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니스+여슌] 말라붙은 독
여자는 쓰러진 청년에게 올라타 그 목을 양손으로 감쌌다. 청년은 체념한 듯 아무런 저항도 없었지만 여자는 그 이상 나아가지 않는다. 상대의 목숨을 쥐고 있다는 것만 선명히 느낄 뿐이다. 이럴 때 그녀는 상대의 숨을 끊어버리는 온갖 방법을 상상한다. 유감스럽게도, 어느 것도 짜릿하지 않았다. 그녀의 삶을 황폐하게 만든 청년은 죽음으로도 그녀의 삶에 보탬이 되지 못한다. 손 안에 쥔 목숨을 끊어버리지 않는 것은 그래서였다.
청년이 저항하거나 목숨을 구걸하기라도 했으면 약간은 보람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청년은 저렇게 쉽게 포기하고 만다. 삶도, 용서를 구하는 것도. 안 해? 제단에 놓인 제물처럼 죽음을 기다리던 청년이 물었다. 여자는 그 괴상한 물음에, 목을 감싸던 손가락을 살짝 떼어내는 것으로 답한다.
“나를 무대에서 끌어내릴 때까진 독기에 차 있었는데.”
시시해졌네, 쿠로사키도. 싱글거리며 덧붙이는 말은 이제 여자를 흔들지도 못한다. 그녀는 청년의 나긋한 공격에 이미 무뎌졌으므로.
“큰 목적은 이뤘잖아. 너를 망가뜨리는 것.”
여자는 무심하게 받아친다. 그녀의 손에 청년은 추락했다. 그 후 청년은 모든 의욕을 잃고 그녀의 은신처였던 이곳에 틀어박힐 뿐. 청년을 완벽하게 무력하게 만든 것만은 삶에서 몇 없는 성공이었다.
“그런데도 우리의 관계는 끝이 안 났네.”
“처음부터 어긋나서 끊어지기도 힘든 모양이야.”
“이렇게 오래도록 어긋날 거였다면 쿠로사키 쪽 사람들은 모르는 게 나았지.”
청년의 말에 여자는 웃었다. 그런 말을 청년이 먼저 입에 올릴 줄은 몰랐다. 그와 얽히지 않은 세계를 얼마나 상상했는지. 청년이 고향에 침투하지 않은 세계, 동생이 그의 수작에 휘말리지 않은 세계, 최소한 그와 마주치지 않은 세계를 바랐다. 청년이 없었다고 행복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와 얽히지 않았다면 이렇게 쟁그라운 것만 남진 않았으리라. 타다 만 증오와 얄팍한 냉소, 고칠 수 없는 관계까지.
모든 것의 시작은 청년이었는데, 어긋난 관계에 투정을 부리는 것도 청년이었다. 청년의 대단찮은 비겁성을 새삼 떠올린 여자는 그를 비꼰다.
“하트랜드를 떠나기 전에 나까지 처리했으면 깔끔했을 텐데. 네 알량한 양심으론 무리였을까.”
“나는 하트랜드에서 최소한의 역할만을 하고 싶었지.”
“네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악역이고 싶었던 거야.”
스스로를 가여워하는 사람의 죄악감이란 얼마나 얄팍한지. 악행에 소극적이었다는 말은 피해자 앞에서 얼마나 기만적인지. 훤히 아는 여자는 청년에게 별로 자비롭지 않다. 그를 비난하는 대신 그의 속내를 짚는 것이다. 지나가는 듯이, 웃으며.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거, 루리 양을 닮았어. 정말, 다른 부분은 하나도 안 닮았는데.”
과연 청년은 동요했다. 사라진 사람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데서 알 수 있다. 그는 마지막으로 여자를 흔들고 싶은 것이다. 그녀가 잃은 동생을 들먹여서. 자신의 죄이자 그녀의 가장 깊은 절망을 파헤쳐서.
청년이 생각하지 못한 것은 그녀의 감정이 거의 말라붙었다는 것이었다. 청년 때문에 황폐해진 나머지 그녀는 감정을 소모하는 법을 잊었다. 한때 그를 향해 타올랐던 증오도 분노도 퇴색되고 말았다.
“그래서, 어때?”
여자는 분노로 그의 목을 조르는 대신 물었다. 물기 없는 목소리로.
나는 루리처럼 너에게 괴로운 존재야?
뒷말이 머리를 쟁쟁 울린다. 언젠가부터 도발조차 먹히지 않는 그녀는, 도리어 청년에게 침투하는 독이 된다. 청년은 그녀 때문에 무너지고, 쓰러지고, 일어서지 못한다. 날름거리는 혀가 독사의 그것 같다고 생각하며 청년은 입을 뗀다.
아. 그래. 너는 내 죄야.