의 얼굴에서 흥분이 걷혔다. 그 격렬한 것이 단번에 걷히는 것은 사내가 청년의 목표를 물고 늘어졌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이어지는 말은 사내가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우리의 목적은 복수가 아니라 복구다. 우리 세계를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이란 말이지. 만일 레지스탕스의 목적이 복수였다면 우선 네놈을 끌어낸 시점에서 움직였을 거다. 그 자의 아들인 너를 죽이는 것으로. 하지만 우리는 그 이상을 바라고, 그래서 협력하고 있는 거다.”
“그 말은, 이용가치 때문에 나를 용납할 뿐이라는 건가?”
“그래.”
“이상하군. 어차피 아카바 레오에게 나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 그런데도 나를 지금까지…….”
순식간에 붙잡혀 바닥에 내동댕이쳐진다. 청년의 금빛 눈이 사냥감을 만난 것처럼 형형히 빛나는 것을, 사내는 안경 너머로 보았다. 억센 손이 목을 틀어쥐고 있었다.
“착각하는 모양인데.”
그러나 청년의 목소리는 더없이 차분하다.
“네놈 따위 언제든지 죽일 수 있어.”
그 날이 오늘이 아닐 뿐이지. 낮게 으르렁거리는 청년은 길들여지지 않은 짐승 그 자체였다. 뛰어난 사냥꾼이자 위험한 포식자. 청년이 눈앞의 사냥감을 물어뜯지 않는 것은 그의 발톱이 무뎌져서가 아닌 더 나은 결과를 움켜쥐기 위함이라는 걸 사내는 잘 알았다. 그렇기에 그는 레지스탕스였다. 자복하며 때를 기다리고, 절망 속에서도 싸우는.
사내는 청년이 흥미로웠다. 목적을 가지고 나아가는 이들이야 수없이 봐왔다. 그럴듯한 이상을 내거는 이들도 있었고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고자 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청년만큼 절박하지는 않았다. 극도의 절박함은 청년을 목적만을 위해 움직이는 인간으로 만들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제 손을 더럽힐 수 있으면서도 언제든 몸을 숙이고 상대의 힘을 빌릴 줄 아는 자. 그것이 청년이라는 인간이었다.
“너뿐만이 아니다. 네가 막지만 않았다면 이곳의 적들도 언제든…….”
“폭력을 전혀 거리끼지 않는군. 네 적과 똑같은 방식인데도.”
“이제 와서?”
청년의 목소리에는 빈정대는 기색이 다분했다.
“우리에게 이미 수단의 옳고 그름은 의미를 잃었다. 진흙탕 속에서 질서를 찾고 윤리를 물어봤자 무력하게 쓰러질 뿐. 적과 싸우기 위해서라면 적과 같은 먼지도 뒤집어쓸 수 있어야 하는 거다.”
“네 동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만.”
그러나 사내는 여전히 이죽거렸다. 그는 청년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고 싶었다. 그 조악함을 낱낱이 파헤치고 약점을 공략하여, 그가 고통스레 제 결함을 인정하는 것을 보고 싶었다.
“유토를 말하고 있군.”
“그래. 지금껏 함께하면서 그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분명 보았을 텐데? 그의 신념에는 동의할 수 없는 건가?”
“평화로운 세상에서는 가능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미 세상은 무너졌다. 세상을 복구하기 전까지는 우리는 아무것도 꿈꿀 수 없어. 싸울 수 있는 수단이라면 무엇이든 가릴 수 없고.”
“절망은 사람을 황폐하게 만들지. 너도 그 피해자라 볼 수 있겠군.”
“그래서 동정해?”
청년이 물었다. 아무런 감정도 내비치지 않는 텅 빈 얼굴에 사내는 오싹해졌다.
“네 과거 자체는 동정한다. 하지만 그 때문에 네가 저지른 일들까지 정당화할 생각은 없다.”
“상관없어. 내가 저지른 일은 모두 짊어진다.”
사내는 청년이 부리는 기계 새를 떠올렸다. 생물의 일면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는 조악한 새. 적을 공격하기 위한 장치가 그득하며, 불필요한 부분은 퇴화시키면서 병기로 변모한 사냥꾼. 청년 또한 그와 닮아있었다. 폭력에 대한 가책이나 망설임 따위의 불필요한 부분은 이미 긁어낸 지 오래. 사명과 힘을 발판으로 전쟁형의 인간으로 거듭났다.
그것을 위해 청년은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움켜쥐었는가. 사내는 청년을 구성하는 것들을 나열한다. 조악한 성정과 발화점이 낮은 공격성, 깊은 불신과 격렬한 증오. 청년은 겨우 그런 것들로 버텨가고 있다. 전쟁을 위해 병기로 변모하며 인간으로서 포기한 것이 어디까지인지, 헤아릴 수도 없고 헤아리고 싶지도 않았다.
“정말이지 소름끼치는 인간이군.”
그것이 사내가 판단하는 청년의 전부였다. 지독한 결핍과 비틀림에 몸서리치면서도 사내는 청년에게서 관심을 거두진 않는다. 청년이 그 정도의 인간이기에 오히려 더욱 몰두하게 된다. 아무것도 돌아보지 않고 무엇에도 매이지 않으며 사냥감만을 물어뜯을 수 있지 않은가. 불필요한 정에 얽매여 멈칫하는 병사보다는 무조건 전진하는 사냥꾼이 나았다. 그렇기에 사내는 계속 야생의 매를 길들이는 것에 매달린다. 뜻대로 움직이지도 얌전히 품안으로 날아들지도 않는 까다로운 사냥꾼을.
*
청년은 사냥꾼이 낳은 사냥꾼이었고, 사냥감에서 사냥꾼으로 변모한 인간이었으나 저를 공격한 사냥꾼들과 꼭 같은 방식을 사용했다. 그 끔찍하고 악랄한 폭력은 맞서 싸우던 이들에게만 향하는 것이 아니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청년은 무고한 사람들에게까지 그와 같은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무엇이 그를 그만큼 병들게 했는가. 무엇이 그를 저렇게 비틀어버렸던가. 그것이 궁금해 사내는 의사라도 된 양 청년의 병세를 진단하고 그 뿌리를 찾아 헤맸다.
청년을 파헤치길 몇 번째, 사내는 병증의 근원을 알아차린다. 그것은 그들이 적대하는 인간이었다. 청년의 과거를 철저히 짓밟고 청년의 모든 것을 앗아간 인간. 사내는 그 괴물을 아버지라 불렀다.
“인간은 의도하지 않고도 타인의 삶을 규정할 수 있어. 네 아비도 그러했지.”
제 삶에 대한 청년의 진단은 타인을 보듯 지극히 건조하고 냉랭하다.
“그 인간은 우리의 삶을 규정해버린 거다. 황폐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가리지 않는 인간으로. 누구도 믿지 못하고 의심과 경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으로. 이제 원래대로 돌아갈 수는 없어. 아마 전쟁이 끝나더라도.”
청년의 삶은 가해자에 의해 규정되었다. 청년이 범한 죄의 책임이야 청년 본인에게 물어야겠지만 비틀림에 대한 책임은 그의 삶을 규정한 가해자들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가해자로 변모한 피해자라는 역설이 흥미로워, 사내는 자주 그 점을 공격하곤 했다.
“폭력을 답습하는 피해자라, 흥미롭군.”
주어는 없었으나 처음부터 청년을 겨냥한 말이었다. 무기를 점검하던 청년은 감흥 없이 받아친다.
“아카바의 인간이 할 말인가.”
그러나 쉽게 물러설 사내가 아니었다. 사내는 심술궂게 청년의 약점을 건드린다.
“피해자로서 아카바 레오에 맞서 싸우려 한다면, 아카바 레오에게 칼을 겨눠야 하는 거다. 우리 세계의 무고한 시민들을 닥치는 대로 사냥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네 싸움의 방향은 잘못되었단 뜻이지.”
“내 목적이 왜곡되었다는 건가?”
“그렇다면, 결백하다고 생각하나?”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잘못하지 않았다고 말한 적은 없다. 그건 전부 내가 감당해.”
“죗값은 치르겠다는 뜻인지?”
“모든 게 끝나면 너와 함께 치러도 괜찮겠군.”
“나와?”
뜻밖의 반응에 사내가 반문했다. 청년은 여유롭게 말을 잇는다.
“너 역시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지 않나? 평화로운 세계의 시민을 멋대로 골라 싸우게 하니 말이지. 그들을 ‘전사’로 만들어 전장에 내보내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아카바 레오와 싸우기 위함이다. 그에게 대항하기 위해서는 전사가 필요함을 레지스탕스인 네가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왜 선량한 시민에게 의무를 강요하느냔 뜻이다. 그들에게 선택권을 준 적이 있었나? 어떤 위험이 있을지 구체적으로 보여준 적은?”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뜻이군.”
“그래서, 어떻게 감당할 작정이냐.”
“모든 것은 결과로 갚는다. 우리 세계의 평화로, 아카데미아의 계획을 저지시키는 것으로.”
“훌륭해! 너는 분명 아카바 레오의 아들이다.”
청년이 과장되게 손뼉을 쳤다. 그것이 그가 던질 수 있는 최고의 모욕임을 사내는 잘 알고 있다. 청년이 증오해마지않는, 그리고 사내가 적대하고 있는 인간을 부러 언급하는 것이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 사내 역시 적과 같은 유형의 인간으로 적을 답습하고 있다는 것.
물론 사내는 그 빈정거림이 상당히 불쾌했다. 비록 자신이 그의 피를 잇고 있다 하더라도, 그 괴물과 같은 부류로 취급되는 것은 견딜 수 없었다. 세계통합을 명분 삼아 무고한 이들을 짓밟고 다른 세계를 폐허로 만드는 인간과 자신이?
“왜, 불쾌한가?”
“그 남자와 나를 동급으로 취급하지 않았나?”
“답지 않게 감정적인걸, 재미있어. 하지만 네가 아비의 방식을 놀랍도록 닮아가고 있는 건 사실이지.”
“아카바 레오의 방식을?”
“민중의 사상을 장악하고, 싸우기 위해 멋대로 전사를 뽑으며, 사소한 희생 따위는 돌아보지 않는.”
잠시 말을 멈춘 청년은 사내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그건 폭군이다.”
뿌리부터 병든 주제에, 조악한 본성으로 움직이는 주제에 청년은 때로 이렇게 사내를 공격해온다. 언제나 완벽하게 저를 치장하며 누구의 반론도 허락하지 않는 오만한 군주를 날카로운 부리로 쪼아대는 것이다. 완벽한 이성으로 무장한 사내는 이상하게도 청년의 공격에만은 무력하다. 야생의 사냥꾼이 그의 결함을 완벽하게 짚고 있기 때문이었다.
건방지게도. 사내는 안경을 고쳐 쓰며 청년을 노려보았다. 이럴 때 사내는 깊은 곳에서부터 치미는 충동을 느낀다. 청년의 혀를 잘라내고 그가 내리는 자신에 대한 정의를 마디마디 수정하고픈 충동을. 혹은 제 앞에 무릎을 꿇리고 완전히 복종시키고픈 충동을. 그들이 이렇듯 서로를 견뎌내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그들이 모두 포식자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먹이사슬의 정상에 선 이들끼리 서로를 경계하고 물어뜯는 것은 당연한 것. 그렇게 승자를 가리기 어려운 싸움이 거듭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내는 싸움의 결말을 전부 정해놓고 있었다. 우위를 점하는 것도, 상대를 물어뜯는 것도 전부 자신이라고. 그렇기에 사내는 청년의 조악함을 경멸하고 그의 본능을 억누르면서 그를 통제하려 든다. 야생의 매를 감히 길들이려 한다. 언젠가는 저 매서운 사냥꾼이 제 뜻대로 움직이는, 저만의 사냥매가 되리라 확신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